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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을 가치로 해석하는 엄마와 아들

by 리인

두 아이들이 스무 살이 넘어 각자의 자리를 지키기 위해 집을 떠났다.


아이들의 빈 방을 보니 마음을 닫히게 하는 잔소리는 사라지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 사랑해!' 마음을 열리게 하는 귀한 소망만 담긴다.


가족 단톡방에 내가 보낸 사랑한다는 메시지 밑에는 일주일 동안 1이 없어지지 않는다.

일주일 동안 내 메시지를 읽지 않은 사람은 아들이다.


아들은 메시지를 읽지 않고 편지를 보내왔다.


엄마의 메시지는 읽지 않아도 엄마의 마음은 읽었는지

내가 궁금해하던 일, 내가 듣고 싶은 말을 써줬다.


글쓰기로 바쁜 나는 아들이 있는 논산의 훈련소까지 마음과 생각을 보낼 틈이 없다.

잘 지낸다는 한 마디를 믿고 나도 잘 지낸다.


아들의 사회짐이 집으로 온 날

F를 추구하는 t 남편은 내가 울컥할 거라 예상했지만

T로 무장한 나는 무덤덤했다.


나의 T성향을 물려받은 아들은 엄마의 무관심이 좋다고 한다.

어릴 적 강요가 심하던 엄마에게 질려 현재의 무관심을 배려라고 생각하는 걸까.

자유로움을 만끽하며 훨훨 날아다녔다.

그렇게 날더니 힙합이라는 꽃 위에 앉아서 꿀을 먹고 노래를 불렀다.

힙합이 추구하는 자기표현, 자유로움, 솔직함은

아들이 어릴 적부터 갖고 싶었했던 가치와 한 겹이 된다.


각 사람의 가치는 그 사람이 어떤 것들을 가치 있게 여기느냐에 달려 있다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주)


힙합에 자유로움이라는 가치를 담는 아들을 보며

엄마의 유산 편지에 배움이라는 가치를 담고 싶어 한 나를 바라본다.


어느 순간 내가 전달하기 위해 애썼던 배움이라는 가치가

아들의 힙합 안에서 떠오르는 게 보였다.


자신의 영혼에서 힙합을 발견하고

연습하고 반복하고 창조해 진화하고

자신에 대해 확신을 갖는 모습.


내가 전달하고 싶은 가치를 아들은 벌써 실현하고 있었다.

엄마의 유산을 읽기 전에 벌써 내 마음을 읽은 걸까.

나는 아직 아들의 마음을 완전히 읽지 못한다.

가끔 말을 안 하고 있을 땐 스펀지안에 머금고 있는 물이 얼만큼일지 무슨 색깔일지

혼자 스펀지를 쥐어짜보는 상상을 한다.

그 색깔이 검든 희든, 많든 적든 나에게 다가와 물을 적셔주는 것만으로도 좋다.


주말은 아들에게 전화가 오는 날이다.

저번 주 일요일엔 여자친구에게 전화하느라 그랬는지 내게는 전화를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사실을 지금 생각해 냈다.


아들과 나는 행동을 가치로 해석한다.


무관심은 믿음으로.

자유로움은 자립으로.


그 틈을 메우는 건 사랑이다.


주) 명상록, 아우렐리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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