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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소영 Oct 24. 2021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뭐하는 사람인가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이름 자체가 직관적이라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짐작하기는 쉬지만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 '의학 삽화'와 같은 명칭이 익숙한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나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이다. 일의 이름만큼이나 길고, 타이핑도 어렵고, 말로 뱉기에도 쉽지 않은 이 직업은 그 이름만큼이나 쉽지 않은 일을 한다. (개인적인 소망을 적어 보자면, 조금 더 언어의 경제성을 생각한 명칭이 통용된다면 좋겠다.)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가 하는 일을 간단히 말하자면 '의학 정보의 전달을 돕기 위한 이미지 및 영상물 제작'이다. 의학 정보, 특히 해부학적 정보는 이미지 없이 타인에게 전달하기 어렵다. 특히 환자 케이스인 경우 교과서에서 배웠던 일반 케이스와 다르게 생긴 경우이고, 수술 과정을 설명하는 경우는 특이한 환자 케이스를 일반적인 모습으로 변형하거나 복원시키는 과정을 설명해야 하기 때문에 설명을 보완하는 이미지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문제는 '이미지를 표현하는 분야'와 '이미지에 담는 정보를 다루는 분야' 간의 괴리에 있다. 이미지를 잘 표현하는 삽화가는 의학 지식이 없고, 의학 지식이 많은 사람들은 그림을 잘 그리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물론 그림을 잘 그리는 의료인도 많이 있다. 하지만 이들은 보통 시간이 없다. 그래서 의학 지식을 알아들을 수 있으면서 이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가 존재하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에서 또 등장한다.


의학 지식은 고도로 전문화된 지식이다. 기본 해부학을 공부하고 시작한다 하더라도 세부 전공으로 나뉘게 되면 그 전공 안에서만 통용되는 용어들이 있다. 가령 해부학에서는 'rectoprostatic fascia' 라는 용어를 주로 쓰는데, 비뇨기과에서는 'Denonvilliers' fascia'라는 용어를 쓰기도 한다. 여기에 용어를 부를 때 발음도 다양하다. 예를 들어 대동맥을 뜻하는 aorta 경우 어딘가에서는 '아올타'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에이오-라'나 '에옭타'라고 말한다. 사실 이 정도면 애교다. 'raphe'의 경우 '라페', '레이피', '레이프'라고 말하기도 하는데, 화상이나 유선으로 대화를 할 때 raphe를 rate로 오해를 하여 비율을 말하는 것으로 오해한 적이 있다.

이 모든 것이 한국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해외 자료들을 찾아보면 다양한 발음에 더 큰 고난을 겪게 되지만 이것 또한 적응하면 괜찮다.



내가 생각하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터는 정확한 사람이어야 한다. 앞서 말한 발음이나 명칭 문제도 오해를 일으킬 수 있기 때문에 용어도 정확히 확인해야한다. 그리고 기존 그림들을 무조건적으로 참고해서도 안 된다. 같은 장기를 표현한 이미지들도 서로 비교해보면 표현에 차이가 크고, 같은 수술법을 그린 그림이라 하더라도 차이가 있다. 이러한 오류들은 이미지 제작이 급하게 진행된 경우라 컨펌을 너그럽게 한 경우이거나, 일러스트레이터가 잘못 그려진 그림을 참고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심지어 이 분야의 대가의 그림이라 하더라도 잘못 표현된 경우가 있다. 특히 해부학 교과서 이미지의 경우는 환자 케이스가 아니므로 가장 일반적인 상을 다루어야 한다. 하지만 변수가 많은 부분에서는 일반적인 경우를 찾는 게 쉽지 않다. 예를 들어 사람 손가락 마디마디에 있는 tendon 들은 타입을 나누어볼 수 있을 정도로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데, 이들 중 가장 보편적인 상을 찾아 표현하기 위해 손가락 tendon 모습을 통계로 연구한 논문을 찾아본 적이 있다. 앞서 말한 오류가 있는 대가의 그림은 심장에 있는 관상정맥을 표현한 해부학 이미지였는데 한 혈관의 주행이 일반적이지 않았고, 혈관의 주행 경로 설명과도 맞지 않았다. 하지만 일반적이지 않은 경우들 중에는 이 이미지와 같은 주행도 있었다. 이 경우는 환자 케이스는 아니지만 보편적이지 않은 정상 케이스를 참고하여 생긴 오류라고 보여진다.


물론 나는 이해가 된다. 건강한 사람 케이스를 여럿 놓고 보아도 서로 다르게 생겼다. 마치 얼굴처럼 말이다. 특이한 케이스가 아니더라도 사람마다 편차가 있다. 여기에 가장 보편적인 상을 찾는다는 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형태학적으로 해부학을 연구한 논문이 많은 것도 아니고, 이러한 연구들의 많은 경우가 카데바 실습으로 이루어지는데 여건상 쉽지 않다. 환자 케이스도 워낙 병이 진행이 많이 된 경우들도 많아서 사진 이미지나 CT영상을 봐도 뭐가 뭔지 상당히 혼란스러울 때가 많으니 정확하게 그림을 그리리란 참 쉽지 않다.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이유는 메디컬 일러스트레이션이라는 분야를 알리고, 사람들이 이 일의 노고를 알아주십사 하는 마음에서였다. 보여지는 이미지가 비록 도식화한 화풍의 이미지라 하더라도, 선 하나 긋는 데 얼마나 많은 서칭을 통한 근거가 필요한지, 전문 지식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부를 하는지, 많이 어렵지만 그만큼 성취감도 크고 보람있는 일일 수 있는지를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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