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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piens Jan 23. 2024

한때 우리도 그랬다

-그 시절

■아침을 여는 시간


<am.5:50>



호들갑 떠는 잡음 속에서 우리는 고요한 밤을 맞이하고 있다. 높은 곳에서 겹겹이 흩어져내리는 모습은 선녀가 내려오는 것과 흡사하다. 공기의 저항을 받으면서도 고요함 덕분인지 하얀 눈송이들의 호들갑이 선명하다. 검은 빛깔 속 하얀 결정체들이 태어나고 태어나 세상을 가득 채우고 있다. 집과 도로, 거리의 가로수가 구분이 되지 않을 만큼 온통 하얗다.


어릴 적 깊은 밤 어머니 심부름을 다녀올 때의 세상 모습이 생생하다. 가로등도 없던 그 시절 세상이 온통 하얗게 흩뿌려진 탓에 어둠이 사라지고 밝은 밤을 거닐었었다. 서로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있는 도로 위를 조심스럽게 걸어가고 있는 어린 나와 언니의 모습은 동화 속 모습과 흡사했다. 벙어리장갑을 장착한 채 하얀 눈을 한 움큼 쥐고 동그랗게 뭉쳐보았다. 다시 눈 위에 던져 데구루루 돌리며 점점 몸집을 키웠다. 금세 만들어진 커다란 눈덩이는 거리 한편에 세워두었다. 그 위에 언니가 만든 눈덩이를 올려놓았다. 그리곤 사람의 형상으로 꾸며주면 방긋 웃는 눈사람이 탄생하였다.


한때 우리도 그랬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이 씁쓸한 미소를 짓게 한다. 요즘은 플라스틱 안에 눈을 담아 누르면 공장에서 찍어내는 오리모양이 만들어지기 때문일까? 눈과 소통하는 다양한 모습을 보며 시절 속 다른 모양을 바라보게 된다. 어릴 적 비료비닐을 깔고 눈썰매를 타며 코끝이 빨개질 정도 놀았다면 요즘은 플라스틱 눈썰매가 집집마다 준비되어 있다. 인공눈으로 스키장이라는 장소가 만들어지고 고가의 스키복을 착용한다.


가로등도 드물었던 시절, 가끔은 그리울 만큼 뚜렷하다. 그 잔상이 깊어서 뽀드득 눈을 밟는 소리가 이명처럼 들리는 듯하다. 운동화에서 걸을 때마다 인위적인 소리가 나는 신발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추운 겨울 아스팔트가 아닌 흙길 위에 수북하게 쌓인 눈길을 걸어보았던 경험이 있었다면 들어보았을 것이다. 뽀드득, 뽀드득.


밤새 눈이 내리는 겨울의 중턱이다. 며칠이 지나면 설이다. 온 동네가 왁자지껄 설빔을 입고 삼삼오오 거리로 나와 눈길 위를 수놓는 설, 추억 속 설은 그렇다. 세뱃돈만 필요한 명절이 아닌 새해를 맞이하는 기쁘고 의미 있는 날을 축복하는 날이었다. 아직 그 시절의 모습이 사라지지 않고 자라고 있다. 내 마음속 어린 걸음으로 걸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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