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밥을 주러 갔습니다.
잔디가 무성한 길을 지나 낡은 건물 벽 아래 작은 시멘트바닥에 고양이 밥그릇과 물그릇이 있습니다.
언제나처럼 그릇 주변엔 개미들이 모여 있습니다.
사료 그릇에 바글거리기도 하고, 물그릇에 빠져 있기도 하고 주변에 떨어진 사료를 옮기기도 합니다.
개미들이 점령한 사료는 고양이가 먹지 않습니다. 그래서 새 사료를 주기 위해 밥그릇에 있던 것은 개미들 먹으라고 풀밭 위에 버려둡니다.
오늘도 고양이 밥을 주러 그곳에 갔습니다.
사료가 조금 남은 밥그릇에 바람에 실려온 잎사귀를 걷어내고, 빈 그릇에 있는 먼지들을 털어냅니다. 아직은 아니지만 어지러이 돌아다니는 개미들이 행여나 밥그릇에 올라올까 싶어 빈 그릇을 땅에 탕탕 쳐댔습니다. 개미들을 치우기 위해 더 세게 내리쳤습니다. 어쩌면 죽이려고 했던 것인지도 모릅니다.
여전히 주위를 맴도는 개미에게 사료 한 알을 놓아주었습니다. 그걸 갖고 멀리 가라고 말입니다.
그런데 한 녀석이 사료에는 관심을 갖지 않고 옆에 있는 동료 개미에게만 자꾸 다가갑니다. 그제서야 알았습니다. 다른 한 녀석은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요. 꼼짝 않는 개미를 한 녀석이 계속 다가가 밀어봅니다. 말하는 듯도 하고 몸을 밀치는 것도 같고,
아 알겠습니다. 개미의 속삭임이 들렸습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아 알겠습니다. 개미의 울부짖음이 느껴졌습니다. 일어나 일어나라고.
내가 죽였어. 내가 죽였구나. 너를.
둘은 친구였거나 연인이었거나 가족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부지불식간에 친구를 잃은 개미의 당혹감과 분노와 슬픔이 내게 전해졌습니다.
저는 꼼짝도 못하고 그 자리에 얼음이 되었습니다.
미안해. 미안해, 미안해.
제가 대체 무슨 짓을 한 걸까요?
언뜻 가만 있던 개미가 움직이는 듯도 보였습니다. 하지만 그건 바람이었겠지요.
저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생명들을 앗았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까맣게 잊고 참 잘 살았습니다. 잘못을 깨닫게 하는 건, 누군가의 간절함, 슬픔이 전해져서 일까요?
살아남은 그 개미의, 떠날 줄 모르고 헤매는 그 모습만 아니었어도 전 아마 아무 양심의 가책도 없이 그 자리를 떠났을 겁니다. 살아남은 개미의 슬픔이 전해지지 않았다면 제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까맣게 모르고 지났을 겁니다. 기억해주는 누군가의 마음과 이름을 불러주는 누군가의 마음만이 죽은 것도 살아가게 하는 기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