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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제일 큰 선물

by 영자의 전성시대

이번 스승의 날은 어마무시하게도 100명이 넘는 졸업생들이 방문했다. 수업하랴 아이들 맞으랴 온몸의 모든 에너지를 다 소진했다. 중 1일 얼굴은 그대로여서 보는 족족 누군지 다 맞힐 수 있었다. 물론 키도 좀 자라고 여드름도 난 아이들도 있었지만 기억 그대로였다. 문제는 중3인데 아무리 봐도 누군지 모르겠는 아이부터 키가 너무 커져서 목을 쭉 빼고 올려다봐야 하는 아이까지, 더구나 여자아이들은 화장까지 하니 영 맞히기가 힘들었다.


아이들은 기특하게도 커피 좋아하는 날 위해 아이스커피부터 처음 본 모양새의 커피까지 준비해 찾아왔고 이미 두 잔을 마신 나는 한잔을 더 마시고도 커피에 목욕하게 생겼다. 1층 선생님들 나눠주고 교무실 돌리고 지나가는 선생님들 드리고, 그래도 남은 커피를 처치하느라 곤란했다. '물질이 있는 곳에 마음이 있다'라는 말처럼 아이들 마음의 카페인에 나는 취했고 중독되었다.


유독 소식이 너무 궁금했던 친구들이 있었는데 그중 한 아이가 교복을 예쁘게 입고 찾아왔다. 이 친구는 6년 동안 친구문제로 마음앓이를 심하게 한 친구라 중학교 가서 친구를 사귀었는지 잘 지내고 있는지 걱정 반 기도 반으로 궁금했었다. 아이는 인사가 끝나자마자 내 귀에 조용히 "선생님 저 인기 정말 많아요. 아이들이 저랑 놀아주고 저를 좋아해요. 완전 신기하죠?" 하는 거다.


나는 박수를 치며 좋아했다. "거봐, 너 매력 쩐다니까!" 이보다 더 좋은 소식이, 더 좋은 선물이 있을까! 아이에게 친구가 있고, 친구들과 어울린다는 데 무엇을 더 바라겠는가! 나는 마음을 가라앉히고 아이의 귀에 "네가 스승의 날 제일 좋은 선물을 가져왔단다. 선생님 아주 행복하다."하고 사족으로 아이에게 친구를 배려하는 법에 대해 잔소리를 하고 보냈다.


마음이 놓인다. 이제 이 아이는 머리에서 잊어도 되겠다는 안심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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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의 날 다음날에 한 남자아이가 다 찢어진 쪽지를 들고 왔다. 깜짝 놀랐다. 아이가 나를 찾아오는 것도 특이하지만 쪽지를 주는 것도 흔치 않았다. 더구나 그 속의 내용을 보고 심장이 두근거렸다. '이 아이가 진짜 나를 좋아하는구나! ' 아이는 가정사가 있는 친구로 어려움이 많다 보니 감정을 얼굴로 드러내지도 않고 선생님들을 향해 반항은 기본이었다.


나와는 1학년부터 만나다 보니 그런 반항이 통할리 없고 그냥 내 새끼 같은 마음으로 혼내기도 안아주기도 하며 다른 아이들과 똑같이 대했다. 아이도 나를 힘들게 할 만한 일을 하지 않았고 서로 바라보며 웃는 사이였다. 그럼에도 아이는 더 가까이 다가오지 않았고 나도 아이와 자연스러운 관계를 유지 중이었다. 그런 아이가 오더니 쭈뼛쭈뼛 가까이 오지도 못하고 가지도 못하고 있었다.


"나한테 무신 볼일이 있는고야?" 하니 "아니... 그냥 가야겠어요." "뭔데 그래? 손에 있는 거 주어봐." 하며 뺏다시피 해서 챙긴 쪽지였다. "야 근데 무슨 편지를 이렇게 찢어 가져왔냐?" 하니 "갬성이라 손으로 모양낸 거예요." 한다. "이게 갬성이라고?" 난 피식 웃었고 아이도 웃으며 멋쩍게 돌아갔다. 난 그 지저분한 쪽지를 보고 버릴 수 없었다. 별거 아닌 이 쪽지지만 아이는 힘들게 썼을 거고 노력했을 거다.


아이야, 이게 시작이길 바란다. 아이가 자기감정을 드러내어 좋든 싫든 표현하는 시작! 다른 사람에게 관심도 갖고 자기를 드러내는 시작! 스스로 행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시작! 상황과 환경을 보기보다 어려워도 감사할 것들을 찾아 자신을 지키기 위한 시작이 되길 축복한다.

화면 캡처 2025-05-20 094038.p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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