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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일!

by 혜랑

토요일은 기상 시간은 평소와 같지만 언제든 다시 누워서 낮잠을 즐길 수 있는 날이다. 세수도 안 하고 머리도 안 감고 밥은 먹고 싶을 때 먹는다. 토요일의 루틴이라면 청소하고 빨래하고 따뜻한 물에 오랫동안 몸을 담근 채 쉬는 것, 평범하기 그지없는 이런 날도 맘 편히 누리지 못했던 시절이 많았다. 주6일제 근무였던 시절에는 토요일도 평일의 연장이었고, 양가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는 으레 시댁을 방문하거나 친정집에 들르는 게 당연했다. 또 주말이면 얼마나 많은 경조사가 따랐던가.


토요일이 휴일이 되고 나서도 지금처럼 한량 같은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사실 한량처럼 보낸다는 게 시간만 많다고 되는 건 아니다. 가만히 있는 게 한심하고 시간을 낭비한다는 생각에 쫓겨 약속을 잡고 밖으로 나갔던 적이 얼마나 많았던지. 집에 있을 때는 그게 뭐든 의미 있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에 갇혀 종일 누워 있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보내면 마음이 한구석이 찜찜하고, 그런 나 자신이 참 한심스럽게 보였다. 외부적인 요인에서든, 내적인 갈등에서든 오롯이 누리지 못한 토요일이, 온전히 내 날이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다. 그중 가장 큰 이유는 나이가 들어서다.


양가 부모님이 돌아가시니 주말에 의무적으로 갈 곳이 없어졌다. 챙겨드려야 할 어른들이 안 계시고 마음 쓸 일도 없다. 자식이 없는 나로선 자연스럽게 시간이 남는다. 그런데 체력도 안 된다. 모든 에너지를 금요일까지 다 쓴 느낌이라 토요일 하루는 무조건 쉬어야 한다. 눈이 나빠지니 책 읽는 일도, 끄적거리는 일도, 뭔가 배우려는 시도로 저절로 줄어든다. 체력이 안 되니 친구들 만나러 외출하는 일도 귀찮아진다. 내적 갈등 없이 자연스럽게 나에게 집중하게 된다. 다음 한 주를 버티기 위해 토요일은 온전히 내 것이 되어야 한다. 뒤에 일요일도 있으니 든든하기까지 하다. 그런데 이상하다. 그토록 원했던 나만의 토요일이 되었는데 눈물이 난다. 행복한데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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