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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Jun 03. 2023

두고 온 쿠알라룸푸르는

급작스레 컴백홈

조기 귀가, 아니, 조기 귀국령을 받았다. 이삼일 전에 비행기 티켓을 예매하고 시험을 치르며 한 달 일정이 모두 끝나던 5월 30일, 짐을 추려 돌아왔다. 대개 이런 경우는 안 좋은 일이 생겼구나 생각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갑작스레 좋은 사정이 생겨서 돌아왔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최근 몇 년간 마땅한 일거리 없이 돈만 쓰고 살려니 '내가 참 쓸모없구나' 자괴감에 가까운 기분을 떨치기 어려웠더랬는데, 마침 석 달간 일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5월 31일부터 사흘간 관련 교육 참석해야 했기에, 30일 밤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31일 아침 7시에 인천공항에 도착해 10시부터 정상적으로 교육을 받았다. 교육 일정을 무사히 마치고 잠시 숨 돌리며 두고 온 쿠알라 룸푸르를 떠올린다. 서둘러 오느라 정신줄이 못 따라온 것도 같다. 꽁지를 뚝 잘라두고 온 것 같아 허전하기도 하고, 식의 마지막에 등장할 주인공을 못 보고 온 양, 살짝 아쉽기도 하지만. 옳게 판단하고 의연하게 돌아왔음을 칭찬한다.


단출하게 짐 싸서 나갔다가 그 짐 그대로 들고 조촐하게 돌아왔다. 군것질 즐기는 딸내미 까까 몇 개랑 수건 두장, 수영복 한 벌 산 거 말곤 늘어난 짐이 없고 외려 잃어버린 게 두어 개 있으니, 오히려 가벼워졌으려나. 짐을 최대한 적게 싸갔으나 살아보니 그만큼도 필요치 않더라. 다음엔 더 가볍게 추려서 다닐 수 있을 듯하다.


 



쿠알라 룸푸르 5주, 내가 두고 온 것은


- 여행을 두고 왔다. 체류 중후반엔 수업에집중했다. 학원 일정을 마치는 대로 사흘쯤은 쿠알라룸푸르를, 나흘쯤은 페낭, 랑카위, 혹은 코타키나발루 중 한 곳을 돌고 오려했다. 여행 자체를 강하게 욕구했다기보다는 공부를 마친 후의 홀가분함을 누리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러려고 그렇게나 열공을 했던 건데, 결국 여행은 없었다. 시원 반, 섭섭 반일 줄 알았던 마음은 섭섭함이 훨씬 커졌다. 두고 온 여행 찾으러, 다시 갈 날이 있겠지.


- 숙소 사흘 치를 두고 왔다. 처음 8일 치를 개인적으로 예약했고, 학원 소개로 30박을 더 예약했는데 일정보다 바삐 오느라 3박은 다 쓰고 오지 못했다. 막바지에 친해진 사람들에게 건네고 올 수도 있었지만, 머릿속이 복잡해진 상황에서 그런 생각조차 부대끼더라.


숙소는 코워크스페이스라고 하나, 공부할 수 있었던 공용공간만으로 만족스러웠다. 많은 날을 그곳에서 공부하고 (잡)생각하고 망망한 도시 뷰를 오래 감상했다. 기분 내고 싶은 밤에 두어 번 와인바에 앉아, 폭풍처럼 글을 토해내기도 했다. 취권이라고나 할까. 자린고비가 자린고비 안 하던 특별한 밤이었다.


5주간 한 곳에 머무는 일은 살면서 잘 없을 것 같다. 두고 온 사흘 치는 사라졌을 테니, 그거 찾으러 다시 갈 일은 없겠다. 기억에만 잘 남겨둬야지.


- 비를 두고 왔다. 날씨를 두고 왔다. 가장 강렬했던 하나를 꼽으라면 비와 번개와 천둥, 그 모든 게 합쳐진 '스콜'이라 할 수 있겠다. 평균 잡아 이삼일에 한 번쯤 쏟아졌다고 하면 맞을까. 낮동안 뜨겁게 달궈진 땅의 열기에서 시작된 대류현상에 의해 늦은 오후나 초저녁 무렵 미친 듯이 비가 쏟아지고 대략 30분 동안 비가 온다면 그사이 백번쯤의 천둥 번개가 번쩍이고 울린다. 까만 하늘이 잠깐 하얘질 만큼 선명하던 번개, 바로 옆에서 포탄이 터진 듯 강렬하게 울리던 천둥. 빗살을 가로 세로 위아래로 마구 흩뿌리던 바람. 바닥을 뚫을 듯 꽂히던 빗줄기. 구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자주 겹쳐지고 이따금 모스크 담을 넘어 대기로 번지던 무슬림의 예배 소리가 합쳐지면 세기말적 분위기가 물씬 났다. 


올 듯 말 듯 비의 조짐이 보이면 숙소로 향하던 걸음이 바빠졌다. 비가 시작되면 흥분됐다. 한참을 바라보았다. 동영상을 수십 개 찍었다. 술상을 차렸다. 속이 뚫렸다. 경이로웠다. 비가 있어 심심하지 않았다. 쓸쓸하지 않았다. 개구쟁이 친구가 잠깐 놀다 간 듯 공기 중에 장난기가 술렁거렸다. 이런 증상을 '날씨 변태' 성향이라 설명한다. 쨍한 날씨는 견디기 힘들다. 햇빛 알레르기가 있고, 더위를 많이 타며, 너무 맑은 날 더 우울해지던 정서적 고난기를 지나온 경험도 이유가 될 듯하다.


날씨변태가 그 좋은 날씨를 두고 왔다. 같은 계절에 날씨 찾으러 꼭 다시 가야지. 번쩍번쩍, 우르릉 꽝. '웰컴 투 말레이시아' 인사처럼 들릴 것이다.   



- 사람을 두고 왔다. 보름을 넘기며 그 어린것들(?)하고도 정이 들더라. '어린것들'이라 함은 귀엽고 사랑스러워서 하는 말이다. 오만 방자 자유분방하다고 나 혼자 속으로 우스개말처럼 묘사한 아들 벌의 아랍 청년들은 눈빛이 또랑또랑하고 콧날이 오똑하며 둘에 하나는 콧수염을 달고 있다. 사춘기 겪지 않는 중학교 남학생처럼 해맑다.


종강에 달할 때쯤 뭉근하게 친해져 작별이 아쉬웠다. 딸 같은 한국, 일본 여학생들에게도 같은 마음이다. 그중 서넛은 한국에 꼭 올 거라 했고, 아마 그중 한둘은 약속처럼 내게 연락하겠지. 한 달은 정들기엔 짧지만, 두고 오기엔 또 아쉬울 정도는 가까워질 만한 시간이다. 제법 가까워진 또래의 친구와, 또래에 가까운 또 다른 한 친구는 분명 다시 만나거나 계속 연락이 닿을 것 같아 두고 왔어도 같이 온 것처럼 덜 아쉽다.   


학원 앞 슈퍼에서 '초코파이'를 팔기에 하나씩 건넸다. '그것은 바로 정(情)이란다' 따로 말하지는 않았다. 한국 대표 간식이며 나보다 두 살 어리다고는 말해주었다. Since 1974. 나이를 말하는 (나이 든) 한국 여자는 처음 봤다며 에리카 선생님은 'strong'이라며 엄지를 세워주었다. 나이를 말하는 것만으로도 strong 해 보이는 그런 나이. 내 나이의 반도 안 되는, 두고 온 아랍 동급생들이여. 한 번쯤은 다시 만날 수 있길 바라오.   

   

- 마음을 두고 왔다. 정신이 나니, 비로소 허하다. 단단하게 살았던 쿠알라 룸푸르에서의 시간이 일상으로 돌아오니 테두리가 흐트러지며 휘청대고 있다. 뭘 하고 온 건가 싶기도 하고, 이제 또 무엇을 이어 살아가려나, 뭉뚝한 고민들이 떠올랐다 가라앉았다 한다. 며칠이라도 여유 있게 마무리하는 시간을 가지며 촘촘히 채워 넣었어야 할 마음이, 아직 거기 있나 보다. 한 시간일 뿐인 시차 적응은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이지만 심(心)차 적응은 시간이 좀 더 필요하겠지.


술(값)차 적응은 신나서 하고 있다. 막걸리, 와인, 맥주, 하이볼까지 고루 먹고 있다. 편의점 앞에 앉아 캔맥주 줄 세워 놓고 마시는 모습과 노천 향해 문 열어둔 연탄구이 고깃집 탁자에 소주병 맥주병 그득한, 우리네 초여름 저녁 풍경이 이렇게 아름다울 줄이야. 두고 온 것이 많지만 이곳더 많은 게 있다. 두고 떠날 수 없는 다정한 이 세계를 보듬으며 또 살아가는 거지. 초코파이보다 두 살 많은 strong 불량주부의 일상. 투 비 컨티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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