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지막한 저녁, 내일 독서 동아리 모임이 있어 부랴부랴 미처 다 읽지 못한 책을 들고 집 앞 카페로 향했다. 우리 집은 역 주변이라 사방에 카페가 즐비하다. 그래서 커피와 책을 좋아하는 나는 기분에 따라 카페를 선택해 가곤 한다. 혼자서 즐기는 시간이 '작지만 소중한 행복'이라 자주 이런 시간을 사수하는 편이다.
저녁이라 사람이 하나도 없어서 구석 자리에 조용히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창을 다 연 곳이라 바람이 들어와 살랑살랑 내 머리를 흔들며 분주한 마음까지 정리해 주었다. 집중해 읽고 있는데 어느 순간 시끄러워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에 사람들이 거의 차 있었다. 옆 테이블에 할아버지 정도의 남자 두 분이 이야기를 너무 크게 하셔서 나뿐 아니라 그곳 전부가 들을 수 있을 정도였다. 인상을 찌푸리며 다시 책을 읽고 있는데, 전화까지 하신다.
그런데 완전 반전이다. 목소리를 깔고 아주 상냥하고 친절한 할아버지의 목소리로 조용조용 존댓말까지 하시며 딸과 통화하신다. “할아버지가 많이많이 제일 사랑한다고 전해줘.”라고 말씀하시는데 찌푸렸던 인상은 펴지고 웃음이 배시시 나왔다. 이분은 가족을 무척이나 사랑하시는 스위트한 할아버지였다.
우리 아빠도 우리 아이들에게 저분 못지않다. 큰아이가 호주에 간 뒤로 이 아이가 보고 싶어 맘고생을 하셨다. 영상통화를 하면 옆에서 목소리만 들어도 침을 질질 흘리신다. 잘 웃지도 않고 말수도 거의 없는 분인데 이름만 들어도 “허허허허허” 얼굴과 온몸으로 사랑을 표현한다. 우리 아이들은 할아버지를 ‘손녀 바보’라고 부른다. 그러면서도 할아버지의 사랑을 고마워하며 다 큰 뒤부터는 할아버지의 간식을 택배로 부쳐드리며 챙긴다.
저편에 앉아서 꽁냥꽁냥 사랑을 속삭이는 젊은 연인들보다 나는 이 할아버지의 사랑 고백이 훨씬 사랑스럽고 아름답다. 할아버지가 카페에서 큰 소리로 떠드셔도 웃으며 들어줄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