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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잡상인 Apr 25. 2024

2023년 2월의 기록



2023 한라산




2023. 02. 03. (금) 하타


1.

오늘도 유준이의 가정보육으로 등원을 하지 못했다. 오전 요가는 가지 못했지만 유준과 함께 소아과도 다녀오고 먹고 싶었던 보물섬김밥과 분식을 사 먹었다.


부산으로 떠나는 오빠와 유준을 공항철도에 데려다주고 헤어지는 인사를 하는데 유준이가 뽀뽀를 한다. 유준은 내심 나도 함께 부산에 가길 원했지만 엄마는 약속이 있어서 안 된다고 말했다. 빠르게 수긍하는 아이. 이해력이 높고 눈치가 빠르다.


내가 요가를 통해 수용하는 힘을 길러낸다면,

내가 요가를 통해 강인하고 굳센 의지를 길러낸다면,

그것들은 모두 다 어디에 쓰려고 하는 것일까.

삶을 잘 살기 위해서겠지.

인생에서 중요한 것들을 소홀히 하지 않기를. 나에게 바래본다.



2.

저녁시간 하타. 오랜만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만난 선생님은 마스크를 벗은 얼굴이었다. 이미지가 새로웠다. 선생님의 목소리처럼 맑고 차분하고 착한 얼굴. 


수업 전에 준비 시간 동안 손목과 어깨를 풀어주려고 노력했다. 우르드바다누라사나 때 항상 오른쪽 어깨에 압력이 올라가는 게 느껴지고 평소 스트레칭 때도 오른쪽 어깨가 뻑뻑하다. 마리치아사나 때도 오른쪽 어깨에서 뚝 하는 소리가 나고 고무카아사나 때도 늘 오른쪽은 통증을 주기에 의식적으로 어깨를 열심히 푼다. 그런데 오늘 수업에서 선생님과 함께 어깨와 손목을 풀면서 느낀 것은 내가 그동안 정말 대충 풀었구나.



3. 

사바아사나 때 선생님이 틀어주신 음악이 너무 좋았다.


싱잉볼 연주와 함께 첼로 소리가 가슴을 무겁게 누르면서 슬픈 감정이 올라온 것 같은 기분이 드는 묘한 음악이었다. 제목을 여쭤보고 선생님의 화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중간중간 울려 퍼지던 종소리는 선생님이 직접 싱크를 맞춰 싱잉볼을 치신 거였다. 예술적인 조화가 아름답고도 세련되었다.


음악을 들으며 명상도 하고 글도 쓰고 요가도 해야지.






2023. 02. 10. (금) Yin, 하타



1.

점심시간 인요가, 비(bee) 허밍을 통한 호흡명상을 했다.


날숨에서 비강과 머릿속, 내 몸 전체에 진동이 울려 퍼지도록 일정한 크기와 속도로 뱉어낸다. 그 진동을 통해 의식을 몸 안으로 가져오기. 옴 챈팅과 같은 것이었다.


누워서 하는 트위스트에서 유쾌함이 느껴졌지만 이 순간에 내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인지 릴렉스가 되기는 한 건지 의문이 들었다. 힘을 뺀 것인지 힘을 주고 있는 것인지 구분이 안 된다고 느끼는 그 생각 자체가 이상했다. 힘을 뺐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온몸에 힘이 들어가 있는 것 같은 기분 말이다. 어딘가 강박적인 긴장이 온몸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다음에 이어진 해피베이비 자세에서 마음이 바뀌었다.


무슨 상관인가 싶다.

내가 이 순간에 행복하고 유쾌하다고 느끼면 그만인 것을.


해피베이비 자세를 할 때마다 유준이 아기 때 모습을 떠올린다, 발을 가지고 놀고 발가락을 입으로 빨기도 하면서 뒹굴거리던 우리 아기. 유준이 생각에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내 삶과 연결된 순간. 유준이 아기 때의 그 모습, 그런 좋은 기억이 있어서 이 순간은 빛이 날 수 있다. 강박적인 긴장이 있건 없건 그리 중요치 않다.



2.

저녁 하타.


수리야나마스카라 후 부장가아사나에서 5분간 머물렀다.  이전의 시간들에 비하면 미세하게 자세가 개선된 것 같다. 고작 5분이지만 머무는 시간동안 허리에 통증도 전혀 없고 팔과 등에 힘을 써서 가슴을 열기 위한 작업들이 부담스럽지 않았다.


이런 날도 있고 저런 날도 있고 어떤 날엔 또 그런 날도 있는 거겠지.

오늘은 그냥 이런 날이구나. 하고 감사함을 간직하자. 






2023. 02. 20. (월) 빈야사, 언더드릴



1.

오전 빈야사.


평일 점심시간에 들을 수 있는 마지막 주이다. 하루하루가 소중하다. 오늘의 날씨가 너무 맑고 청명했다. 빛나는 햇살과 바람이 무척 상쾌하여 수련하는 순간도 쾌적하게 느껴졌다. 


오늘 처음으로 요가 수업 때 마스크를 벗고 참여하였다. 첫 순간은 어색하지만 수련하는 동안에는 마스크 착용 여부를 완전히 잊어버렸다. 익숙해지겠지. 끝끝내 터널을 빠져나가고 있다.


코로나가 안겨준 고통의 시간들은 거짓말처럼 색이 바래고 지나온 시간들의 노력과 투쟁은 별 의미가 없었던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어서 어리둥절하다. 잠 못 이루던 시간들, 압박감과 초조함, 분노와 원망, 치열한 회의와 토론. 의미가 없었다고? 그럴 리가. 덕분에 오늘 마스크를 벗고 수련을 하고 있는데 말이다.



2.

저녁 언더드릴.


부랴부랴 왔는데 주차 공간마저 다 차서 마이크로 평행주차를 하느라 5분 지각이다. 호흡명상 중인데 까치발 들고 들어가 태연하게 합류했다. 볼스터에 누워있다가 눈을 뜨니 마사지볼이 곁에 와 있다. 귀엽다.


수련 중에 잠깐 설명타임. 트리코나아사나 할 때 발 벌린 전후 간격과 더불어 좌우 간격도 같이 조절하도록 안내를 해주셨다. 나의 왼쪽 방향 트리코나아사나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었다. 선생님은 사람들이 조금 더 나은 수련을 할 수 있도록 이렇게 요모조모를 자주 알려주신다.


파랑색 언더드릴에서도 선생님이 추가로 넣으신 새로운 시퀀스를 했다. 아무 예고도 없이 훅 들어오는 새로운 시퀀스에 사람들이 소리를 내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웅성웅성하는 것이 느껴졌다. 낯설고, 자신이 맞게 하고 있는지 확인하고 싶은 마음. 귀여운 사람들.


오늘 마지막 시르사아사나는 왜 이렇게 흔들리고 산만한지 집중을 다시 가져오느라 적잖히 애썼다. 팔꿈치 밀어내어 머리 드는 시도도 너무 버거워 끙끙거리다가 선생님이 발목을 달랑 들어주셔서 간신히 밀어내는 연습을 할 수 있었다.


손 포지셔닝을 애초에 잘못 시작했다. 그러니 정상적인 삼각구도로 힘을 분산하여 쓰지 못하고 팔에 힘이 안 들어갔다. 익숙하고 쉽다고 여기는 것일수록 기본을 놓치지 않아야 한다. 습관처럼 했으면 어쩌면 더 나았을지도 모르겠다. 뭔가를 의식적으로 맞추다가 오늘은 그렇게 된 것 같다.



이게 다 지각 때문인가.






2023. 02. 28. (화) 하타, 아쉬탕가



1.

점심시간 하타, 이번 계절에 참여할 수 있는 마지막 수업이다.


가슴 열기, 목 돌리기, 전굴, 차투랑가 단다아사나, 코브라 등을 지나오며 몸을 풀고 막바지에는 핀챠마유라사나 시도를 했다. 아래팔로 땅을 밀며 정수리를 떼고 핀챠로 전환하려고 하는데 땀에 미끌려 팔 간격이 너무 벌어져 버렸다. 넘어질 위기에 놓여있는데 선생님이 오셔서 팔꿈치 모으라고 발을 잡아주셨다. 그렇게 구조당한 나는 정수리를 떼고 핀챠를 유지했다.


코어에 신경 쓰다 보니 하체가 부들부들하여 선생님이 다리 내려놓으라고 하셨다. 어쩐지 다리가 떨리긴 했어도 아직 힘이 남아있었는데 자세를 풀라고 하니 약간 아쉬웠다. 힘이 남아도는 병.


말 한마디 안 해봤지만 점심시간에 자주 마주쳤던 사람들이 돌아오는 여름에도 그대로 있었으면 좋겠다. 여름에 다시 점심시간 수업에 참여하면 그중 몇 명이나 남아있을까?


그땐 우리 조금 더 요가를 통해 성숙해져 있기를. 나도, 당신들도.



2. 

저녁 아쉬탕가. 


낮에 하타를 하면서 힘을 좀 썼지만 아쉬탕가는 힘차게 몰아가는 분위기가 있어  수련 도중에 에너지가 다시 새롭게 채워지는 기분이 든다. 체력이 많이 필요로 하지만 뒤로 가면 갈수록 강인한 에너지가 온몸을 휘감는달까. 무겁지 않게 수련을 잘 이어갈 수 있어 감사하다.


나바아사나를 기점으로 이후로 약간은 어렵고 까다롭게 여겨지는 부자피다아사나, 쿠르마아사나부터 연결된 시퀀스를 요즘 종종 연습을 한다. 어떤 날엔 나바사아사 후로 바로 피니싱으로 들어가 피니싱을 좀 더 길게 가져가기도 하지만 선생님이나 회원들이 파이팅이 넘치는 날엔 힘겨운 동작들에 도전을 해본다.


덕분에 안 되던 것들이 약간씩 변화를 보이기는 한다. 몸이 충분히 데워진 상태에서만 시도를  해야할 것 같은 숩타쿠르마아사나 같은 것은 고관절 열기 워밍업부터 차근차근 선생님과 함께 움직일 때만 나도 어거지로 가능은 하다. 이어서 몸을 들고 티티바를 거쳐 바카아사나, 안 되지만 해보는 시도들. 재미있다.



3.

어떤 날은 요가수업을 오지 못해 속상한 날도 있고 수련이 잘되지 않아 스스로를 몰아부치기도 했다.


생각해 보니 이렇게 매일 즐겁고 성실하게 수련을 이어나가고 있고 나는 시나브로 한 발씩 전진하고 있는데 이보다 더 좋은 수련과 수업이 어디 있을까 싶다. 선생님들의 안전한 핸즈온과 세심한 안내를 받으며 즐겁게 수련하고 있는 이 시간들이 참으로 감사하다. 요가원을 다닐 수 있다는 것 또한 행복한 일이지.


좋은 요가원에서 좋은 선생님들과 귀한 인연. 기적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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