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쨍한 토요일 아침입니다, 런던은. 봄 날씨가 얼마나 요란한지 몰라요. 겨울이 아직 머무른 듯 쌀쌀하다가 날아갈 듯한 바람에 몸을 움츠리다 갑자기 나온 반짝이는 해에 마음을 녹이려는데 비가 내려 축축해진 몸으로 집에 돌아오기도 했답니다. 4월 런던은 변덕진 날들로 가득하네요. 발산의 향기라는 말을 썼었죠, 지난주 글에는. 안에 있는 것을 밖으로 나타내거나 내부에 쌓인 것을 밖으로 흩어진 게 한다는 뜻의 발산, 흩어지는 말들에 향기가 얻어지길 원했어요. 수다, 친한 이들과 앉아 별스럽지 않은 말들을 주고받으며 무엇이든 발산하며 스트레스를 푸는 행위이잖아요. 한데 이렇게 발산하다 보면 긍정적인 시간이 되기도 하지만 불필요한 말들로 인한 오해와 불쾌감 같은 감정이 든다거나, 괜히 그런 말을 했나 싶은 후회와 함께 집으로 돌아오는 날들이 있곤 하잖아요. 그런 날들을 돌아보며 발산, 흩어지는 말들에도 잔잔한 향기가 묻어 사라진다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생각을 종종 하곤 했어요. 남겨진 문장에 담긴 향기, 오늘은 토요일이니까에도 잔잔한 꽃향이 얹어질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겠다 싶었어요.
자신이 보낸 시간을 나누고 이야기하는 걸 좋아하시나요? 전 초등학교 때는 학교가 끝나면 무섭게 집으로 돌아와 분주한 엄마 꽁무니를 쫓으며 하루 종일 밖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미주알고주알 쏟아내곤 했어요. 근데 어느 순간 그 하루를 엄마와 나누는 게 귀찮고 꺼려지더라고요. 아마도 사춘기가 시작될 무렵이었던 것 같아요. 점점 대화가 줄어가며 우리는 서로 어떤 사람이 되어가는지 궁금해하기만 하며 세월을 보냈죠. 긴 세월이 흘러 다시 미주알고주알이 되려는 노력을 꽤나 많이 했어요. 서울과 런던, 떨어져 사는 아쉬움에 일상을 나누는 일이 소중하다는 걸 알게 된 거죠. 그렇게 하루를 보낸 사람들의 일상 이야기가 소중하다는 걸 알아가며 사람들의 말에 점점 귀를 기울이게 되었어요. 하루를 바라보는 수백 개의 눈을 통해 시간을 바라보는 시선이 다채로워질 수 있다는 걸 알았거든요.
이번 한 주 동안 전 좀 어려운 마음으로 시간을 보냈어요. 수련하듯 써 내려가던 백 번째 매일 글쓰기를 마치고, 방향을 잃었던 것 같아요. 어디로 가야 하지? 이렇게 글을 쓴다는 게 무슨 의미일까? 제대로 가고 있나? 뭐 이런 질문들이 쏟아지며 허무가 밀려올 때 있잖아요. 월요일 하루는 오랜만에 마음의 방황 같은 걸 하며 시간을 마음껏 흐르는 대로 내버려 뒀답니다. 그렇게 까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꾸역꾸역 달리기를 하러 나갔습니다. 처벅처벅 무거운 다리를 움직였더니 까만 하루도 슬금슬금 지나가더라고요. 집으로 돌아와 따뜻한 샤워를 하고 다시 앉아 책을 읽고 앞으로 쓰고 싶은 글에 대한 생각에 한참 머물렀습니다. 일주일 간 비행 스케줄이 없어서 (전 승무원입니다) 오롯한 한 주를 런던에서 보냈어요. 묵직한 날들은 목요일이 돼서야 리듬을 다시 찾아 제 무게로 흐르기 시작했어요.
그런 날을 보내고 나니 문득 그런 날들이 떠오르더군요. 일하는 시간을 빼고, 오롯하게 나에게 긴 시간이 주어졌을 때 무엇을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무수했던 순간들 말입니다. 그럴 때면 괜히 잘 되는 주변 사람들을 보며 시샘하고, 부러워하기도 하고, 작은 것에 짜증이 올라오기도 하고, 잘 지내고 있는 자신을 바라보며 무의미한 자책을 하기도 했죠. 이건 다 내가 뭘 원하는지 몰라 따라오는 감정들이었구나 싶어요.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고 했던가요? 그 시간을 다 보내고 나니 제 곁에는 글 쓰는 시간이 이렇게 남아 함께합니다. 오늘은 토요일이지만 오후 비행으로 홍콩에 가요. 그야말로 수 백개의 눈이 가득한 비행기 안으로 떠나는 거죠. 긴 비행동안 다음 주부터 시작될 초고에 대한 고민을 더 깊게 해보려 합니다. 더불어 그 사람들의 눈을 혼자 바라보며 어떤 하루를 보내고 온 사람들일까? 궁금해해 보기도 할 거고요.
이렇게 글로 조곤조곤 수다를 나누다 보니 하루를 바라보는 수백 개의 눈과 이야기 나누고 싶어 지네요. 가만히 보면 전 꽤나 수다쟁이인 것 같아요. 이렇게 토요일을 구실 삼아 길고 긴 수다를 문장으로 쏟아놓는 걸 보면 말이죠. 4월이 이제 열흘 남았네요. 시간 가는 게 기대되던 때는 언제였을까요? 소풍 가기 전? 기다리는 소식이 있을 때? 보고 싶은 사람과 만나기로 한 날이 다가올 때? 좋아하는 연주자의 연주를 예매하고 난 후? 여름의 바다가 보고 싶어질 때? 기다리는 게 있을 때 우리는 시간 가는 게 기뻐지잖아요. 지난 시간에 아쉬워하지 않고 만나고 싶은 날이 다가온다는 기대감으로 시간을 보내보려 해요.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시간을 전 기다려요.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 속 서로가 만들어 간 그 빛을 듣고 싶거든요. 이렇게 쓰다가는 오늘 하루를 책상에서 다 써버릴지도 모르겠어요. 끝내는 인사를 어떻게 나누면 좋을까요?
그럼 또 만나요, 우리?
잘 지내요?
또 올게요?
다시 또 잘 지내다 올게요.
우리 다시 만나요!
해피 선데이!
그럼 오늘은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