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에 모여드는 권위-
관리자가 조직을 잘 운영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힘과 권위가 필요하다. 그 힘과 권위는 어떻게 얻을 수 있을까? 통제하고 억압하는 것은 힘과 권위를 잘 쓰는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관리자의 친절에 모여드는 존경과 인정이 힘이고 권위이다. 앞선 화에서는 '언제나' 친절할 수 있는 방법으로 피드백을 주어야 할 때 스트로크를 잘 활용함으로써 친절할 수 있는 법을 안내하였다. 언제나 친절한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주변의 관리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누구에게나' 친절하게 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없는 것 같다.
왜 나만 친절해야 하죠?
도발해 오는 사람에게도, 불친절한 사람에게도 왜 친절해야 하는가에 대한 나의 대답은 "당신은 그들보다 더 나은 사람이기 때문이지요."이다.
그들도 좋은 사람이지만 나는 그들보다 조금 더 노력했고 더 나은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들을 지원하는 자리에 있는 것이고 조직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다. 관리자라면 능력을 인정받은 사람이다. 그러니 우선 "나라면 이렇게 안 했겠어요!", "왜 이것밖에 안 되나요?" 하는 말은 접어두자.
I'm OK, You're OK.
교류분석에서는 인간을 긍정적인 존재로 바라본다. 우리는 누구나 공주와 왕자로 태어났고, 존엄한 존재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각자 생각의 차이가 있고 능력의 차이가 있다 보니 서로 다른 모습을 하며 함께 부대끼며 살아가고 있다. 나도 옳고 너도 옳다지만 관리자 입장에서 살아가다 보면 아무래도 타인의 부족함이 눈에 들어와 힘들 때가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옳은데 너는 옳지 않다는 태도보다는 나도 옳고 너도 옳지만, 내가 너보다는 조금 더 낫다고 생각해 보자. 나는 한 끗 더 올라가서 좋고, 남은 깎아내리지 않을 수 있어 좋다.
종종 '현자의 고통'을 겪는 원장님들의 하소연 전화를 받는다. 상대방이 이해가 안 되고 괴롭다는 말씀들을 하시는데, 나는 그걸 현자들만 겪는 고통이니 우선 자신이 현자임을 인정하고 스스로에게 스트로크부터 주시라고 말씀드린다. 이는 타인 때문에 괴로울 때 사용할 수 있는, 나 자신을 인정해 주고 타인도 수용해 줄 수 있는 멋진 방법이 될 것이다. 어떠한 순간에서도 긍정성을 잃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은 내가 나 자신을 인정하고 존경하는 것이다. 내가 괜히 관리자이겠는가? 그럴만하니 관리자인 것이다. 그런데 직원들하고 똑같이 아웅다웅 밀고 당기며 마음을 소진할 이유가 없다.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상황이면 어른답게, 상처를 안아줘야 하거나 책임져야 하는 상황에서는 부모답게 행동하자. 어린애같이 구는 직원과 똑같이 어린애처럼 다툴 수는 없는 노릇 아니겠는가?
아픈 손가락 보살피기
나는 어떤 관리자였는지 되돌아볼 때면 어김없이 그러면 관리자이기 이전에는 어떤 직원이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원장이기 이전의 나는 어려움을 갖고 있는 아이들에게 마음과 시간을 쏟는 교사였다. 반면에 발달이 빠르고 인지적으로도 유능한 아이들에게는 노력을 덜 기울였던 것 같다. 언제나 그 부분이 마음에 걸렸지만, 나에게는 항상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이 눈에 먼저 밟혔다. 원장이 되고도 마찬가지였다. 업무를 잘 해내시는 선생님보다 어려움을 겪는 선생님을 지원하는 것에 온 신경이 모였다. 내 마음속의 '아픈 손가락'만 바라보며 관리자 자리에 앉아 있었다. 모두를 끌고 가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에 앞장서 걷는 사람을 살피지 못했다.
너무 친절한 사람이기를 원하다 보니 아픈 손가락을 보살피느라 성한 손가락을 칭찬하지 못하며 5년을 보냈던 것 같다. '잘한다, 잘한다' 칭찬하면 못하는 사람이 속상할까 봐 그 누구에게도 시원하게 칭찬하지 못하며 지냈던 것 같다. 잘하는 사람을 칭찬하면 못 하는 사람이 눈에 밟히고, 못 하는 사람을 챙기다 보면 잘하는 사람은 서운함을 느낀다. 이 눈치, 저 눈치 보다 보면 내가 여기에 뭐 하려고 있는 사람 인가 하는 회의감이 절로 든다. 스트로크 경제에 묶여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며 지냈던 나를 되돌아보니 측은하기까지 하다.
아픈 손가락이 있으면 약도 발라주고 밴드도 붙여주고는 얼른 그 상처를 잊어야 한다. 그리고 그 손가락은 덜 쓰더라도 성한 손가락으로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해 나가야 한다. 어쩌면 나는 '아픈 손가락이 하나라도 있다면 내 손은 정상적일 수 없어'라고 예단하고 아픈 손가락을 돌보느라 적극적으로 조직을 성장시키고 나아가기를 미루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아픈 손가락을 핑계로 삼아 나의 일을 유기했지는 않나 하는 부끄러움을 느낀다.
'힐링(Healing) 말고 그로잉(Growing)'이라는 책을 쓰고 있는데, 거기서 하고 싶은 이야기들이 어쩌면 이 아픈 손가락을 생각하는 나의 마음에서 싹이 튼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아픈 곳이 있다면 그것을 치유하지 않고는 자신을 '정상'이 아니라고 깎아내리는 사고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모두가 치유에만 집중하면 우리 사회는 성장의 동력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다. 완전한 사람이 되기 전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욕심을 부리기 시작하면 우리는 모두가 환자인 채로 보호받고 사랑받기만 원하며 수동적인 삶을 살게 될 것이다. 인간에게는 누구나 성장하고자 하는 욕구(physis)가 있다. 관리자가 직원들을 돌보려고만 마음먹게 되면 직원들은 성장의 욕구를 잃게 된다. 아픈 손가락이 있다면 그 직원의 핸디캡을 줄여줄 수 있는 조치를 얼른 취한 다음 얼른 시선을 돌려 조직의 성장을 위해 앞장서있는 직원들에게 집중하며 성장하고 나아가는 일에 몰입하자. 아픈 손가락만 들여다보고 있기에는 갈 길이 멀다!
미운데 떡을 더 주라고?
아픈 손가락은 그렇다 치더라도 미운 손가락은 어쩌나? 옛말에 '미운 놈 떡 하나 더 줘라'는 말이 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더 주기가 싫다. 조금 정정해 보겠다. 하나 더 주지 말고 남들하고 똑같이 주면 된다. 괜히 떡 하나 더 줬다가 '설마, 떡을 하나 더 받고도 안 변하겠어? 감사할 줄도 알고 일도 열심히 하겠지?' 하는 괜한 기대를 갖게 될지도 모른다. 그냥 똑같이 주고 헛된 기대를 품지 말자. 기대가 실망을 부르는 것이다.
사기업은 어떨지 모르겠지만 내가 관리하는 우리나라의 국공립 어린이집은 호봉제로 급여를 지급하고 있다. 실력에 비례하여 급여를 주는 것이 아니라, 경력에 근거하여 급여를 지급한다. 그러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많은 원장님들의 마음에는 호봉과 능력이 일치하지 않는 직원에 대한 아쉬움이 생기는 경우가 종종 있다. 하지만 급여는 오랫동안 보육현장에서 노력한 수고를 근거로 책정되는 것이므로 능력과 결부하여 생각하면 안 되는 것 같다. 그렇다면 10년 차 이상의 능력을 갖고 있는 2년 차 교사는 너무나도 억울하다. 그렇다고 낮은 호봉의 일 잘하는 직원에게만 인센티브를 줄 수 없는 것이 실정이다.
나는 호봉에 따라 업무의 차등을 주기는 하나, 호봉을 기준으로 능력에 대한 기대는 하지 않는 편이다. 조건적 스트로크는 직원의 성장에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그 직원이 호봉이 높든 낮든 상관없이 객관적인 피드백만 전달하고자 애쓴다. 나도 좋은 관리자이고 그들도 좋은 직원이다. 문제가 생기면 우리는 그것을 언제든지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다. 왜 손 안 대고 코를 풀려고 하는가? 경력직 사원은 교육을 안 시켜도 알아서 잘하는 사람인가? 교육과 지원을 안 받고도 조직 내에서 완벽하게 기능하는 사람은 없다. 관리자도 교육을 받는다.
능력이 조금 아쉽다고 해서 그들이 현장에서 오랫동안 자리를 지키고 애써온 그 수고와 노력까지도 가벼이 여기지는 말자. 존재를 인정하고도 행동은 수정할 수 있다. 존재를 인정하는 것이 실수한 행동까지 인정하는 꼴이 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떡은 똑같이 나눠주고, 콩고물을 안 흘리고 잘 먹는 사람이 있다면 잘했다고 칭찬해 주자. 흘리며 먹는다고 비난할 일도 아니다. 무엇을 어디에서 가져와 닦을 수 있는지에 대한 정보만 친절하게 주면 스스로 닦고는 다음에는 흘리지 않으려고 노력할 것이다.
누구에게나 친절하라는 것은 아픈 손가락에 대한 과잉보호를 줄일 것과 미운 손가락에 대한 기대를 조금 낮춰보라는 말로 풀어보았다. 나는 이 전략을 잘 실천해 내지는 못했으나 관리의 말미에 깨닫는 것은 성공했다. 이 글을 읽는 친절하고자 하는 관리자는 꼭 실천하고 성공해 보시기를 기대한다. 관리자는 엄하고 차갑고 냉철할수록 카리스마 있고 성공적이라는 편견을 깨트리고 싶다. 친절한 사람도 관리자로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 하지만 나는 관리자로 남기를 포기했고, 어쩌면 실패했다고 볼 수도 있다. 나의 포기와 실패를 이 글을 읽는 누군가는 성공으로 보여주기를 바란다. 그러니 친절해보자. 조금 해보다가 안된다고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한 번 친절해보자. 친절해도 좋다고 허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