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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k 록 Feb 15. 2016

따뜻한 그녀와 함께한 추운 하루

다음 행선지에 대한 고민 

아침

오늘은 바쁘게 움직이며 많은 것을 하였다. 일단 일어나서 아침을 먹었다.  요리를 하는 동안 컨트리 뮤직을 틀어주자마자 내가 몸을 흔들며 좋아하니 이런 늙은 음악을 좋아하냐며 신기하게 나를 본다. 지금도 Rote Rosen를 들으며 글을 쓰고 있다. 그녀는 내 나이 또래는 다들 싫어하는 음악이라 재미 삼아 틀었다는 설명과 함께 자신의 딸인 Katia는 이 음악을 틀면 질색한다고. 어쨌든 나는 너무 좋다. 

아침 풍경 

빵에 버터를 발라먹는데 너무 맛있어서 멈출 수가 없었다. Ingrid가 준비해준 아침에는 내가 어젯밤 좋아한다고 했던 요거트도 있었다. 지나가며 한 말에 귀를 기울여 준비해준 그녀에게 감사했다. 아침을 배불리 먹고 우리는 차를 타고 구시가지로 나갔다. 아침에 눈이 살포시 쌓여있어서 걱정했는데 햇살이 비추어서 녹아 있었다. 운전을 해야 하는 상황이라 다행이었다. 그렇지만 아직 쌀쌀하였다. 그녀는 나의 얇은 바지를 보고 연신 걱정하였다. 시내에 있는 구시가지는 차를 타고 다닐 수 없어서 주차장에 차를 놓고 걸어 다녀야 했기 때문이다. 마켓을 구경하며 성으로 걸어갔다. 성에 도착하기 전에, 새로 지어진지 4주밖에 되지 않은 행정부 건물에 잠깐 들어가 보았다. 건물 밖은 오래되었지만 안은 모두 새로워서 신기하였다.


다운타운 구경

성에 올라가니 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박물관을 좋아하지 않지만 오늘은 박물관을 무려 3군데나 둘러보았다. 생각보다 흥미롭게 관람하였다. 성 안에는 Scholosslabor Tubingen이라고 적혀있는 Tubingen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박물관이 있었다. 과학 실험실에 관한 곳이었다. Chemie라는 것을 보고 독일어는 모르지만 Chemistry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내가 화학을 전공해서 그런지 성적에 관계없이 4년 동안 보아온 익숙한 전시였다. 실험 도구부터 3D 영상으로 나타낸 DNA, RNA도 있었고 헤모글로빈을 현미경에서 관찰하여 사진으로 찍어 볼 수 있었는데 1학년 시절 수강하였던 실험 수업도 떠올랐다. 작은 공간에 나름 알차게 구성되어있는 박물관이었다.


바로 옆에 박물관은 관람료를 내고 들어가야 했다. 원래 같으면 박물관에는 관심이 없어 지나쳤을 것 같지만 앞서 과학박물관에서 흥미롭게 구경한 후라 들어가 보기로 하였다. 이번 박물관에서는 로마, 이집트, 그리스 등 역사적인 문명의 증거들이 전시되어있었다. 이번에도 생각보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물건들이 많았다. 여기에 설명을 더하니 더욱 관심을 가지고 볼 수 있었다. 이집트 유물은 집에 전시해두고 싶을 정도로 색감이 아름답고 강렬하게 나타나 있었다. 

 

박물관에서



 

성 위에서 바라본 풍경 


성 위에서 바라본 교회를 가기 위해 아래로 내려왔다. 유럽을 돌아다니면 흔히 보이는 것이 교회와 성당이라 거기서 거기 같았는데 그녀와 이야기를 하면서 걸으니 함께 들어가 보고 싶고 그곳이 궁금해졌다. 교회를 둘러본 후 걷다가 우연히 Klang im Raum 12 nach 12라고 적힌 것을 발견하였다. 나는 알 수 없는 의미에 그냥 지나쳤는데 Ingrid는 유심히 보더니 연주를 한다면서 들어가 보자고 하였다. 나는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일단 가보기로 하였다. 텅 빈 공간에 피아노가 있고, 안내하는 곳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파이프 오르간이 있었다. 그곳에 앉아 잠시 기다리니 파이프 오르간 연주가 시작되었다. 18분 동안 두 파트로 나누어진 짧은 연주였는데 두 번째 파트는 바흐 음악이었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는 처음 듣는 것이었는데 웅장하고 깊은 소리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공간이 추워서 18분은 매우 적절한 시간이라고 생각했다. 모든 설명은 독일어로 해주어서 나는 무슨 소리인지 전혀  알아들을 수가 없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그들은 Tubingen 학생이고 연습할 공간이 없어서 모금활동을 하는 일환으로 파이프 오르간 연주회를 연 것이라고 하였다.  


VEGGI DAY라니 너무 귀엽다


연주를 들은 후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조금 걸으니 Tubingen Mensa가 있어서 그곳에서 먹기로 하였다. 학생 식당을 이용할 때마다 나도 그곳의 대학생이 된 것 같아 기분이 좋았다. 음식은 치즈 튀김을 먹었다. 치즈를 워낙 좋아하는 입맛이라 맛있게 먹었다. 배부르게 먹은 후 Ingrid는 튀빙겐 대학교에 한국학이 있다며 나를 데려갔다. 독일 대학교에서 한국 책이 쌓인 도서관에 가니 느낌이 이상했다. 내가 고등학교 때 공부하였던 국사 교과서도 있었다. 독일 대학교에 한국학이 있다는 것에 기분이 살짝 새로움을 느꼈다.


미술관 입장권 스티커
리터 스포츠 박물관
이쯤 되니 오늘은 박물관 투어의 날

Tubingen에서  20분쯤 떨어진 곳에 있는 Litter Sport 박물관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갈색으로 우거진 숲도 지나고 양 떼들과 말도 보았다. 검은 양도 보아서 놀랐더니 그런 나를 보고 그녀가 더욱 놀랐다. 커다란 공장과 그 옆에 멋있게 지어진 건물이 있었다. 건물은 박물관과 전시장으로 되어있었다. 건물에는 흥미로운 것들이 많았다. 일단 전시장에는 현대 미술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넓게 펼쳐진 들판을 투명한 큰 창을 통해 그대로 보여주는 카페가 있다. 옆 박물관 건물에서는 아이들을 위한 나만의 초콜릿 만들기 프로그램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녀는 내가 10살만 어렸다면 가운을 입고 실험실에서 초콜릿을 만들 수 있었을 거라고 했다. 아쉬웠다. 1층에는 네온사인 설치 미술과 2층에는 유리로 만든 작품과 공간과 색으로 만든 작품이 전시되어 있었다. Litter sport 공장 옆에 딸이 전시장을 열 것을 제안해서 건물을 설계한 것이라고 하였다. 

리터스포츠 박물관에는 초콜릿만 있는게 아니다


집으로
저녁 1


집으로 돌아오니 녹초가 되었지만 힘든 기색 없이 뭐하고 싶어?라고 물어보는 그녀를 보니 나도 다시 힘이 났다. 아침에 들었던 노래가 떠올라서 다시 듣고 싶다고 하였다. 나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고 싶었지만 혼자 방에 들어가기는 싫었다. 노래를 듣다가 내가 그린 그림에 편지를 써주었다. 내가 가고 나서 읽으라고 당부한 후 우리는 저녁을 먹었다. 메뉴는 독일 남부에서 먹는다는 누들과 샐러드, 볶은 고기였다. 다소 낯선 음식이었지만 먹자마자 내 입맛이라 양이 많아 보였는데도 거의 다 먹어다. 샴페인과 와인을 곁들이니 금상첨화였다. 한참 먹으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옆 집에 사는 모니카가 자신이 구운 빵을 들고 왔다. 그리고 다시 집에 가더니 양 손 가득 음식을 가지고 왔다. 우리가 먹던 누들을 홈메이드로 직접 만들어서 가져왔던 것이었다. Ingrid는 자신의 누들은 식품점에서 구입한 것이라고 하였다. 더불어 생전 처음 보는 식초와 갖은양념으로 며칠간 숙성시킨 고기도 가져왔다. 우리는 아무것도 먹지 못한 사람처럼 저녁을 새롭게 먹기 시작했다. 빵을 한 입 먹는 순간 따끈하고 고소한 맛이 입안에 퍼졌다. 나와 그녀는 계속해서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고 커다란 모니카의 홈메이드 빵은 점점 줄어들었다.

저녁 2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하다가 갑작스럽게 한국에 가서는 무엇을 할지 고민되어서 그런 이야기를 하였다. 그녀는 정말 간단한 문제인 듯이 네가 하고 싶은 거 해, 해보고 안되면 그만둬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간단하게 어떻게 할 수 있어?라고 물어보았는데 생각해보면 매우 간단한 문제였다. 내가 하고 싶은걸 하고 안되면 그만두고 다시 하고 그러면 되는데 나는 실패할까 봐, 능력이 안될까 봐 자꾸만 망설이고 있었다. 한편으로는 힘들걸 아는데 그것을 견뎌낼 자신이 없었던 두려움도 있다. 사실 그녀가 해준 말은 요즘 내가 흔히 듣는 위로의 말이었고 온전히 나의 문제이기 때문에 어떤 조언의 말도 내가 깨닫는 것만큼 도움이 되지 않는다. 실제로도 나는 전혀 마음이 편안해진다거나 고민이 없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나와 함께 지낸 순간들을 생각하며 그녀의 진심을 느낄 수 있었기에 행복했다.

Art 잡지에서 발견한 마음에 드는 사진 색감 & 거실에서 함께 시청한 텔레비전; 뉴스도 보고 아리랑 텔레비전도 우연히 보게 되어 한국 문화를 함께 감상하며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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