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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해 Dec 22. 2023

그러면 나는 꼼짝할 수 없지

그러나 결혼은 계속된다


‘그 놈을 데려다 놓으면 문어다리 세 개가 되겠구나, 하나는 내 목을 감고 둘은 각각 내 한 팔씩을 감는다. 그러면 나는 꼼짝할 수 없지. 꼼짝할 수 없구 말구.’

토지 2부4권 84쪽에서 인용/ 마로니에 북스     


 길상은 용정으로 이주 후 공노인과 함께 서희를 도와 사업을 한다. 마차 사고를 계기로 서희의 결혼 제의를 받아들여 환국과 윤국 두 아들을 두게 된다. 깊은 애정을 가졌던 서희가 쓸쓸한 아내로만 느껴지고 둘 사이는 거리가 생긴다. 길상은 복수를 위한 서희의 귀향에 동행해야 할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길상은 아내와 두 아들이 자신의 목과 두 팔을 감고 있는 문어다리처럼 느껴지는 환상에 시달린다.     

 

 처성자옥(妻城子獄)이라는 말이 있다.

 아내는 성(城)이고 자식은 감옥(獄)이라는 뜻으로, 처자가 있는 사람은 집안일에 얽매여 자유롭게 활동할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같이 살면서 아내와 자식을 돌보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처자식을 외국으로 유학 보낸 뒤 ‘기러기 아빠’로 지내는 남성을 보면 그야말로 처성자옥이란 말이 실감난다. 꼼짝없이 돈 벌어서 처자식에게 송금한다. 남편과 아버지의 역할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남자들의 숙명이다.      


 그런데 그 성과 옥은 남자들이 스스로 걸어 들어간 곳이다.

 남자가 성인이 되어 짝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되면 그 부모는 말할 것도 없고 친지며 직장동료며 친구들이 모두 모여 박수치며 축하한다. 시간이 흘러 첫 아이를 낳으면 또 한 번 축하한다. 시간이 흐르면 또 주위에서는 둘째는 언제 낳을 거냐며 재촉한다. 요즘은 프라이버시 침해라며 싫어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혼과 출산은 한 사람의 인생에서 그 만큼 중요한 일이며 축하받을 일인 것이다.

 한 남자가 태어나 일가를 이루었으니 얼마나 기쁜 일인가?     


 처성자옥(妻城子獄)이라는 말은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의 역할이 그 정도로 무겁고 힘들다는 또 다른 표현이 아닐까?  결혼이 남자에게 감옥이 될 수 있다면 여성에게도 마찬가지이다. 하지만 그 감옥은 모두 스스로 걸어 들어간 감옥이다.     


 요즘 결혼하려면 예식장 예약이 전쟁이라고 한다. 보통은 1년 전에 예약을 해야 원하는 예식공간에서 결혼식을 할 수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얼마 전 지인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했다가 들은 얘기다. 성당에서 하는 결혼식이었는데 혼배미사 가능한 성당이 한정되어 있으니까 혼배시간 잡는 상담 시간을 배정 받기 위해 예비 신랑신부가 새벽부터 줄서서 기다리는 오픈 런을 했다는 것이다.     

 비혼주의자도 많고 세상이 많이 변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우리 인류는 결혼이라는 제도를 믿고 사랑하는 것 같다.


 그 곳이 감옥인줄 알면서도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결혼은 오늘도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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