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는 내 목숨보다 귀한 사람이 둘이 있다.
고소공포증이 있는 나는 놀이기구를 잘 타지 못한다. 어쩌다 가끔 탈 때마다 죽음의 공포를 느끼고 ‘다시는 타지 말아야지.’라고 다짐한다. 그리고 내려와서 “난 우리 딸들 시집보내기 전까지 죽을 수 없어!”라고 종종 말하곤 했다.
진심이다. 우리 아이들이 결혼하고 아이들 낳아 키우는 것까지 보면 이 세상에 그리 미련이 있을 것 같지는 않다. 다시 말하면 내가 이 세상을 사는 큰 의미는 내 아이들이 잘 사는 것을 보는 것이다.
또다시 말하면 내 인생보다 내 아이들의 인생이 더 귀하다. 그 귀한 아이 중 하나를 2년 전에 호주로 보냈다. 그 마음을 떼느라 한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다. 이제는 아이가 잘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할 만큼 익숙해졌다. 하지만 간간이 가족 모임이 있을라치면 완전체가 되지 못함에 서운하기도 하다.
그런데 이제는 귀한 아이 중 남은 아이마저도 호주로 떠나보내야 한다.
내일이면 아이와 함께 호주로 떠난다. 그곳의 귀한 아이를 만나러 갈 예정이다. 아이의 생활도 보고 듣고 감사할 분들에게 인사하러 가는 여정이 될 것이다.
그리고 또 다른 귀한 아이를 데려다 두고 올 예정이다. ‘헤어진다’라는 실감이 나면서부터 마음이 울컥한다. 머리로는 좋은 경험이 될 것이고 떠나보내야 하는 것도 알건 만, 처음도 아니고 두 번째라 프로가 됐건만, 나는 여전히 속이 상한다.
아이를 떼어내는 건 아무리 연습해도 어려운 일인가 보다. 나는 과거지향적인 사람이라 내 안의 사람들과 헤어지는 것을 잘 못하는데 하물며 내 자식은 오죽하겠는가!
예전 어른들이 ‘품 안의 자식’이라며 키울 때가 가장 행복할 때니 감사하며 열심히 키우라고 조언하셨다. 참, 어른들은 말씀은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걸 절절히 깨달아 간다. 이제 하루만 내 품 안에 있을 아이를 생각하며 담대해 보리라 다짐한다.
사실 남기고 가는 남편이자 아빠의 이름으로 있을 그분이 가장 염려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