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스텔에서 몰래 자는 사람들
호스텔에서 지내다 보면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는 여행객을 만납니다. 그게 말이 되냐라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로 제 눈앞에서 벌어집니다. 그것도 반복해서 말입니다. 저는 한국에서 최소한의 ‘상도덕’은 지켜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랐습니다. 커피 한 잔 시키지 않은 채로 카페에 자리를 꿰차지 않고, 식당에서 음식 주문 없이 본인의 도시락을 꺼내 먹지 않는다는 등 제 기준에서는 지극히 ‘기본적인’ 상식 말입니다. 호스텔에서 이런 제 상식의 세계가 참 많이도 무너졌습니다.
흔히 ‘북반구 휴가철’이라 불리는 기간에는 예약이 가득 찹니다. 비성수기라도 현지인들이 몰리는 주말이나 공휴일에도 마찬가집니다. 이때 한 방에 여러 명이 묵는 도미토리가 보통 가장 빨리 나가버립니다. 값이 제일 싸기 때문이지요. 요즘은 손님들이 부킹닷컴, 호스텔월드와 같은 숙소 예약 플랫폼에서 예약 현황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호스텔에 헛걸음을 하는 경우는 드뭅니다. 하지만 이미 숙소에 묵고 있던 손님들에겐 상황이 다릅니다.
‘설마 나 누울 침대 하나가 없겠어?’라는 마음에 찾아오는 그들에게 리셉션 직원은 오늘 짐 싸서 나가야 한다고 전합니다. 도미토리가 예약이 다 차도 값이 비싼 개인실은 남아 있을 때가 많습니다. 직원은 그런 손님에게 ‘원한다면’ 개인실로 방을 옮길 수 있다고 안내를 합니다. 하지만 실제로 원하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빠듯한 경비로 도미토리를 떠도는 배낭 여행객에게 개인실은 사치이기 때문이지요. 대다수가 그냥 숙소를 떠납니다.
이때 조심해야 할 손님이 있습니다. 오늘 묵을 숙소를 찾을 때까지 여기에 있다가 가도 되냐고 묻는 사람입니다. 특히 그 사람이 이미 호스텔에서 오래 묵었거나 친구가 된 다른 투숙객이 아직 그곳에 머무르고 있는 경우는 더 조심해야 합니다. 왜냐고요? 숙소에서 몰래 잠을 자기 때문입니다. 돈을 내지 않고요.
그들의 수법은 대체적으로 일관됩니다. 일단 여행 가방을 짐 보관 장소에 둡니다. 체크아웃 후 다음 일정을 기다리는 다른 평범한 손님들처럼 말입니다. 그리곤 사라집니다. 리셉션 마감 시간까지요. 그들이 숙소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직원들이 모두 업무를 마감하고 퇴근한 상태입니다. 밤에 숙소를 지키는 경비원이 있는 호스텔이어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그 사람이 전날 체크인 시 받은 출입 팔찌를 그대로 차고 있거나 경비원에게 자연스럽게 인사를 건네며 출입하면 그만이기 때문입니다.
예약이 다 차서 빈 침대가 없는데, 이들은 어디서 자냐고요? 두 가지 장소로 압축됩니다. 첫 번째는 공용 공간입니다. 호스텔은 손님들끼리 친해질 수 있도록 게임, 책, TV와 함께 소파, 테이블 등을 갖춘 일반 가정 거실 같은 공간을 둡니다. 만약 이 장소가 실내라면 바로 그들의 타깃이 됩니다. 모두들 자기 방에서 잠을 자는 야심한 밤에 그곳은 텅 비기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럼 그들은 거기서 ‘안락’하게 밤을 보냅니다. 심지어 본인의 침낭을 깔고서요. 도둑잠이 그렇게 이루어집니다.
두 번째는 도미토리입니다. 비어 있는 침대는 없지만 한 사람 누울 바닥은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 설명했듯이 도미토리는 한 방에 여러 손님이 같이 묵는 구조라 방 열쇠가 따로 없는 게 대부분입니다. 혹여나 있다고 해도 그 방에 이미 친해진 투숙객이 있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공범이 출입을 도와주기 때문이지요. 이들은 공범의 도움으로 방바닥 적당히 빈 공간에 누워 잠을 잡니다. 그리곤 다른 사람들이 깨기 전 새벽 일찍 방을 나섭니다. 방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만 들키지 않으면 되기에 이게 제일 감쪽같이 ‘무임 투숙’을 할 수 있는 방법일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영문도 모르고 본인 침대에서 잠을 자다가 침입범을 맞닥뜨린 사람이 발생할 경우입니다. 그게 바로 저였습니다.
당시 저는 그 호스텔이 일하기에 적합한 곳인 지 탐색할 겸 손님으로서 도미토리에 머무르고 있었습니다. 그 방은 남녀 구분 없이 4명이 함께 잠을 자는 작은 방이었습니다. 이층 침대가 아닌 일반 싱글 침대 4개가 일렬로 깔려 있는 구조였습니다. 침대 간 일정 간격의 틈이 있어 투숙객들은 그곳에 각자 소지품을 두었습니다.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저는 늦지 않은 시각에 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물론 제 침대에서요. 사건이 발생한 건 제가 새벽에 잠을 자다 뒤척이던 때였습니다.
저는 잠들기 전 이불을 여러 겹 덮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잠결에 몸이 서늘한 게 느껴졌습니다. 몸부림을 치다 이불이 바닥에 떨어진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사람도 함께 자는 방이기에 이불을 찾겠다고 한 밤중에 불을 켤 순 없었습니다. 대충 ‘여기쯤 떨어졌겠지’ 생각하는 곳에 손을 휘적거렸습니다. 그러다 이불로 추정되는 무언가가 손끝에 스치는 게 느껴졌습니다. 저는 눈도 제대로 뜨지도 않고 그 물체를 집었습니다.
물.컹.
그건 이불이 아니었습니다. 생명체의 촉감이었습니다. 너무 놀란 나머지 소리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순간 말도 안 되는 온갖 상상을 펼쳤습니다. 시체 유기부터 시작해서 거리를 떠돌던 개가 이 방 안에서 끝내 숨을 거뒀다는 소설까지 말입니다. 그때 ‘쉬이 잇’ 하는 소리와 함께 검은 물체가 바닥에서 솟아올랐습니다. 사람이었습니다. 가까이서 보니 그는 전날 같은 방에 머물렀던 미국 청년이었습니다. 정황상 제 옆 침대의 프랑스 소녀가 그에게 자리를 내준 것 같았습니다. 둘이 어울려 다니던 걸 봤기 때문이죠. 황당하게도 그는 일분도 채 지나지 않아 다시 바닥으로 사라졌습니다. 제가 소리를 지르지 않은 것에 안심하고 다시 잠을 청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뻔뻔함에 제 몸은 추위가 아닌 소름으로 한번 더 서늘해졌습니다.
심장이 어디까지 떨어질 수 있는지 실험을 한 듯 저는 마음이 쉽게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다소 왜소한 체구에 선량한 미소를 지녔던 그 청년을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스페인어 연습을 향한 뜨거운 열정으로 그는 대화 내내 모국어인 영어를 쓰지 않고 스페인어로 이야기를 이어갔기 때문입니다. 저랑 대화를 튼 사이여서 더 마음 놓고 제 옆 바닥에서 잠을 자고 있었던 걸 까요? 저는 도무지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습니다.
만약 그가 이 호스텔이 그렇게까지 마음에 들었다면 돈을 지불하고 개인실을 이용하는 게 맞았습니다. 그 비용이 부담스러웠다면 다른 호스텔의 도미토리를 찾아 떠났어야 했습니다. 제 머릿속 그의 좋은 이미지가 순식간에 사라졌습니다. 이 사건은 돈 몇 푼 아끼고자 내동댕이친 양심과 기본적인 예의조차 잊어버린 몰상식함, 이 두 가지가 어떻게 조합을 이루어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는지를 명백히 보여주는 사례였습니다.
이 사건 이후에도 저는 무임 숙박을 시도하는 진상 손님을 여러 번 목격했습니다. 심지어 공공연하게 본인이 오늘 밤 거실에서 침낭을 깔고 잘 것이라고 떠벌리는 젊은이도 봤습니다. 밤에 몰래 숨어 자다 그곳에서 숙식하는 직원에게 발각돼 한밤중에 난리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결국 그 사람은 그 자리서 돈을 지불하고 개인실로 자리를 옮겨야 했지요.
호스텔이 무임 투숙객을 막기 위해 아무리 강한 조치를 취한다 해도 속이려는 자가 한번 마음먹으면 소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 어떤 방법도 쉽게 뚫릴 수 있습니다. 이런 기가 막힌 상황을, 전 세계 각양각색의 사람이 모여드니 벌어지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넘겨야 할까요. 어쩌면 그런 사람들은 그걸 ‘특별한’ 여행담이랍시고 자부심까지 느낄 수도 있겠습니다. 아무리 여행을 색다른 경험을 위해 떠나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전에 다른 여행객은 물론 여행 인프라를 제공하는 사업자에게 예의를 지키는 게 먼저 아닐까요.
Photo by Taiga Ishii on Unsplas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