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리 커서 어른이 되고 싶어요. 정말이지 너무 힘들어요."
내가 만나는 대부분의 중학생들의 말이다. 현재의 삶이 버거워 어서 어른이 되고 싶어 한다. 졸업한 제자들이나 교회에서 내가 맡고 있는 중등부 아이들을 만나면 한 아이도 편안하지 않다. 웃고 떠드는 것 같으나 한 꺼풀만 벗기면 그 안에 불안과 두려움과 갖가지 문제들로 무너지고 있는 청소년들이 다반사다.
예전 자해시도하다 죽음 직전까지 갔던 아이를 만난 후로 나의 교육적 신앙적 가치관은 모두 무너졌고, 그때 이후로 나는 무조건 아이들 편이 되어가려 노력한다. 나조차 나를 이해 못 하는데 누가 이 아이들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는가! 이해해서 사랑하는 게 아니라, 사랑하니까 이해할 수 있다.
힘겨워하는 아이들에게 더 마음이 가는지라 어쩌다 보니 내 주변은 온통 마음이 버거운 아이들로 가득하다. 그 아이들의 사랑스러움을 발견하고 다독이는 게 나의 몫인 듯하다. 어서 아이들이 성장해서 성장통에서 벗어나 조금은 이성적으로 편안해지기를 바란다.
제자들 중 나와 인연이 끈끈한 아이들이 있다. 스승의 날에는 떡볶이를 사들고 오고 글쓰기 대회나 수행평가를 볼 때 종종 나의 의견을 물어오는 사랑스러운 친구들이다. 이 아이들과 고3 수능이 끝나면 만나서 치맥을 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이 친구들은 공부를 제법 잘하기도 하지만, 잘하기 위해 부단히 애쓴다. 매일 학원에서 공부하고 방학에도 아침부터 저녁까지 학교처럼 진행하는 학원을 다니며 자신들이 만족하는 성적을 얻기 위해 노력한다. 좋아 보이기도 하지만 아이들이 받는 스트레스 또한 만만치 않아 짠함이 더 크다.
가장 무섭다는 중학교의 과정을 보내는 아이들을 보며 이런저런 조언도 하고 떡볶이를 종류별로 사줘 가며 내가 해줄 수 있는 사랑의 표현들을 했다. 가끔은 제자들과 대화하다보면 친구같은 느낌이 든다. 잘 모르는 청소년들의 마음과 여러 사건들을 아이들이 알려주기도 하고 내가 묻기도 하며 배워간다.
어느 날, 아이들 중 한 아이가 "전 평생 중 3이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이 너무 좋아요." 한다. 나는 깜짝 놀라 "뭐? 지금 중학교 시절이 영원했으면 좋겠다는 거야?" 하며 반문했다. 아이의 말이 믿어지지 않았고, 중 3이 이런 말을 하는 걸 처음 들었기 때문이다.
"네, 어릴 때보다도 지금이 더 즐겁고 행복한 거 같아요. 친구들도 좋고 공부하는 것도 크게 싫지 않고 내 모습도 좋아요." 한다.
와우! 이런 중학생을 어디서 다시 볼 수 있을까? 이 아이는 초등학교 때 가장 친한 친구로 인해 마음을 다쳐본 적이 있고 시험에 대해 두려움도 있어 강박적으로 공부를 반복해서 하는 성향이 있음에도 이 환경과 상황을 즐거움으로 받는다.
"중학생에게서 너 같이 말하는 걸 처음 들어봐. 이런 말 너무 좋은데?" 하니 아이가 "그래요?" 하며 배시시 웃는다.
고맙다. 잘 지내줘서, 행복하다 말해줘서.
이런 학생들이 가득해서 다시는 '중학생 무서워서 북한군이 못 내려온다'는 말이 나오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