린후이인 <연등> 감상과 낭송
오늘은 중국 현대시 감상 제3탄이다.
오늘 함께 감상할 작품은 그중 린후이인의 <연등 蓮燈>이라는 시다. 1931년 11월, 린후이인을 만나러 오던 쉬즈모가 불의의 비행기 사고로 이승을 떠난 후, 1932년 그를 애도하며 발표한 작품이다. 그러니까 이 작품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반드시 먼저 그들의 기구한 삶과 사랑의 스토리를 알아야 한다. 아직 읽지 못하신 분은 먼저 아래의 글을 읽고 오시라. 최소한 첫 번째 글이라도 꼭 읽으셨으면 한다.
나는 이 시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여러분도 틀림없이 좋아하실 것이다. 내가 <연등>과 처음 만나 사랑에 빠진 곳을 사진으로나마 함께 가보시면 그 이유를 알게 되실 거다. 중국 운남성에 있는 여강(麗江, 丽江, 리/지앙 Li Jiang)이라는 오래된 도시다.
샹그릴라는 무엇? : <울릉도, 방랑의 추억. 제5장, 일요일엔 참으세요> 참조
여강은 샹그릴라 Shangri―La의 초입이자 차마고도茶馬古道의 중요한 거점 도시다. 자세한 얘기는 나중에 [샹그릴라, 방랑의 추억]에서 하도록 하자. 아무튼 해발 2,400m인 이 도시는 시내 어디에서든지 해발 5,596m의 옥룡설산의 만년설을 볼 수 있다. 바로 저 설산 뒤에서부터 티베트고원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기는 티베트족과 사촌 격인 나시족納西族의 본거지다. 120만 인구의 이 도시에는 약 25,000명이 고성古城 안에 산다. 기와지붕이 우리와 너무나 닮아서 정겹기 그지없다. 약 800년 전에 지은 이 성곽 없는 성은 과학적으로 치밀하게 건축되었다. 예컨대 1996년에 진도 6이 넘는 대지진이 일어나, 신 시가지 곳곳이 무너지고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지만, 이 성안의 건축물은 추호의 파손도 없었다. 그다음 해에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다. 오늘날 여강 고성은 전 세계 관광객들의 꿈의 여행지다.
여강 고성은 차마고도의 거점답게 모든 도로가 오화석五花石으로 포장되어 말이 불편 없이 다닐 수 있었다. 사진은 이 지역을 다스렸던 목씨木氏 왕부王府의 벽화. 진융金庸 무협소설 《천룡팔부》의 주요 무대다.
가장 놀라운 점은 수리시설이다. 이 고성의 기와집들은 사자산 정상에서 아래로 차곡차곡 내려가는데, 골목 사이사이 바둑판처럼 얽힌 수로를 통해, 어느 집에서나 벽옥 같이 차갑고 맑은 식수를 구할 수 있다. 물이 모이는 우물에서는 높이에 차등을 두어 제일 높은 곳의 물은 식수로, 그다음은 설거지 용으로, 맨 아래로 떨어지는 물은 세탁용으로 사용한다. 그리고 그 수로는 아래로 내려올수록 점점 더 넓어진다.
이곳에 밤이 찾아오면 전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인산인해의 관광객들은 고성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그중에서도 연등은 단연 최고의 인기 품목!!
우리나라에서는 부처님 초파일 같은 날에 공중에 매달기만 하는 연등을 여기서는 물에 띄워 보낸다. 그 모습이 정말 황홀하게 아름답다.
중국에는 이런 수로가 많다. 강남땅 소주와 항주 등 남북(경항) 대운하가 지나가는 곳마다 이런 수로가 있는데, 풍광이 좋아서 관광객들이 몰리는 곳에는 밤마다 위의 사진처럼 연등을 물에 띄워 보낸다. 바람에 흔들리며 파도에 떠밀리며 머나먼 강으로 바다로 흘러가는 작고 영롱한 연등의 여행... 린후이인은 우주의 나그네가 되어 조용히 자신의 삶과 사랑과 죽음을 관조한다.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천상병의 <귀천> 마지막 구절을 떠올리게 하는 마무리 구절을 낭송하며, 그녀가 자신이 겪은 기구한 삶과 사랑을 어떻게 연등에 비유하여 노래했는지 감상해 보자. 그 연등이 그녀만의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모두의 것임을 가슴으로 느끼게 될 것이다.
먼저 직역에 가깝게 번역해 보았다. 원작자의 의도를 최대한 살리려고 노력했다.
如果我的心是一朶蓮花, 正中擎出一支点亮的蠟
만약 나의 마음이 한 떨기 연꽃이라면
한가운데에서 어둠을 밝히는 촛불을 떠받드리라.
熒熒雖單是那一剪光, 我也要它驕傲地捧出輝煌
가물가물 비록 한 줄기 빛에 불과하지만
휘황찬란 그래도 자랑스럽게 받들어 모시리라
不怕它只是我個人的蓮燈, 照不見前後崎嶇的人生
설령 나 혼자만의 연등이라서
파란만장 인생의 기구함을 다 비추진 못하더라도
浮沈它依附人海的浪濤, 明暗自成它內心秘奧
세상의 파도에 의지해서 오르락내리락
빛과 어둠은 저절로 마음속의 신비로움 되네
單是那光一閃花一朶, 像一葉輕舸駛出了江河,
저 빛 한줄기 꽃 한 송이,
일엽편주처럼 강물로 흘러 흘러가
婉轉它飄隨命運的波湧, 等候那陣陣風向遠處推送
운명의 파도 따라 굽이 굽이쳐,
바람 기다려 저 멀리 밀려가네
算做一次過客在宇宙裏, 認識這玲瓏的生從容的死
어쩌다 우주의 나그네 된 셈이니,
영롱한 삶과 조용한 죽음을 깨닫는다
這飄忽的旅程也就是個, 是個美麗美麗的夢.
바람에 나부꼈던 이 여행은 바로
바로 아름답고 아름다운 꿈이리라
이 시는 가수 황리삥(黃麗氷, 黄丽冰)에 의해서 노래로 불려졌다. 그 멜로디의 글자 수에 맞춰서 우리말로도 노래를 부를 수 있도록 번역해 보았다.
如果我的心是一朶蓮花, 正中擎出一支点亮的蠟
내가 한 송이 연꽃이라면, 어둠 밝힌 촛불 받드리라.
熒熒雖單是那一剪光, 我也要它驕傲地捧出輝煌
가물대는 한 줄기의 빛, 나에겐 자랑스런 휘황찬란.
不怕它只是我個人的蓮燈, 照不見前後崎嶇的人生
오직 날 위한 내 연등이라도, 험난한 인생 밝히지 못해.
浮沈它依附人海的浪濤, 明暗自成它內心秘奧
인파의 흐름에 떠내려가니, 빛과 어둠은 마음속 비밀.
單是那光一閃花一朶, 像一葉輕舸駛出了江河,
저 빛 한줄기 꽃 한 송이, 일엽편주로 흘러 흘러가
婉轉它飄隨命運的波湧, 等候那陣陣風向遠處推送
운명의 파도 따라 굽이쳐, 바람 기다려 저 멀리 저 멀리
算做一次過客在宇宙裏, 認識這玲瓏的生從容的死
우주의 나그네 되었으니, 영롱한 삶, 조용히 떠나리라
這飄忽的旅程也就是個, 是個美麗美麗的夢.
바람에 나부꼈던 이 여행, 아름답고 아름다운 꿈
<연등> 린후이인
내가 한 송이 연꽃이라면, 어둠 밝힌 촛불 받드리라.
가물대는 한 줄기의 빛, 나에겐 자랑스런 휘황찬란.
오직 날 위한 내 연등이라도, 험난한 인생 밝히지 못해.
인파의 흐름에 떠내려가니, 빛과 어둠은 마음속 비밀.
저 빛 한줄기 꽃 한 송이, 일엽편주로 흘러 흘러가
운명의 파도 따라 굽이쳐, 바람 기다려 저 멀리 저 멀리
우주의 나그네 되었으니, 영롱한 삶, 조용히 떠나리라
바람에 나부꼈던 이 여행, 아름답고 아름다운 꿈...
<연등> 한국어 낭송
<연등> 중국어 낭송
<연등 蓮燈> 林徽因
如果我的心是一朶蓮花, 正中擎出一支点亮的蠟
熒熒雖單是那一剪光, 我也要它驕傲地捧出輝煌
不怕它只是我個人的蓮燈, 照不見前後崎嶇的人生
浮沈它依附人海的浪濤, 明暗自成它內心秘奧
單是那光一閃花一朶, 像一葉輕舸駛出了江河,
婉轉它飄隨命運的波湧, 等候那陣陣風向遠處推送
算做一次過客在宇宙裏, 認識這玲瓏的生從容的死
這飄忽的旅程也就是個, 是個美麗美麗的夢.
린후이인 작사, 황리삥黃麗氷 노래 <연등 蓮燈> ☜ 클릭
우리 글벗 작가님들께서 저와 함께 중국어 공부를 열심히 하셔서, 이 시를 중국어 원문으로 낭송하며 음미하실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아름다운 샹그릴라를 찾아 여강고성을 지나가는 길에 수로로 흘러가는 연등을 보고, 이 시를 낭송하며 소오생을 한 번쯤 기억해 주신다면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일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