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점선면 May 12. 2023

부재(不在) 실감(實感)

순간들

2022. 10월


# 1

어머니 나이 90세. 전화통화, 문자도 있는데 가끔 카카오 톡으로 연락을 했다. 어머니의 전화가 중지되고 난 후, 어머니와 대화방 카카오 계정 프로필을 클릭하자 어머니의 카카오 계정이 (알 수 없음)으로 바뀌었다.

어머니와 카톡 대화방에서 2020년 10월부터 주고받았던 말들이 (알 수 없음)과의 대화가 되었다.



#2

생일날이면 아침에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었다.

'어머니, 오널 나 난 날이라. 고맙수다. 낳고 키와줭.'

'알았쪄. 건강허게 잘 살라.'

'어머니도 재미나게 삽서.'

'오. 난 막 재미나게 살암쪄. 잘 살켜.'

매년 크게 다를 바 없는 대화였다.


올 해는 아침상을 차리다가 남편이 있길래, 혼잣말이면서 남편도 들으라고 말이 튀어나왔다.

'마미(어머니한테는 오그라들어서 못했지만, 남편과 대화할 때는 마미라고 어머니를 칭했다. 시어머니를 어머니라 하다 보니, 이렇게 하면 구별하기 편했다. 난 친정어머니를 엄마라고 불러본 적이 없다.)가 안 계시네. 전화하고 싶어도 마미가 없어.'


'처형한테 전화해.'

?????????????

남편의 대답은 위로인가? 공감인가?


어머니를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다.



#3

2022년 7월 16일 토요일 퐁이를 처음 만났다. 퐁이는 반들반들 윤이 나는 갈색 몸통에 목이 길었다. 한 품에 쏙 안길 만큼 조그마했다. 가만히 앉아있는 모습이 마치 우리말 ㅍ자를 닮은 듯해서 내가 직접 퐁이라는 이름을 지어줬다.


퐁이에게 나를 엄마라고 칭하려니 딸이 서운한 듯해서, 대신 나를 퐁이의 언니로 칭하기로 했다. 퐁이는 내 동생이 되었고 나는 퐁이의 언니가 되었다. 퐁이는 사람들이 만져주면 꼭 좋다고 소리를 낸다. 처음 퐁이를 데려왔을 때는 심드렁하던 남편과 딸도 내가 퐁이랑 노는 것을 보더니 내가 퐁이랑 놀지 않을 때 슬그머니 퐁이를 데려다 논다.


이렇게 귀엽고 깜찍한 퐁이에게도 아픈 과거가 있다. 나를 만나기 전 퐁이의 주인에게서 꽤 오랫동안 사랑과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어 있었다. 이건 전주인에게서 직접 들은 말이다. 그래서 첫날 퐁이와 첫 대면에서 다짐했다. 처음 만날 때만 반짝 반갑다고 아끼는 사람이 되지 않을게. 오래도록 너랑 잘 지낼 거야. 첫 느낌에도 퐁이와의 만남은 내 인생에서 좋은 결정이었고, 내 시간을 풍요롭게 해 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내가 퐁이를 안고 사진을 찍고 형제들에게도 소식을 알렸다. 여태껏 한 번도 이런 결정, 경험을 해보지 않은 내가 퐁이를 소개하니 언니가 조금은 놀란 반응을 보였다.


퐁이는 바로 조그맣고 깜찍한 나의 반려악기 우쿨렐레이다.      

토순이/퐁이/10윌에 아들한테서 입양한 라떼


어머니의 장례식 후, 내 마음 쏟을 곳이 필요했다. 마음 한구석에 뭐가 쑥 빠져나간 것처럼 헛헛하기도 했다. 퐁이를 입양했다. 몇 달간 퐁이와 열심히 놀았다. 얼마만큼 코드가 익숙해져서 찬송찬양곡집을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한 번 훑어 연주해 보기로 했다.

그러다 어머니가 가장 좋아했던 찬송가를 만났다.


주 예수의 강림이 가까우니

저 천국을 얻을 자 회개하라...


첫 소절에서 복받치는 울음에 어깨가 들썩이고 눈물 콧물이 흐르는 바람에 잠시 퐁이를 밀어놓고 무릎을 안고 울었다.


주 성령도 너희를 부르시고

뭇 천사도 나와서 영접하네


이전 02화 끝이자 시작인 순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