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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너나들이 Feb 26. 2024

아들에게 배우는 행복

행복은 공헌감이다


        행복이란 공헌감이다.

누군가에게 도움이 된다는 주관적인 감각, 공헌감을 가지면 그걸로 족하다.

반면 인정욕구를 통해 얻은 공헌감은 자유가 없다.


- 미움받을 용기 중 -



인정욕구를 채우기 위해서가 아니라 나 스스로 공헌하고 싶은 상대는 누구일까? 아마 부모에게는 자식일 확률이 높다. 그 존재를 위해 기꺼이 공헌하고 바라보기만 해도 행복을 느낀다. 그러다 바람난 연인처럼 미워지기도 한다.


일요일이라 늦잠을 자고 일어난 딸이 화장실에 들어가 1시간 가까이 씻는 걸 보고는 결국 화를 내고 말았다. 며칠 전에 인내심에 관한 글을 영어로 필사하며 다짐까지 했는데.


화를 내니 잔소리가 보너스로 딸려 나온다. 그러고 나면 아이와 반나절 정도 차가운 사이가 되는데 그 시간이 물 없이 먹는 건빵을 먹는 것처럼 퍽퍽하다. 결국 딸아이는 말도 없이 책가방을 챙겨 나가 버리고 나는 찬바람 날리는 딸의 뒷모습이 문 뒤로 사라지는 걸 보고 있었다.


인간관계의 트러블은 대부분 타인의 과제에 함부로 침범하거나 누군가가 자신의 과제에 침범해 들어오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과제를 분리해야 한다고 말이다.

 오늘 나는 딸과 나의 과제를 분리하는데 실패했다.

과제를 분리하지 못하고 마음 한구석에 쭈그리고 있던 늑대가 는 소리를 내뱉어버렸다.

화는 한 번 내고 나면 자꾸 탄성이 붙어 탱탱볼처럼 여기저기 튀어 다닌다.


 화를 낸 내가 싫어져 동굴 속으로 들어가 숨고 싶어졌다. 침실로 들어가 조용히 침잠한다.

몇 시간이 지났을까 창문 틈 사이로 쨍하니 들어오던 햇빛이 점점 사라지더니 어느새 어둑어둑해졌다.


갑자기 오늘이 분리수거날인게 떠올랐다. 일요일마다 해야 하는 숙제. 오늘은 직무유기하고 싶다.

쓰레기를 밀어내고 있는 재활용함을 외면하고 노트북과 차열쇠만 챙겨 밖으로 나왔다.

정신적 허기가 질 때 생각나는 음식이 있다. 비싸지도 거창하지도 않은 소박한 동네 김밥이다. 밥이 고슬고슬한 여느 김밥과는 달리 푹 익은 밥이 속을 편하게 하는 김밥. 부대끼는 내 속을 알기라도 하는 듯 부담 없이 스르륵 넘어가준다. 어느새 위장의 허기와 정신적 허기를 모두 채워준다. 허한 속을 채워준 김밥에게 오늘 또 신세를 졌다.


공원으로 차를 몰았다. 차에서 내린 순간 기별도 없이 조용했던 달님이 노랗고 커다랗게 나를 반긴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돌아온 아이가 엄마를 만난 것처럼 달님에게 하소연한다.

왜 화가 났는지 차분히 생각해 본다.

과제를 분리하지 못한 데서 오는 나비효과.

 조바심 때문이다. 일이 잘 되지 않을 때 좋지 않은 결과를 미리 상상한다. 조바심은 두려움으로 변하고 두려움은 화로 변한다. 결국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상상하며 화를 낸다.

 욕심 때문이다. 현재에 감사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고 욕심을 내니 그렇다. 내가 노력해서 바꿀 수 없는 일에 욕심을 내니 화가 난다.


그냥 달님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니 떠돌아다니던 마음 조각들이 하나 둘 자리를 찾아간다.


밤이 늦어서야 아파트 앞에 도착했는데 어떤 남자가 분리수거를 하는 모습이 보였다.

' 나도 분리수거해야 하는데... 분리 수거할 쓰레기가 한가득이야. '

혼자 중얼대며 주차를 하고 있는데 좀전에 분리수거를 하던 남자가 내 차로 다가왔다. 누구지?



"엄마"

 아들이다. 눈이 나빠서인지 기분 탓인지 아들을 못 알아봤다.

"안 그래도 분리수거했어야 되는데. 우리 아들 너무 고마워. 근데 베란다에 박스도 ."

"그것도 했어요. 설거지도 해놨어요."

이보다 더 반갑고 고마울 때가 또 있었을까?


 아들은 친구를 만나고 오겠다며 우렁각시처럼 사라졌다. 집에 돌아오니 싱크대에 있던 설거지거리는 식기건조대에서 자랑하듯 내뿜고 있었다. 아마 아들은 나와 딸아이의 소란을 들었을 거다. 평소에는 시켜야 겨우 하던 설거지와 분리수거를 속 시끄러운 엄마를 위해 제 손으로 먼저 해놓은 것이다. 구멍 난 마음이 순식간에 따뜻하게 워졌다. 말이 아닌 행동으로 보여준 아들의 배려에 위로와 위안을 느꼈다.


딸은 밤 10시가 넘어서 독서실에서 돌아왔다. 눈이 마주친 순간 우리 둘은 쿡하고 웃었다.

내가 가장 행복한 순간을 떠올려본다.

딸의 작은 몸통을 꼬옥 끌어안을 때,

그 말랑말랑한 볼에 입을 맞추고 포근한 살냄새를 맡을 때,

내 입술이 부드러운 딸의 볼에 닿을 때의 촉감, 소리,

행복 지분의 많은 부분이 딸에게 있다.


아침에 냉장고를 보니 아들이 김치도 썰어서 반찬통에 가지런히 담아놨다. 이 소소한 행복감에 자꾸 웃음이 나온다. 휴대폰을 들어 아들에게 카톡을 보낸다.


아들~ 어제 엄마 기분이 꿀꿀했는데 우리 아들이 분리수거도 해놓고 설거지도 해놓아서 기분이 정말 좋아졌어. 고마워. 우리 아들~ 김치까지 썰어놨네. 이런 스윗한 아들이 있다니 엄마는 참 행복한 사람이야.^^


가끔 화를 내고 속상한 일이 있고 나면 소소한 행복이 더 감사하고 크게 느껴진다. 아들은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자기는 정말 행복하다고 말한다. 아들이 행복한 이유를 알았다. 인정욕구 없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공헌감을 실천하니 그렇다. 아들에게 배우는 진정한 행복이다.

아침부터 아이들이 좋아하는 김밥을 싼다.

내 허기를 채워준 김밥이 아이들의 행복도 채워주길 바라며.


한 줄 요약 :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고 싶은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라라크루

#라이트라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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