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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점선면 May 15. 2023

끝이자 시작인 순간

이야기를 마치려고 합니다

2023. 2.3.()

정형외과 진료대기실.


1월 30일부터 2월 2일까지 딸과 둘이 떠난 일본여행에서 생각지 못한 복병을 만났다. 천골(꼬리뼈 쪽 허리)이 끊어지게 아팠지만 딸이 기대하던 둘만의 여행이라 진통제를 먹어가면서 강행했다. 덕분에 통증 속에서 어찌어찌 여행은 잘 끝났다. 아마 아프지 않았으면 딸보다 내가 더 밤늦도록 오사카의 거리를 유랑하고 다녔을지 모른다.


차례를 기다리다가 무료해져서 병원 벽에 붙어있는 자료들을 읽어보려고 가까이 갔다.

무지외반증의 원인과 치료?


무지외반증!


어느 날 나의 맨발을 본 이웃이 깜짝 놀라며 아파서 어떡하냐고 물었다. 나의 무지외반증은 슬쩍 보더라도 티가 난다.


'이게, 유전인 거라서 그렇게 아프지는 않아요.'

대수롭지 않게 대답은 했지만, 젊은 시절 볼 좁은 구두를 신었다가 티눈으로 고생도 했고, 엄지아래 관절에 통증도 겪어 봤었다. 그 이후 그냥 하이힐을 포기하고 살았더니 통증은 없었다.


나의 무지외반증은 어머니에게서 왔다. 어머니는 증상이 무척이나 심각하셔서, 얼핏 보면 발이 기형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아예 엄지발가락이 둘째 셋째 발가락을 타고 넘을 정도로 휘었고, 발볼도 넓어서 엄지발 아래 뼈가 심하게 돌출되어 있었다. 그래도 이게 질병은 아닌 거라서 그 발로 고된 농사일도 하고, 여행도 다니고, 다른 할머니들이 지팡이 집고 다닐 때도 어머니는 두 다리로 걸어 다니다가 어느 날 쓰러지신 거였다.


어릴 때 왜 어른들을 그렇게 짓궂었는지, 나보고 '닌 저기 갯껐디서 주서왔져.'라고 놀렸다. 이 말에 냇가에다 나를 버린 친모를 찾아가겠다고 내가 얼마나 생난리를 쳤던지, 그 이후로는 그런 장난이 쑥 들어갔다.


우영팟으로 들어가 창고벽에 기대어 울던 내 모습이 아직도 생각이 난다. 감정적인 충격이 너무 컸던 탓이다.


자라다 보니, 어머니는 내 어머니가 맞고, 나는 어머니 딸이 맞았다. 닮고 싶지 않은 걸 닮아 있는 걸 느낄 때가 있었다.


활자, 언어에 대한 끌림. 가족들에게는 밥도, 옷도, 집도, 돈도 도움 될 것 없는 것에 대한 헌신, 동경.


아버지가 어머니가 책 읽고, 글 쓰는 게 왜 싫지 않으셨겠는가? 아버지는 '허튼 일을 하면서 정신 쓰는' 어머니를 나무라고 방해했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혹시 미치지나 않을까 걱정하셨던 거 같다.


그러니 나도 책 읽고 글 쓰는 것을 두려워하고 멀리할 만도 한데 -사실 글쓰기에 대해서는 어머니의 열정에 대한 반작용으로 나는 의도적인 유예를 지속해 왔다-어딘가 닮은 성정은 어쩔 수가 없는 거였다.


무지외반증 치료 안내판 앞에서, 어머니를 통해 이 세상에 온 내가, 어머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퍼뜩 떠올랐다.


어머니가 글로 자신을 남기고 싶어 하셨던 것처럼, 나도 글로 어머니를 남겨드리자!


이것이 내가 어머니의 부재에 바칠 수 있는 최고의 애도의 방법일 것이다.


집에 와 브런치 글쓰기 창을 열었다.


어머니의 이름을 이 가상의 공간에 남겨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지나 온 일들도 함께요.


브런치에 남긴 나의 첫 문장


시인 오계아 님을 기억합니다


성명 : 오계아

생년월일: 1932년 12월 2일

사망일시: 2022년 6월 30일 11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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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오계아 님을 기억합니다' 매거진의 연재를 이번 화로 마칩니다.


까맣던 숯이 붉은 열기로 타들어 가고 끝내는 하얗게 부서지는 가벼운 재가 되어 날아가듯, 매거진에 글을 올리는 동안 제 안에 일어난 치유의 시간을 감사합니다.


격정적으로 쓴 일기들과 삼 남매의 카톡방을 다시 들여다보는 것이 때로는 아프기도 했지만, 이제는 더 가벼워진 게 맞습니다.


함께 이 시간을 해 오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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