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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이 Aug 18. 2022

[단미가] #11. '파리하게' 시든 심연

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11

'파리하게' 시든 심연


점심시간이 되었다. 모두가 빠져나간 사무실에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점심의 풍요로움이 부담이 되기 시작했다. 애초에 뱃구레가 작은 탓에 점심을 소화를 하지 못했던 연이는 학창 시절부터 오후 수업시간에 졸기 일쑤였고, 가끔 분필이 오가거나 뺨 세례에 눈앞에 번개가 번쩍번쩍이기도 했다. 


부담스러웠다. 점심이.


몇 해 전부터 일이 많아져 몇 번 건너뛰는 일이 잦아지면서 차츰 점심을 먹지 않게 되었다. 속은 편해졌다. 그때 실수를 하는 일이 잦아졌기에 점심을 먹지 않았다고 했지만, 일이 많아져 감당이 되지 않아서 밤에 잠을 제대로 못 자고 피부병까지 생기면서 지긋지긋한 악순환의 고리가 완성이 되었다. 


일을 처리하는 시간을 줄이는 것은 한 번에 실수 없이 처리해야 했기에 점심을 건너뛰는 초강수를 두었다.


일이 줄어들었지만, 여전히 점심을 하지 않는다. 다만 미숫가루에 두유를 넣어 마시는 것으로 충분했다.


그날도 그랬다. 다들 빠져나간 시간에 미숫가루가 든 통에 두유를 붓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문득 일인용 옷장 겸 파티션 위에 놓인 자그마한 선인장과 마주쳤다. 


까맣게 말라버린 선인장.


누군가가 온기가 없는 이곳에 물이 조그만 있어도 살 수 있는 선인장을 가져다 놓았을 텐데, 연이는 거기에 선인장이 있는지 몰랐다. 아니 존재 자체를 인지하지 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 같다. 


미숫가루 통을 흔들며 종이컵에 물을 떠가지고 선인장 앞으로 다가왔다.


'죽었을까?'


물을 주자 힘없이 물을 뱉어내었다. 선인장은 흙이 아닌 모래나 작은 돌 알갱이 같은 곳에서 자라기 때문에 물을 머금을 수 없다. 


며칠째 업무의 가중에 시달렸다. 새벽에 문득 깬 연이는 화장실에서 파리하게 시든 심연의 눈을 가진 이를 거울을 통해 볼 수 있었다. 마치 테이블 위에 놓인 말라비틀어진 선인장처럼 제때 물을 머금지 않아 죽음의 경계에 있는 한 생명체처럼 말이다.


업무를 하다 점심시간이 되면 선인장을 살폈다. 죽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어느새 새로운 이파리가 나오고 있었다. 아마 파리한 연이의 심연에도 열정의 새로움이 피어나길 고대했었는지 모르겠다.





ABOUT '단미가'(단어의 의미가 가슴으로 다가올 때)


'어의 의가 슴으로 다가올 때', 일명 '단미가'는 연이가 어릴 적, 학창시절, 대학교 시절, 공시생 시절, 교행 근무하는 지금과 앞으로 있을 미래를 포괄하여 특정 단어의 의미가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다가오는 경험을 연이만의 '연이체'로 독자들에게 들려드리려고 기획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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