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재미있을지 없을지도 모르는 긴 글을 읽기 전에 퀴즈 2개를 풀어보자
어느 평일 저녁 서울 광화문에서 퇴근하던 A씨는 우연히 고등학교 친구 B씨를 만났다. 2~3년 전 B씨의 결혼식에 참석했던 게 떠오른 A씨는 "신혼 잘 보내고 있지?"라고 물었다. B씨는 "어 그럼~"이라고 답했다. 그렇다면 A씨의 다음 질문은 무엇일까?
이번 인사로 OO팀에 새로 온 입사 5년 차 C씨. D팀장은 인자한 얼굴로 인사를 건넨다. "반갑네, 결혼은 했고?" 이에 C씨는 "네, 2년 됐습니다"라고 답했다. 그럼, 이어지는 D팀장의 질문은 뭘까?
힌트는 1,2번 문제의 답이 같고, 두 글자라는 거다. 30대 이상이라면 이미 문제가 끝나기도 전에 혼잣말로 답을 내뱉었을지도 모른다. 정답은 바로 "애는?"이다. 대한민국에서 하루에 수백, 수천 번도 더 나오는 '가장 평범한' 질문이면서,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가장 잔인한' 질문이기도 하다.
"애는?"
이 평범한 질문이 누군가에겐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의 고통을 준다.
이제부터 내가 할 이야기는 적어도 대한민국 사람 20명 중 1명과는 관련이 있는 주제다. 이것은 하나의 질환인데, 병원에서 이 진단을 받은 사람이 한 해 23만 명쯤 된다. 배우자(23만)를 합치면 46만 명, 부부의 부모님 두 분씩(92만) 더하면 138만 명, 그리고 부부의 형제자매(1명씩, 46만)와 그 배우자(46만)까지 합하면 총 230만 명이 이 질환의 '영향권' 아래 있다. 대한민국 인구가 5천2백만 명이 좀 안 되니까 대략 전체의 5%쯤 되는 비중이다. 출퇴근길 지하철(한 칸 정원 160명)로 따지면 칸마다 8명쯤은 자신, 또는 가장 가까운 가족이 이 질환으로 고통받고 있다고 보면 된다.
예전에는 아니 불(不) 자를 붙여 '불임(不妊)'으로 불렸던 무시무시한 질환, 바로 '난임(難妊)' 이야기다. 남녀가 사랑을 하면 당연히 생기는 줄만 알았던 아기가, 당황스럽게도, 찾아오지 않아 고통받는 난임 부부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해보려 한다.
다시 퀴즈로 돌아가 보자. B씨가 만약 난임 부부라면, 그래서 아이를 낳고 싶은데 낳지 못하고 있다면, "애는?"이라는 질문이 과연 어떻게 다가올까? 생각 없이 한 행동이 누군가에게 상처를 줬을 때 우리는 흔히 '무심코 던진 돌멩이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는 말을 한다. 난임부부에게 이 질문은 돌멩이 정도가 아니라 개구리의 몸이 갈가리 찢기는 '기관총 세례'라고 보면 된다.
그런데 여기서 한 발짝 더 나아가, 수류탄에 크레모아까지 터뜨리는 사람들도 있다. 평소에 자신을 상냥하다고 생각한 사람일수록 수류탄과 크레모아를 더 잘 작동시킨다. 작동 신호는? 머쓱한 표정과 함께 B씨가 내뱉는 다음과 같은 말이다. "그러게, 생각보다 잘 안 생기네", "애가 안 생겨서 걱정이야". 이 말을 들은 '상냥한 친구' A씨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B씨의 어깨도 툭툭 치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이제, B씨의 가슴이 수류탄과 크레모아로 산산조각 날 일만 남았다.
"에이, 마음 편하게 가져~"
펑!
"나이도 젊은데 뭐~ 조급해하지 마~"
또다시 펑!
(누군가는 목소리를 갑자기 낮추며 '19금'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그것도 길 한복판에서! )
"내가 그렇게 했더니 한 번에 첫째가 들어섰다니까~"
또 한 번 펑!
조급해하지 않으면서 마음을 편하게 갖는 것, 난임부부들은 이미 이 단계를 한참 전에 넘어선 경우가 대부분이다. 각종 비법? 안 해본 게 없는데도 안 되니까 힘든 거다. 그러니까 이런 말이 위로가 되기는커녕 펑펑 터지는 수류탄, 크레모아가 되는 것이다.
"마음 편하게 가져"
이런 말은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당신이 뭔데 그렇게 잘 아느냐고? 나와 아내도 23만 난임부부의 일원이기 때문이다. 이제부터 내가 써 내려갈 글은 우리 부부가 3년째 벌이고 있는 '난임과의 전쟁'에 관한 이야기다. 매달 몸에서 정자와 난자를 뽑아내고, 극한의 기대와 좌절을 반복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애는요?"라는 기관총 세례에 시달리는, 그래서 가슴이 너덜너덜해지고 만, 우리들의 '생존기'다.
또,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여인이 눈물짓는 모습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남자가 기록한, 지독하게 슬픈 관찰기이기도 하다. 우리 부부가 살아냈던, 날 것 그대로의 삶을 여기에 하나씩 옮겨보려 한다.
이 글을 읽었으면 하는 독자는 세 부류다.
"애는?", "조급해하지 마~"라는 말을 수시로 건네는 이 사회의 '상냥인'들(물론 그 선한 뜻을 모르는 바는 아니다).
난임을 겪는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언니, 오빠, 동생을 두고서도 조심스러워서 아무것도 묻지 못하는 '난임 가족'들.
그리고 영원히 끝나지 않는 터널 속에 있는 것만 같은, 하루하루가 힘겨운 우리 동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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