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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보리 Oct 19. 2023

어쩌면 나는 부나방일지도 몰라

불량주부 김보리의 기웃기웃 문화수집기 - 에필로그

부산에서 돌아오는 기차 안. 2023 부산국제영화제 폐막식과 식후 상영하는 폐막작의 티켓이 남아있다는 소식을 들었다. 해마다 가보고 싶다가도 늘 때맞춰 티켓팅을 못하다 보니 엄두를 못 내던 일. 급하게 표를 끊어 식이 시작하는 저녁 여섯 시에 겨우 도착해 식과 영화를 다 보고 나니 밤 열 시 반, 게스트하우스에서 자는 둥 마는 둥 하다가 아침 기차로 돌아오는 중이다. 꼼짝 않고 네 시간 반을 앉아있고 오며 가며 기차를 다섯 시간 타는 것만으로도 삭신은 쑤시는데, 마음은 여전히 들떠 있다. 한 분야에서의 일 년 간의 열정과 희망, 그 많은 수고가 빛이 되고 환호가 되는 순간을 직접 눈으로 확인하는 건 황홀한 일이었다.    


책 못지않게 늘 영화가 좋았다. 독립 영화, 예술 영화, 마이너의 소리를 담은 영화가 특히 좋았다. 하루 혹은 이틀에 영화를 몰아 보기 하려 부산국제영화제나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다녀오던 적도 있었다. 열 시, 두시, 다섯 시, 여덟 시. 뭐, 이런 식으로 하루 네 편을 보고 그날 막차를 타고 돌아오거나 허름한 모텔 방에서 자고 그다음 날 두어 편을 더 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그런 나는 이제 없다. 그런 마음의 나는 있지만 그런 허리와 척추가 더는 없다. 글은 엉덩이로 쓴다던데 영화는 허리와 척추로 보는 건가.

      

문득 내가 부나방 같다는 생각이 든다. 뭐든 배울 거리를 발견하면 앞뒤 안 재고 돌진하고 있는 게 꼭 그 꼴이다. ‘그거 병 아니냐’는 소리를 들을 만큼 배울 것을 찾아 헤맨다. 읽을 것을 찾아 책을 쌓고, 볼 만한 영화를 발견하면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달려간다(열정도 에너지도 예전 같지는 않지만). 그 후로도 오랫동안 나는 이 글에 담은 배움 이외의 것을 많이도 배웠다. 특별한 체계나 취향도 없이 손에 잡히는 대로 책을 읽었다. 코로나 기간에 뚝 멈췄던 영화도 이제는 활발하게 보러 다닌다. 




책방을 하고 싶은 오랜 염원을 위해 경기콘텐츠진흥원에서 주관하는 ‘북적북적 경기서점학교’ 수업을 들은 적이 있다. 막연한 기대감이 구체적인 현실의 실체로 모습을 달리 하는 시간이었다. ‘책방을 한다면 수익을 위해 카페도 운영해야겠지’ 생각하며 바리스타 수업을 듣고 자격증을 따기도 했다. 두어 번 재시험을 본 후에야 합격, 손끝이 달달 떨려 급기야 청심환을 먹고야 성공할 수 있었던 이 소심함은 또 무어란 말인가. (그래서 그걸로 뭐 할 건데?)     


술과 책을 함께 하는 책방도 좋을 거란 생각은 평소 술 한 잔 하며 책 읽는 것을 즐기는 나의 취향을 온전히 반영한 것이었다. 자주 술을 나누는 친구를 꼬드겨 공통의 술 취향을 고려해 ‘전통주 소믈리에’ 과정을 수강했다. 12주간 매주 금요일 저녁 세 시간의 수업. 다양한 종류와 도수의 전통주를 매 수업 시음할 수 있는 건 수업의 덤인지, 혹은 핵심인지. 주 1회 좋은 술에 적당히 취하며 친구도 나도 전통주 소믈리에 자격증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이걸론 또 뭐 할 건데?)   


내가 쓰는 영화 평이 평이 아닌 그저 감성 과도의 감상문에 그치는 게 싫어 CGV 아트 하우스의 오픈 특강 '영화비평입문‘ 과정을 듣기도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초극강 감성쟁이의 직관적 영화 후기만을 쏟아내고 있다. 유튜브 동영상 콘텐츠 만들기와 여행 드로잉 과정도 흥미롭게 수강했다. 내 공간이 있다면 1인 출판사 운영도 괜찮겠다는 생각에 ‘말과활아카데미’에서 5주 간의 수업을 듣기도 했다. 그 역시 용인 골짜기와 신촌을 오가야 하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강사였던 ‘혜화1117’ 1인 출판사 대표님의 출판에 대한 열정과 진지함은 출판이 아닌 그 어떤 영역에 대입을 해도 좋을 큰 울림을 주었으며 책 한 권 출판하는 일을 너무 쉽게 생각했음을 깨닫게 했다. 그것만으로도 들인 시간과 노고는 괜한 일이 아니었다.

  

대부분의 배움은 그렇게 ‘책방 운영’이라는 큰 꿈에 귀속됐지만 결국 나는 책방 주인은 되지 못했다. 배우고 그만인 일들이 너무 많다. 그 모든 배움의 결과는 관광통역안내사 자격증처럼 장롱 면허에 불과함을 떠올리며 조금 씁쓸할 때도 있다. 그러다 보면 그리 생각한다. 불나방이냐, 너는.     




부나방은 불을 향해서 날아드는 습성이 있어 불나방 혹은 부나방이라고 불린다. 불을 좋아해서가 아닌, 빛을 향해 일정 각도를 유지하며 나는 것이 대부분의 야행성 비행 곤충의 타고 난 특성이란다. 본능적으로 달을 기준으로 방향을 잡아 날게 돼 있으며, 달빛과 일정한 각도를 유지하면 직진할 수 있다고 한다. 단, 달이 아닌 다른 강렬한 불빛을 달로 착각하여 뛰어드는 것이 문제일 뿐. 각도와 달빛, 달빛과 각도. 두 단어에 집중한다. 산만하고 열심인 나의 삶을 달빛을 향해 각도를 유지하며 비행하는 부나방에 비한다면 조금 억지일까. 


과거에 매어 있는 자책과 후회, 나를 돌보지 않는 습성, 죄책감도 끝까지 놓지 않겠다는 애도 그 이상의 비애. 멈추면 슬그머니 자라는 것들이다. 자라면 안 될 것들이 자라기 전에, 중심을 향해 삶의 각도를 잡아가는 일. 불량하지 않은 건강한 마음의 사람이 되겠다는 의지, ‘언젠간 책방 주인’이란 꿈을 향해 느릿느릿 채워가는 수고, 황량해지거나 비관으로 치달을 때 달빛을 향해 각도를 잡고 비행하는 불나방처럼 내면의 중심을 향해 일관된 태도를 유지하며 살아내려 애쓴다. 배우거나 읽거나 쓰고 걷고 사유한다. 어쩌면 그것은 삶의 중심이자 혼(魂)의 중심을 향한 비행일 지도 모른다. 부동산 특수나 주식 대박, 자식의 성공에 대한 집착 등의 과도한 불빛에 이끌려 지레 나를 태우거나 부수는 일보다는 얼마나 안온한 비행인가.      




읽은 책을 차곡차곡 쌓아 책 나무를 지어 12월 중순 무렵 크리스마스트리처럼 불을 밝힌다. 돌아보면 참 별 거 없는 한 해, 달 같은 순한 빛이 깜박깜박하는 걸 보다 보면 적어도 읽는 사람으로서는 살았다는 위안을 받는다. 일 년간 책을 쌓듯, 남은 시간에도 배움을 쌓고 읽고 쓰는 것을 쌓으며 산만하고 부질없지만 그래도 괜찮은 삶을 이어가야지. 고여 있지 않으려는 느린 비행, 아프지 않으려는 삶을 향한 태도에 유념하며 중심을 찾아가는 저공비행으로 오늘도 잘 배우겠습니다. 손톱만큼 자라고 눈곱만큼 깊어지며, 늙어도 낡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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