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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진 Aug 23. 2024

"좋네" 짧고 건조한 피드백이 더 상처가 되는 이유

<6> 작가 지망생에게 피드백이란

  

  첫 소설을 마무리한 뒤 미묘한 감정이 몰려왔다. 서로 상충하는 감흥들이 뒤섞여 뭐가 내 진심인지 알기 어려울 지경이었다.   

            

  나의 글을 이해할 수 있는 독자에게 보여주고 깊이 있는 피드백을 받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첫 소설에 불과한 설익은 졸고를 공개했다가 망신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몰려왔다. 보물단지를 집에 숨기고 있는 사내처럼 다소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했다가, 그 단지 안이 텅 빈 것을 뒤늦게 발견한 냥 멍해지기도 했다. 참으로 복잡다나 했다.         

          

  꼭 들어맞는 사례는 아니지만, 로또에 당첨된 순간과 비슷하다는 느낌도 들었다.        

  술자리에서 ‘로또 당첨 사실을 누구에게만 알릴 것인가’라는 주제가 테이블 위에 오른 적이 있다. 호기롭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과 상금을 나누겠다는 친구부터 가족에게조차 이 사실을 말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사람까지…. 반응은 각양각색이다.      

              

  “돈이 아까워서가 아니고, 위험할 수도 있잖아. 테러를 당할 수도 있고, 경호원부터 고용해야 하나”     

  “야. 요즘 로또 당첨금 20억 원도 안 해. 그거 가지고 경호원까진 오버야.”     

  “20억이면 파이어를 실현할 수 있는 돈인데, 너무 쉽게 생각하는 거 아니야.”               


  허세 가득한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하나 만은 분명했다. 나의 행운은 내 안에 있을 때 가장 큰 행복감을 준다는 것. 아무리 관종 셀럽에 자기 연봉을 SNS에 실시간 인증하는 시대라지만, 로또 당첨에 따른 리스크가 너무 크다는 얘기다. 마치 유명인의 공개 연예처럼.        

       

  대화 말미에 화자의 다수는 ‘임금님 귀는 당나귀귀’를 외치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는 게 현명하다는 결론에 다다르곤 했다.               


   로또는 아니지만…. 아직 첫 작품을 아주 가까운 지인들에게도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 아마도 두려움이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일단 원고지 80매에 달하는 긴 글을 처음부터 끝까지 제대로 읽어준다는 건 생각보다 큰 에너지가 드는 일이다. 더구나 유튜브 쇼츠에 길들여져 2시간 영화도 완독 하지 못하는 현대인에게는 ‘보여줘도 다 안 읽을’ 가능성이 더 크다. 살면서 수능 이후 문학 작품을 한편이라도 제대로 읽지 않고 사는 사람이라면 더더욱 그럴 것이다.                    


  마음을 터 놓을 수 있는 가까운 지인의 경우도 마찬가지. 나와의 관계를 생각해서 “좋네”라는 식의 격려는 받을 수 있겠지만, 이 글이 가진 장점과 한계를 아주 현실적인 관점에서 조언해 줄 사람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너무 많은 이해심은 무관심일 수도 있지'라는 가수 이승환의 노래 <다만>의 한 구절처럼. 어쩌면 긍정적 피드백이 상처가 될 수 있다.  “좋네”, "잘 봤어"라는 덕담이 가장 상처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든다. “좋네”는 ‘별 관심이 없구나’로 읽힐 수 있어서다.     


  혹평에 대한 두려움도 사실은 여러 갈래다. “타깃 독자층이 없다”, “이런 돈도 안 되는 글을 왜 쓰냐”, “재미는 있는데, 팔리진 않을 거 같다” 류의 지적은 충분히 감수할 수 있는 부분이다.                

  다만 ‘문학적으로 가망성이 별로 없어 보인다’와 같은 피드백은 창작 욕구의 싹을 잘라낼 만큼 아플 수 있다.           

  소설을 좀 읽는 분에게, 제대로 된 사례를 드리고, 평가를 받는 방법도 생각해 봤다. 그러기엔 첫 작품이고, 완성도가 너무 떨어진다고 느낀다. 사례금을 얼마를 드릴지도 문제다. 어줍지 않게 사례금만 챙기는 평가원을 만날지도 모를 일이다. 여러모로 피드백을 요청하기 어려운 상황인 것이다.      


  소설가 지인도 마찬가지다. 이 정도의 수준의 글을 부탁하는 건 그들의 전문성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일 수 있다. 기존 인간관계 때문에 적나라한 평가가 애초에 불가능할 수도 있다.          


  지망생들끼리 서로의 글을 봐주는 ‘합평(다 함께 평가한다는 뜻일까)’이라는 게 있다는 말도 들었지만 선뜻 내키지 않는다. ‘40대 지망생이 있기는 할까’라는 마음도 있지만, 나라는 사람을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에게 ‘묻지 마 팩폭’ 수준의 내상을 입긴 싫다.      


  브런치나 공개된 장소에 글을 올려볼까도 생각해 봤다. 하지만 기자라는 직업병 탓이 발목을 잡는다.     

  새로운 팩트나 특종을 잡았을 때 기자들은 최대한 동이 틀 때까지 그 사실을 숨기고, 나만 쓰기 위해 노력한다. 소위 풀 되지 않게 ‘당꼬를 친다’, ‘단속 친다’는 말이 있다. 아무도 관심 없는 글이건만, 이런 습성은 공개된 곳에 풀하는 것을 주저하게 만든다.     


  내 글을 보여줄 사람 하나 제대로 없다니…. 허탈한 마음이 밀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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