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어른이란

by 혜랑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하는 때, 이 시대의 큰 어른을 잃었다는 슬픔에 크게 상심했다. 소탈한 것으로 잘 알려진 그분에 대해 내가 아는 건 텔레비전을 통해 본 모습밖에 없지만,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주고받던 모습만은 선명하다. 대통령의 권위가 없다는 비난도 받았지만, 그거야말로 권위적인 발상이 아닌가. 열심히 사셨고 똑똑했지만, 언제나 다가가 손 한번 잡아보고 싶게 만드는 따뜻함을 지닌 분. 시대의 아픔과 사람을 보듬어 안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사람, 그분이 내겐 큰 어른이었다.


김수환 추기경님을 비롯해 정의를 위해 애쓰신 분들이 큰 어른이라면, 가까이서 찾아볼 수 있는 어른도 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온 박동훈 캐릭터다. 이선균이 연기한 그 어른은 누구나 짊어지고 가는 삶의 무게를 견디는 소시민이다. 성공하고 싶고 돈도 잘 벌고 싶지만, 뜻대로 풀리지 않는 삶을 술과 조기축구로 위안 삼으며 살아가는 아저씨는, 이 시대의 모든 아저씨와 아줌마들이다. 그런 아저씨가 빛을 발하는 건 최소한의 도리를 지키며 살고자 하는 용기다. 자신의 치부가 드러날까 두려워하기보다 어리고 약한 젊은이의 삶을 지켜주고 싶어 하는 어른, 적어도 양심만은 지키며 살고자 하는 모습 속에서 ‘좋은 어른’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그리고 난 우리 부모님을 생각한다. 한번은 겨울에 연탄을 광에 한가득 들여놓았는데, 다음날 수도가 터져 연탄이 모두 뭉개진 일이 있었다. 한겨울을 날 연료를 다 잃었으니 낙심이 크셨을 텐데, 부모님은 걱정스러운 모습보다는 다 함께 헤쳐나가자며, 뭉개진 연탄을 퍼 날랐다. 어린 자식들은 열심히 하면 용돈 준다는 말에 마냥 즐거워했지만, 어른이 되어보니 알겠다. 빚 갚느라 힘들었던 그 시절에 그때 입은 경제적 타격이 얼마나 컸는지를. 그런데도 오히려 그 일을 가족이 다 함께 힘을 합쳐 헤쳐나간 즐거운 추억으로 만들어주셨으니,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어른은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의연할 수 있어야 한다.

keyword
이전 02화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