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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Feb 21. 2024

삶을 대하는 태도의 유연함.

삶의 눅진한 경험만큼 삶과 사람을 해석하는 시야도 조금씩 넓어진다

 초등학교에 다닐 때 온 가족이 함께 등산을 간 적이 있다. 거기다 아빠 친구 가족과 함께 가서 더 신이 났다. 아빠 친구 순모아저씨는 딸 둘에 아들 하나가 있었는데 큰 딸이 나와 동갑이었다. 또래 친구가 있는 가족과 나들이를 간 게 처음이라 산을 오르는 내내 신이 났었다.


 아저씨는 술을 좋아해서 얼굴이 빨갛고 목소리도 걸걸하셨다. 술은 입에도 대지 않는 아빠와 술을 좋아하는 아저씨가 어떻게 친구가 되었는지 어린 맘에도 신기했다. 그날도 아저씨가 같이 산행을 가자고 해서 성사된 나들이였으니 아저씨 덕분에 우리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이 하나 더 생긴 이다.


 우리 두 가족은 웅산 시루봉에 올랐다. 세 개의 시루봉에는 해, 병, 혼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우리는 봉우리가 있는 병 글자까지 올라갔다. 바람이 세차게 부는데도 기어이 올라가서 병자를 만든 돌덩이를 만져봤다.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과 함께 했다는 연대감은 그 날을 최고의 순간으로 만들어주었다.

  며칠 전 소중한 벗들과 한라산 영실에 올랐다. 간간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산을 오르는 가족들이 있었다. 유치원생부터 고등학생까지 부모를 따라나선 아이들의 모습이 참 예쁘고 대견했다. 가족이 함께 하는 산행은 왠지 그 가족의 화목함을 보증하는  같. 그래서 어릴 적 시루봉 산행이 나에게 더 특별한 추억이 된건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흘러 고학년이 되었고 친구들과 자전거를 타면서 남는 시간을 보냈다. 더 이상 산에 가고 싶어 하지도 않았고 부모님께 놀러 가자고 조르지도 않았다. 아빠는 주말에 전국노래자랑을 보시거나 신문을 몇 시간째 읽고 뭔가를 열심히 알아보면서 시간을 보내셨다.


 늘 책상에 앉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걸 좋아하던 아버지는 이제 진짜 혼자가 되셨다. 엄마가 요양을 위해 실버타운에 입주하셨기 때문이다. 아무 곳에서나 잠을 못 주무시는 아버지는 집에 혼자 남기로  것이다.

 아버지는 이제 혼자서 음식을 챙겨 드시고 혼자 집청소를 하시고 혼자 장을 보신다. 얼마 전 친정에 가봤더니 엄마의 부재를 느낄 수 없을 만큼 깔끔하게 살림을 하고 계셨다.

"아빠, 혼자 있어서 외롭지 않으세요?"

"머. 게안타. 신문 보고, 산책 갔다 오면 시간이 금방 간다."


 아버지에게는 여전히 신문이 제일 친한 친구이다.

어릴 때는 혼자 신문 보고 사색하는 걸 좋아하는 아빠가 남들과 다르다고 생각했다.

 책상에 앉아서 늘 뭔가를 하고 계셨던 아버지. 나이가 들수록 내가 아버지를 닮아간다.

혼자서 책을 보고, 글을 쓰고, 영어 공부를 하는 모습이 책상 앉아 계시던 아버지의 모습과 교차된다. 내가 좋아하는 많은 것들이 아버지에게서 왔다는 걸 깨닫는다.    일본 여행을 보내드렸을 때는 일본어를 독학하셔 엄마와 자유여행을 다녀오시고 영어를 유창하게 하시던 시대를 앞서간 분이셨다. 비록 엄마는 편한 여행사 놔두고 왜 사서 고생하냐고 불만을 터트리셨지만.


지금은 아버지가 혼자 있는 걸 좋아하시는 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살다 보니 그때는 남들과 달라서  생소했던 것들이 감사한 일이 되기도 한다.

삶은 한 마디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삶을 살아가면서 나의 생각과 가치도 변한다. 그러 내가 옳다고 단정 짓지도 남들이 이상하다고 눈 흘길 필요도 없다.

내가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 틀릴 수 도 있고 내가 틀렸다고 생각했던 것이 옳을 수도 있는 게 인생이란 걸.

내가 지금 가진 생각에 유연함을 더하자.

변할 수 있는 유연함의 자리는 남겨두며 살자.


한 줄 요약: 유연함을 가진 인생은 부드럽고 평온하다.

                

   헤윰작가님이 댓글에 달아 주신 문장이 너무 좋아 한 줄 요약에 추가해봅니다.


               삶의 눅진한 경험만큼 삶과 사람을 해석하는 시야도 조금씩 넓어진다(by 혜윰 작가님)


https://brunch.co.kr/@hyeyumhada#articles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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