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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의 행복

by 혜랑

보증금 천만 원인 임대아파트에서 적은 월급으로 간신히 생활하던 그때,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내 삶이 나아질 거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복권에 당첨되면 모를까, 나이 사십에 인생 펼 일이 뭐가 있을까 싶으니 우울하고 불안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윗니가 내려앉아 얼굴형까지 달라지기 시작했다. 서른 살 초반에 충치를 뽑아야 한다는 의사 선생 말을 듣고 그리했다가, 나중에야 임플란트 시술로 유도하려고 한 짓이라는 걸 알았다. 10년이 지나자 음식을 먹는 데도 지장을 주었다.


더는 버틸 수 없어 천만 원짜리 마이너스통장을 만들어 치과에 갔다. 잇몸 교정과 임플란트 시술까지 무려 천백만 원이었다. 나는 허탈한 마음으로 시술 동의서에 사인했다. 계약 비용으로 20%를 먼저 내고 나머지는 치료가 끝난 다음에 내는 방식이었다. 병원을 나서는데 헛웃음이 났다. 천만 원 모으려면 내 월급에서 얼마를 몇 년 동안 부어야 하나 계산하려다 다 부질없어 보였다.


그래서였을까. 통장에 남은 7백만 원으로 여행을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수중에 들어있는 그 돈이 나를 유혹했다. 어차피 쓸 돈, 하고 싶은 거 다 하라고. 혼자 유럽 여행을 가려다, 맘고생 중인 언니가 생각나 전화했다.

“언니, 우리 여행 갈래?”

“나 돈 없어.”

“나도 없어. 나 마이너스통장 긁었어.” 그

말에 잠시 머뭇거리더니 다음날 같이 가겠다는 연락이 왔다. 그러자 이번엔 엄마가 생각났다. 아빠가 돌아가신 지 2개월이 지난 시점이었다. “여행은 무슨. 돈 들여 뭐 하러 그 먼 데까지 가? TV 보면 편하게 다 볼 수 있는데.” 이렇게 말씀하셨던 엄마가 다음날 여권을 만들러 시청에 가셨다.


우리 세 모녀의 첫 유럽 여행을 그렇게 이루어졌다. 엄마는 누구보다 열심히 여행을 즐기셨고 두고두고 행복해하셨다. 엄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수많은 후회 속에서도 가장 잘한 게 있다면 그때 엄마, 언니와 함께한 여행이다. 내게 가장 값진 소비는 가장 어려웠던 그때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나눈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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