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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라희 Apr 27. 2024

깊은 밤을 날아서

드디어! 기다리던 토요일이 왔어요. 이른 아침부터 산책을 다녀왔는데 간 밤에 비가 내렸네요. 촉촉한 흙내음을 힘껏 들이마시며 제 사무실, 동네 스타벅스에 와서는 <오늘은 토요일이니까>를 쓰는 중입니다. 이제 겨우 세 번째 글인데 요즘은 이 시간이 제일 기다려져요. 지난 글 끝무렵에 아쉬워하며 보내는 시간보다 기다려지는 시간을 만났으면 하는 바람을 담았잖아요. 토요일, 이 시간이 기다려지는 그 순간이 되어가는 듯해요. 부담 없이 써내려 가는 순간, 지난 한 주를 돌아보며 걸구 쳤던 마음을 걸러내고, 흘러넘친 생각의 가지를 쳐내는 시간이 되어가거든요. 이 글에 머물러 주신 여러분들도 조곤조곤 편안한게 머무르다 가셨으면 좋겠어요.  


이번 주도 전 내내 런던에서 보냈습니다. 화요일 새벽 런던에 도착해서 (아직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전 승무원 일도 하고 있습니다) 다음 주 화요일에 다시 홍콩으로 떠나니 일주일을 쉬는 중이죠. 오늘 제목은 이문세의 노래에서 데려왔어요. 깊은 밤을 날아서, 예쁘죠. 런던에서는 집에 머무르다 보니 생활이 비교적 규칙적이에요. 밤 열 시면 잠이 들어 이른 새벽에 눈을 뜨죠. 새벽의 고요함을 즐기기는 하지만 깊은 밤이 전하는 감정의 이야기가 그리워지는 건 어쩔 수 없습니다. 깊은 밤은 자신을 또 다른 어떤 형태의 누군가로 만들어 주잖아요. 긴 밤의 음악은 온몸으로 들려오고, 문장은 마음으로 직행하며, 손 끝을 타고 내린 문장은 별빛처럼 반짝이는 그 살아 움직이는 감성을 가진 사람으로 말이에요. 그러다 아침이 밝아오면 밤의 사람은 눈을 감고 총명한 감성은 접어두죠. 


하루를 살아가는데 이런 감성은 도통 도움이 되지 않아요. 제가 사는 런던은 감정을 드러내는 일에는 매우 야박한 편이랍니다. 사람도 음악도, 드라마도, 영화도 드라이해요. 더구나 직장 생활을 하면서 감성을 드러내는 일은 불필요한 어떤 것이 되어버리죠. 감성은 마음 한 구석 꼬깃꼬깃 접어둔 채 그 존재는 잊고 살게 됩니다.  이른 밤에 잠들어 새벽에 깨어나 또렷한 정신을 안고 살다 보면 머리의 이야기에만 익숙해지는 듯해요. 전 승무원이지만 런던-홍콩만 다니다 보니 8시간, 9시간의 (서머타임에 따라) 시차를 오고가며 삽니다. 홍콩에서는 런던 시간으로 지내죠. 그러다보면 까만 밤이 오롯이 품에 안기는 날이 제법 생깁니다. 드디어 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순간을 만나게 되는거죠. 그렇게 깊은 밤을 날아 온갖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기도 하고, 덩그러니 서 있는 자신을 마주하기도 하며, 일어날 수 없는 일들을 상상하며 훨훨 다닙니다. 이번 주처럼 긴 휴일로 런던에 오래 머무르다 보면 홍콩의 호텔밤이 얼마나 아쉬운지 몰라요. 일을 그만 두면 가장 그리워할 시간과 장소, 호텔방에서 듣는 밤의 이야기. 


내일은 런던에서 가장 좋아하는 펍에서 선데이 로스트를 하려고요. 짝꿍이 일주일 내내 몸이 좋지 않았거든요. 독성이 있는 어떤 생물체에 물린 것 갔다 해요. 사시나무 떨 듯 몸을 떨고, 열이 올라 응급실에 가니 그렇다네요. 생전 처음 보는 몸의 반응에 꽤나 놀랐습니다. 그리고 든 생각이 이건 아무리 조심한다 해도 어쩔 수 없는 거잖아요. 그저 그날의 운이라 퉁치며 소화하는 수밖에. 이런 대화를 나눴어요. 우리의 마지막은 언제 올지 모르는 것이라고. 짝꿍은 사흘은 항생제 주사를 맞았고, 지금도 항생제를 먹고 있는데 부작용도 무시 못하더군요. 그나마 강한 체력 덕에 잘 버티고 있다고 의사는 그럽니다. 한 달 전 예약해 둔 선데이 로스트, 힘들면 가지 말자 하니 가고 싶다네요. 그게 뭐라고, 다음에 가도 된다 하니 "지금" 하자고 합니다. 


이렇게 예상치 못한 일을 겪게 될 때마다 무력해지는 모습을 만나요. 어쩔 수 없는 일 앞에서 너무 속상해하지는 말자하며 지금 할 수 있는 일을 찾아 움직이죠. 그리고 농담과 자조로 웃고 넘깁니다. 응급실 간호사와 의사들도 짝꿍에게 이제 그만 만나자며 너스레 인사를 나눕니다. (사실 지난 11월에도 응급실에 다녀왔거든요. 이미 지난 일이 되었지만...) 직장인으로 살아가는 반갑지 않은 날들, 한 남자의 안사람으로 함께 짊어지고 가야 하는 예상치 못한 일들, 하고 싶은 일이 잘 풀리지 않아 무겁게 짓눌리는 마음, 어쩔 수 없이 마주하는 이런 날들을 만날 때면 끝을 바라봅니다. 그 끝을 바라보면,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순간이라도 끝이 있다는 걸 알아채죠. 그러면 잔뜩 올라온 긴장이 툭 하고 풀립니다. 지금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순간, 다시 가지고 싶어도 가질 수 없는 순간, 지나면 아쉬워할 순간들이 자신의 곁에 바짝 머물러 있다는 걸 눈치채게 되죠. 깊은 밤을 날아 상상 속에서나 만나게 될 지금의 순간에 자신을 온통 담가둡니다. 


카페에 들어올 때 아무도 없었는데 빈 테이블을 찾기 어려워졌네요. 런던은 아침 열 시가 넘어가요. 전 아직도 이 글의 끝인사를 어떻게 나누면 좋을지 결정하지 못했어요. 헤어짐이 아쉬워 말을 계속 이어가는 친한 친구와의 만남 같거든요. 오늘도 글을 마치려니 아쉽네요. 한 주 무사히 지내시길 바랄게요. 너무 흔한 인사지만 점점 더 중요하게 다가오는 말, 무사히. 깊은 밤을 날을 수 있다면 어디에 가 닿고 싶으신가요? 조금은 엉뚱한 질문은 남겨 둘게요. 이제 정말 안녕 인사 나누려고요. 이러다 다시 한 문단이 생기고, 또 한 문단이 생기면 곤란해지거든요. 11시에 짝꿍과 만나기로 했어요. 장 보기 약속이 있답니다. 


그럼 안녕,

무사히,

깊은 밤을 날아도,

내일은 일요일이니까 괜찮겠죠?


오늘도 머물러 주셔 감사해요.

토요일에 다시 올게요,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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