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차세계대전 직전 독일은 티르피츠 제독의 지휘 아래 건함 경쟁에 적극 뛰어들었다. 약 4억 8백만 마르크를 투자해 전함을 대량으로 건조하였고 전쟁 직전에 이르어 영국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하였다. 동시에 3B 정책(베를린-비잔티움-바그다그)으로 중동 쪽으로 발을 뻗어 세를 크게 확장해나갔다.
그렇다면 독일은 왜 저렇게 무리하게 그것도 기존 강국인 영국과 충돌할 위험을 감수하고 나선걸까? 이러한 영독 갈등은 투키디데스의 함정 이론에 비추어 보면 신흥 강국인 독일이 기성 강국인 영국과 충돌한 것이지만 이건 1차원적인 분석이고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독일 생존의 문제였다.
우선 영국의 강력한 해군 증강은 자유무역 체제를 도입한 영국의 안전을 위해서 였다. 영국이 1864년 곡물법을 폐지하고 필요한 곡물을 수입하고 공산품의 수출을 경제 기반으로 삼으면서 수출입이 영국 생명줄이 된 것이다. 이에 대해 자유당 의원이자 훗날 육군 장관이 되는 홀데인은 "이 나라의 무역량은 10억 파운드인데 해군 예산은 3% 밖에 되지 않는다"고 발언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산업 경제는 엄청난 속도로 발전하면서 수출량과 식량의 수입이 급증했다. 그 때문에 독일이 사용할 수 있는 항로인 북해와 발트 해가 영국 해군에게 봉쇄당한다면 큰 일이었다. 훗날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이 유보트를 활용해 중립국 선박까지 공격해가며 발악했던 것도 이 때문이다.
이렇듯 독일에게 있어서 해양으로 나가기 위한 시도는 충돌을 감수하면서도 생존을 위한 측면도 있었다. 1차세계대전에 있어서 독일의 책임을 덜어줄 생각은 없다만 조금 건조하게 보자면 그러한 측면도 있었다는 것이다. 이는 오늘날 러시아도 마찬가지인 부분이 있다.
러시아 해군 쪽을 먼저 살펴보자. 러시아 해군에는 구 소련 때부터 우려먹던 키로프급 순양함 같은 거 부터 50년 이상 된 것까지 정말 구형이 많다. 즉 그러니 러시아 해군은 사실상 유사시에 SLBM으로 미국과 나토 소속국 본토를 핵으로 날려버릴 SSBN을 위해 존재하는 곳이 되어버린 상태다.
해양 전략 쪽도 보자. 무르만스크주에 있는 북방함대는 북해에서 나토군과 전투가 벌어졌을 때 쓸 만하지만 북극 근처라 빙판길이어서 효율이 그다지 좋지 않다. 발트함대는 그래도 무르만스크보단 덜 얼지만은 칼리닌그라드가 러시아 본토와는 떨어져있고 발트 3국과 폴란드에 포위된 형국에 북해로 나가는 루트는 프랑스와 독일이 막고 있다.
태평양함대는 일본을 견제하고 유사시에 보레이급 SSBN으로 미국에 SLBM을 쏴날릴 수 있지만 블라디보스토크 역시 부동항이 아닐 뿐더러 미 해군 7함대에 막혀 더 남방으로 진출하지 못한다. 역사적으로도 러시아는 블라디보스토크로는 태평양 진출에 한계를 느껴 뤼순항을 조차하고 한반도에도 거문도로 내려왔지만 일본한테 깨졌었다.
그러니 그나마 믿을 곳이 흑해함대인데 이곳 또한 나토 소속인 터키가 틀어막고 있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에 집착한 이유와 에르도안과의 관계 개선에 나선 이유도 세바스토폴을 얻어야 터키의 흑해 장악을 막고 보스포루스 해협을 지나 러시아가 소련 시절부터 조차한 시리아 타르투스 군항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타르투스 군항은 러시아의 중동 진출 거점이기도 하기에. 이처럼 러시아의 해양 진출 전략은 막힌 상태다.
(사실 독일과 비교할 거면 해양만 봤어도 되었지만) 육군 쪽을 보자면 거기다가 러시아군의 붕괴는 숙명이다. 1998년 당시 러시아군은 200백만 가까이 되었는데 지금은 약 100만명 정도로 줄였다. 그 이유는 징병제를 하면서 경제 활동 인구는 줄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징병제를 하면서 복무기간을 늘린다고 쳐도 러시아 사회의 심각한 저출산 때문에 2025년에서 2030년 사이에 심각한 규모로 병력 자원이 줄 것이 자명하기에 군축은 숙명이다.
그 뿐만이 아니다. 러시아 전차 중 2,000대 가량은 T-72나 T-80 초기형 같은 냉전 시기 전차이며 개량형인 T-72B3와 T-90M 등의 최신 전차들은 합치면 1,000대 밖에 안된다. 그래서 구형 전차를 대체하고자 러시아 정부는 T-14 아르마타 1,000대 생산에 들어갔지만 규격도 다르고 탄종도 달라서 기존 설비를 뜯어고쳐야 생산 가능한 구조에다가 비리까지 터져서 제대로 진행되고 있지 않다.
그러니 어찌 보면 해양 진출도 막혔고 군 붕괴도 숙명인 상황 속에서 러시아는 급할 것이다. 이에 따라 최대한 빨리 완충지를 확보하여 향후 장기적으로 안전보장을 획득하기 위해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고도 볼 수 있다. 1차세계대전 직전 독일과 오늘날 러시아는 생존의 문제로 싸우는 것이다. 다만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은 보오전쟁과 보불전쟁으로 다져진 전투력과 뛰어난 군 장비, 전술, 지휘관에 빠른 산업화 속도까지 성장하는 국가였지만 러시아는 이미 몰락해가는 국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