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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영은 Jan 01. 2024

현실을 긍정하는 법

카테리나 비로쿠르, <푸른 배경 위의 꽃> (1943)

어른은 아이를 가르쳐야 하는 임무가 있다. 어른이고 아이라는 말 뜻이 그렇다.

하지만 가끔, 아니 자주 나는 아이들에게 배운다.


서로가 바쁜 아침에는 말한마디, 행동 하나로 예민해지기 십상이다. 한창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첫째가 체육복 티셔츠를 들고 명령하듯 말했다.

“이거 가방에 넣어!”

아니, 엄마한테 해주세요도 아니고, 해줘도 아닌, 해!가 뭔가!!

바빠죽겠는데 평소 말버릇에도 민감한지라 해주지 않고 대치구도를 만들었다. 그런데 옆에 있던 막둥이가 누나 티셔츠를 들고가 슬쩍 넣어주는게 아닌가.

“누나한테 해주지 마!”

그런 나에게 막둥이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한다.

“그러면 늦잖아…”

슬로우 모션으로 뒷통수를 한대 맞은 기분이었다. 나는 또 쓸데없이 감정소모를 하고 말았다.


좋아하는 친구들과 지지고 볶고 싸우고도 하루만에 아무일 없었던 것처럼 같이 노는 둘째. 나는 부부싸움을 해도 몇 일을 벼루고 벼뤄야 사과할 용기가 나는데 … 그런 아이가 부러워서 비결을 물었다.

“엄마 그냥 기억상실증에 걸리고, 오늘 놀고 싶다는 생각만 하면 돼!”

“진짜 간단하네...”


아이들은 복잡하지 않다. 지금 중요한게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알고 있다.


세상에는 수많은 꽃 그림이 있지만 내 마음을 사로잡은 꽃 그림 작가가 있다. 바로 카테리나 비로쿠르.

그녀가 그린 꽃들은 그저 관찰 대상으로서의 꽃이 아니다. 식탁 위를 장식할 예쁘고 화려한 꽃다발도 아니다. 작가의 따뜻하고 세심한 시선으로 다시 피어난 꽃들이다. 이름없는 들꽃에서조차 강인한 생명력이 느껴진다.

그녀는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꽃의 아름다움을 볼 줄 알았고, 그것을 그림 속에 담았다.

1900년에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한번도 전문적인 미술교육을 받지 못했던 비로쿠르는 현실의 삶 또한 매우 비루했다. 하지만 화가의 꿈을 놓지 않고 집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들로 꾸준히 꽃그림을 그렸다. 하고 싶은 일이 분명했던 그녀이기에 꽃을 그릴 때도 복잡한 계산 따윈 하지 않았을 것이다.

사랑하는 꽃을
사랑하는 그림으로
아름답게 피워내는 것

그것이 그녀의 그림이 가진 가장 단순하고 강렬한 메세지다.


나는 부정적이고 극단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에게 인생을 긍정하고 현실을 사랑하며 사는 법을 가르치고 싶었다. 아이들의 말투도 고치고 싶고, 행동도 바꾸고 싶고, 나쁜 생각도 지우개로 지워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어떻게 해도 내 뜻대로 잘되는 일은 없었다.


나는 그럴때마다 이 그림을 떠올린다. 어쩌면 방법은 매우간단한 것일지 모른다고.


내가 지금 아이를 긍정하고
사랑을 담아 바라보며
그 마음을 더 많이 표현하는 것 말이다.


아이들은 그런 내 마음 밭에서 생명력을 얻고 예쁘게 피어날 것이다. 그것 말고 더 좋은 가르침은 없을 것 같다.


그녀의 작품 전체에서 느껴지는 몽환적이면서 희망에 찬 느낌은 이미 작가의 미래를 예견했던 것 같다. 40이 되어 우연한 기회에 전시회를 하게 되고 결국 20세기 우크라이나를 대표하는 대표 작가가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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