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배신

by 어린 왕자
배신_브런치_리뉴얼.png

얼마 전 나는 믿었던 지인에게

크게 배신을 당한 기억이 있다.


아마 배신을 당했다기보다

뒤통수를 맞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 같다.


당시만 해도 내 머릿속은

당황스러움과 분노,

복수심이 한데 뒤섞여

아무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문득 지금 내가 느끼는 이 감정,

즉 배신감의 근본적인 것에 관하여

조금 더 깊게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누구나 사람을 만나면서

기대라는 것을 갖게 마련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원하고 바라는 바가 있고,

상대방이 그 목표하는 기대를

충족시켜 주지 못했을 시에

우리는 이내 배신감을 느끼게 된다.


이때 상대방에게 가졌던 기대치에 따라

배신감의 크기 역시 달라진다.


가령 상대를 향한 내 기대가 100이었을 경우

그가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면

배신의 지수는 무려 100이 되는 것이고,


상대를 향한 내 기대가 1이었을 경우

그가 나에게 실망을 안겨 준다면

배신의 지수는 고작 1이 되는 것이다.



그래, 배신이란

상대방이 나에게 주는 것이라지만,

그것의 크고 작음을 만들어 내는 것은

상대방이 아닌

내가 평소 그를 대할 때 갖는 생각에서

비롯된다는 의미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사람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다는 말보다

나의 생각이 나를 배신한다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할 수 있겠다.




‘그가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그가 나를 배신한 것이 아니다.’


‘나의 생각이 나를 배신했다.’

‘나의 생각이 나를 배신했다.’

‘나의 생각이 나를 배신했다.’



……

어쩌면 나는 그 사람에게

너무나 많은 것을 원하고 바란 것

아니었을까.


만약 애초부터 내가 그 사람에게

기대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또 높고 높은 기대치를 세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 사람에 대한 내 배신감은

지금처럼 몹시 커져 있지 않았을 것

아닌가.


결국 나는 스스로에게

이러한 질문들을 되뇌며

그날 느꼈던 배신감을

가슴속 한편에 묻어 두기로 했다.



우리는 언제나 깊은 믿음과

행복한 기대에 비례하는

배신이란 아픔의 위험을 등에 진 채

세상을 살아간다.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29화택배 상자와 인간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