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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by 어린 왕자
인생_브런치_리뉴얼.png

“바게트에 중독된 것 같아요.

어떡하죠?”


“앞으로 살찔 일만 남았네요.”


친구와 심하게 다투고

무거운 마음으로 올라탄 버스.


빈자리에 힘없이 주저앉아

휴대 전화의 라디오 앱을 켜자

이내 오늘의 사연이 쏟아진다.



사소한 사건, 심각한 사건,

가족 문제, 이성 문제, 친구 문제,

진로 문제, 직장 문제…


수많은 고민이 올라오고,

이에 맞추어 라디오 디제이는

사연에 걸맞은 답변을 내놓는다.


물론 그 고민에 대한 정답이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벼운 농담이나

시시껄렁한 멘트,

단지 그뿐이다.



내 마음이 지금 무거워서일까.

아니면 한밤중에 올라오는

사연들이라서일까.


오늘따라 뒤로 갈수록

사연 하나하나가

아프고 슬프고

무겁게 느껴진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창밖을 보는데

이제 계절이 한여름이라 그런지

자정이 한참 넘은 야심한 시간임에도

포장마차에는 빈틈이 없을 만치

인파가 꽉꽉 들어차 있다.


제각기 무엇이 그렇게도

억울하고 고달픈지

앞에 앉은 상대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으며

울고 웃고 인상 쓰는 광경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내용만큼이나

많은 고민이 담겨 있는 듯했다.



문득 참 측은해 보였다.


라디오 사연에 등장하는

불행한 사람들,

비좁은 포장마차에 앉아

시름과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들,

온 힘이 빠져 덜컹거리는 버스에

시체처럼 몸을 기대고 있는 내 모습,

이 세상 모든 존재가

그토록 측은해 보였다.



사람의 마음이란

이리도 여리디여린 것인데

우리는 나날이 반복되는 일상 속에서

마음에 상처를 입고,

또 그 상처가 아물기도 전에

다른 상처를 입고…


이처럼 힘겹게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스에서 내려

터덜터덜 집으로 향하는 길.


조금 전 라디오 디제이가 남긴

짧은 답변 하나가 귓가에 맴돈다.


“사랑이니까 괴롭죠.

행복하기만 하면

그게 어찌 사랑인가요?”


그래, 인생이니까 지치고 힘들다.


어디 기쁘고 즐겁기만 하다면

그것이 진짜 인생일까.



오늘은 힘들다.

아니, 지금은 힘들다.

하지만 내일도 힘들까.

내일도 지금처럼 처절하기만 할까.


어두운 밤이 지나가면

내일은 또 내일의 찬란한 햇빛이

나를 맞이하겠지.


나는 오늘도 이렇게

나의 인생을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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