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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토리망자 Sep 24. 2024

먼지보다 가벼운 기록 07

07.


오랜 시간이 흘렀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모를 정도의 시간이었다. 태양도, 달도 없는 곳에서 오로지 숫자만을 믿고 시간의 흐름을 가늠하기에 인간은 너무도 감각적인 존재라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어쩌면 정우도 이런 시간들을 경험했는지도 모른다.


언니는 미치지도 않았고 거짓말쟁이도 아니었다. 언니는, 아니 정우는 나를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선배라고 불렀던 그 정우였다. 정우는 실종된 게 아니라 에디가 말한 시간 곡선에 휩쓸린 게 분명했다. 그리고 어렸던 나를 만난 것이다. 서로가 있기에 존재하는 삶. 그러나 그게 문제였다.


“널 찾으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걸까.”


에스테는 중얼거렸다. 이 거짓말 같은 퍼즐에는 거스를 수 없는 법칙이 있었다. 시간은 허락해 주지 않을 것이다. 그 모든 법칙을 무시하고 기어코 정우를 찾아낸다고 하더라도 그 이후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가늠할 수 없었다. 연기처럼 정우가 소멸되거나, 자기 자신이 소멸될 수도 있을지도 모른다고 에스테는 생각했다.


에스테는 정거장으로 돌아왔다. 식량도 부족했고 연료도 다 떨어진 상태였다. 그는 돌아오자마자 기항지에서 에디를 찾았으나 에디는 없었다. 대신에 낯선 얼굴을 한 누군가가 에스테를 맞았다.


“에스테..? 그런 이름은 없는데요. 본인 맞아요?”


익숙한 사무실에서 에디가 하는 업무를 낯선 얼굴을 한 흑인 여성이 담당하고 있었다. 에스테가 에디의 존재를 묻자, 그는 웃으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했다.


“본사가 세워지고 나서 나는 여기서 쭉 일했어요, 에스테. 전임자는 없었어요.”


에스테는 직감했다. 시간 곡선에 빨려 들어간 건 정우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시리도록 피부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아무도. 아무도 없구나. 정우도, 에디도 없어. 에스테는 얼굴을 감싸 쥐었다. 작게 떨리는 에스테의 어깨를 누군가 토닥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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