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라희 May 04. 2024

두 삶의 조각들

공감 에세이 

긴 주말의 시작은 언제나 사랑스럽죠. 어린이날 대체 휴일로 월요일까지 쉰다면서요, 한국은. 런던도 월요일 뱅크 홀리데이가 있어 길게 쉽니다. 아침의 시작, 커튼을 쨔르르하고 열었는데 화창한 아침이 오늘을 밝히네요. 흔하지 않은 이런 날은 정신도 밝게 개이는 듯 사뿐합니다. 지난 토요일에는 조곤조곤 길어지는 문단을 염려하며 서둘러 글을 마무리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곳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점점 더 편안하고 아늑해진다는 느낌에 미소가 지어지더군요. 조금 더 늦잠 잘 수 있는 아침이었지만 문단을 하나, 둘 만들어가고 싶어 서둘러 일어났지 뭐예요. 커피 한 잔 곁에 두고 글을 써내려 갑니다. 무슨 이야기를 펼쳐볼까 잠시 고민했는데, 그런 게 뭐 필요 있나 싶어요. 격식 없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꺼내 편하게 써두기로 해놓고선 말이죠. 


사월의 끝과 오월의 시작이 맞물리던 이번 주에 전 한 주간 쉬었던 운동을 다시 시작했어요. 제가 하는 운동이라는 게 최소 3-5km 느리게 달리기와 조금의 근육 운동입니다. 비행을 하며 몸을 사용하긴 하지만 노동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과 운동을 하며 신체를 단련하는 건 엄연히 다르다 해요. 음식을 조절하는 것보다 몸을 움직거리는 게 더 쉬운 사람이라 작게라도 움직거리려 하죠. 이년 차가 되었어요. 규칙적은 아니더라도 운동을 멈추지 않은 시간이요. 근데 이게 웃기더라고요. 기분 높낮이의 진폭이 점점 줄어드는 게 느껴지니 말입니다. 몸을 움직이고 땀을 낸다고 기분이 좋아진다고? 전혀 신뢰하지 않던 말을 어느새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는 절 만납니다. 운동의 긍정적 기능을 널리 널리 알리고 싶어진 걸 보면 제가 달라진 게 맞는 거겠죠? 


예상치 못했던 사람들과 온, 오프라인으로 만나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어요. 그중에 기억에 남는 분과의 만남을 남겨 두려 해요. 한 직장에서 35년 이상 일하며 이제 정년을 앞두고 계신 인생 선배 분이었는데요, 저처럼 여러 분야를 오고 가며 직장을 옮겨 생활한 사람에게는 한 직장에서 35년을 보낸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어찌 그럴 수 있었는지 감히 상상이 되지 않거든요. 그래서 물었습니다. 이 분은 영국에 오게 된 것도, 현 직장에 들어가게 된 것도 모두 본인의 선택이 아니었다고 해요. 입사하고 3년 정도는 타인의 선택에 자신의 인생을 맡길 걸 후회하며 엉망진창으로 시간을 보냈답니다. 그 당시 함께 일했던 분들께 지금이라도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고 싶을 정도였다며 어색한 미소를 지어 보여 주시네요. 변화를 생각할 만한 용기도 없었고, 무엇보다 자신이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겠더랍니다. 비겁한 시작이었다고 하더군요.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 어느 날 곰곰이 자신이 지금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라는 질문에 집착적으로 답을 찾으려던 시기를 만났고, 타인의 선택에 의해 시작된 삶이지만 지금 자리한 곳에서 자신의 능력을 펼쳐가는 건 자신의 선택에 따라 달라지는 게 아닐까? 라는 생각을 갖기 시작하며 일상이 조금씩 자신의 편으로 다가 왔다고 해요. 작은 일에 정성을 기울이고, 일하는 시간에 자신을 쏟아부으며, 사람들에게 친절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2년, 3년을 보내다 보니 어느 순간 일이 사랑스러워지더라는 거죠. 일에 좋은 감정이 생기다 보니 성과는 자연스레 올라갔고요. 그렇게 재미가 붙어 지금 자리에 있게 되었다며 35년이라는 시간은 아직도 믿기지는 않는다는 말로 대화를 이어갔습니다. 비겁한 시작을 만족스러운 끝으로 이야기를 써내려가고 있는 그 분과의 대화가 마음으로 직행했어요. 생기 넘치는 목소리, 표정과 눈빛의 티켓을 손에 쥐고, 과거로 여행하는 직행 열차에 앉아 칙칙폭폭 소리와 함께 나누던 대화가 아직도 생생합니다. 


전 늦게서야 글 쓰는 일에 열정을 태우고 있다는 사실을 수줍게 내어놓았습니다. 이 나이가 돼서야 글을 쓰고 싶어 끼적이고 있다고 하니 자신도 한 때 글을 쓰던 시절이 있었다며, 그 이야기도 건네주셨어요. A4 용지로 300장 정도의 글이 쌓여있다며, 기회가 되면 집으로 초대해 보여 주고 싶다고 하셨어요. 자신이 한 때 가졌던 열정과 비슷한 꿈을 가진 전 바라보며, "아직도 갈 수 있는 길이 많은 나이예요. 할 수 있는 일도 많고! 단, 열정이 생겼을 땐 마음껏 태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그것도 한 때거든요. 지나고 나면 다시 그 정도의 열정을 갖기 어려웠죠. 제 글쓰기가 그랬어요. 지금 다시 하려니 그때만큼 열정을 기울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먼저 듭니다."라는 격려의 말씀도 나눠주시더군요. 시간을 증명해 낸 인생 선배와의 시간이 그렇게 칙칙폭폭 흘러갔답니다.  


또 한 분은 공인이신데요, 올해 105세가 되신 김형석 선생님이세요. 올 해도 책을 내셨다며 인터뷰를 하셨더라고요. 전 이분이 살아내신 삶에 존경의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105년 성장의 시간을 보여주고 계신 시대의 어른, 그분의 이야기에 항상 귀를 세웁니다. 고등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며, 아이들이 돌아가지 않고 총총한 눈빛으로 질문을 계속 쏟아 내는 모습을 볼 때 자신은 늙지 않았구나 라는 걸 느끼신데요. 세대를 가르는 소통의 정수를 보여주시는 그분의 이야기에 어떻게 귀 기울이지 않을 수 있겠어요? 이번 인터뷰에서는 "절대로 늙지 말자."라는 이야기가 마음에 남더라고요. 


"거 "내가 해보니까" 사람이 왜 늙는가 하고 보니, 신체가 늙으면 늙는다 생각해요. 여자는 22살, 남자는 24살까지 신체가 성장하고는 40대부터는 내려온다 해요. "내가 살아보니까"사람은 늙는 게 아니에요.... 65세 정년이 되니까 하나도 안 늙었더라는 거죠. 80대 가니까 늙은 것 같지 않더라고. 사람은 성장하는 동안은 늙지 않는데, 내 주변을 보니 75세, 80세 되니 성장이 멈추더라 이 말이야. 그러니 늙는다더라고. 그러면 난 성장을 90대까지 연장하자. 했어요. 일이 자꾸 생기니까 95세까지 성장하더라 말이야. 근데 몸은 확실히 늙더라고. 그런데 정신적으로 늙는다는 건 잘 모르겠다는 말이지. 기억력이 약해지는 걸 제외하고 말이지. 고유명사가 사라지고, 보통 명사가 사라지고, 형용사가 잊히고, 그다음엔 부사를 잊지만 동사는 죽을 때까지 기억한다 말이지. 감정이 늙는다, 정서적으로 늙는다 말이야. 마지막으로 인간적으로 늙는다는 말이야."


늙지 않을 자유, 이것도 선택이라는 걸 남겨두었습니다. 두 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이렇게 나누며, 다시 사는 일을 바라봅니다. 제 작가 소개 글에도 적어두었지만 한 개인이 자신의 선택으로 어디까지 성장해 갈 수 있는가를 실험하며 산다고 했어요. 한 때 저도 주변 사람들과 비교하며 가진 게 성에 차지 않아 만족스럽지 않은 마음으로 시간을 지나오기도 했죠. 그 시간이 남긴 건 웃음을 잃은 날들뿐이었어요. 인생 선배님이 나눠주신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 최선을 기울이며 매일을 가꾸는 정성, 김형석 선생님의 늙지 않겠다는 마음으로 사람들과 끊임없이 소통하며 성장하는 삶을 이야기하는 다정한 열정이야말로 삶의 핵심이 아닐까 합니다. 주머니 속 깊이 소중한 물건을 챙겨 넣듯 마음속 깊이 담아두고 언제라도 꺼내보며 살아가려고요. 실험하며 살아갈 날들 속 웃음은 잃지 않고 싶거든요. 이렇게 써 내려가다 보니 사람에 힘들기도 하지만 결국은 사람이 사랑이라는 걸 느끼던 한 주를 보낸 듯싶네요. 사람, 사람, 사랑! 


오늘은 날이 좋은 주말이라 남편과 산책하고 점심은 간단히 먹고 들어오려고요. 주말을 런던에서 보낼 수 있어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요. 홍콩과 런던을 거의 매주 오고 가다 보면 가족과 함께할 시간이 더욱 소중해지거든요. 오늘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다 내어놓은 것 같아요. 긴 주말, 어떤 계획들을 가지고 계실까요? 계획이 없는 시간도 좋고, 설레는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고! 쉬는 날은 뭐라도 오케이죠. 다음 주에도 조곤조곤 이야기 들고 올게요. 모두들 잘 지내고 계세요.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마음도 저와 같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바람을 하나 남겨둘께요. 


오늘은 여기까지에요.

잘 지내다 다시 만나요.


(이렇게 끝인사를 나누기로 했어요. 괜찮나요?) 








이전 03화 깊은 밤을 날아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