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럽게 밥>
“많은 사람에게 그림을 그리게 했지만, 물건 말고 사람을 그린 사람은 알시님이 처음이에요. 알시님은 사람을 참 좋아하나 봐요.”
그런가요?
나는 오히려 사람들이 아홉 개의 그림을 그리면서 인간을 하나도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 더 놀라웠다. 내가 특별히 사람을 좋아한다고 생각해 본 적은 없다. 내가 좋아하는 것은 ‘사람’이 아니라, 내가 그린 ‘그 사람들’일 텐데.
내가 현재 건강하게 생각하며 살고 있는지, 내 상태를 점검하기 위해 상담센터를 찾아간 날이었다. 선생님은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그림 아홉 가지를 그려보라고 하셨다. 나는 책, 국수, 고양이, 자동차, 침대, 친구 J, 운동화, 키보드, 친한 언니 A를 그렸다. 나는 9가지 그림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설명했다.
“A 언니는 제가 아는 사람 중에 가장 관대하고 성숙한 사람이에요. 롤모델이랄까, 나도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고 느껴요.”
언니와는 예전엔 매주 금요일마다 화상통화로 독서 모임을 했고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직접 만나서 하고 있어요. 언니와 대화하고 싶어서 매일 그 시간을 기다리며 사는 게 저에게 얼마나 힘이 되는지 몰라요.
기다리는 만남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나는 오후 네 시에 오는 어린왕자를 기다리며 세시부터 행복해진다는 여우의 말을 이해한다.
[소란스럽게 밥]은 각각 어려움을 안고 사는 세 친구가 매일 저녁밥을 함께 먹으며 하루의 고단함과 상처를 씻어내는 내용의 치유만화다.
밖에서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냈든 함께 모여 맛있는 것을 먹고 따뜻한 대화를 나누면 모든 게 괜찮아지는 만화 속 세 사람의 저녁 시간이, 내가 늘 기다리는 A언니와의 만남과 닮았다고 생각했다.
A언니는 내가 가장 어둡고 부정적이던 시기에, '건강한' 상태로 돌아가기 위한 발버둥의 일환으로 인터넷상에서 익명으로 사귄 친구였다. 당시 나는 나의 문제가 '고립'이 원인이라고 생각해 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인생 최고의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다. 독서, 러닝, 작문, 그림 등, 내가 관심 있는 모든 주제의 온라인 동호회를 전전하고 다니며 거의 모든 주말을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 식사하고 수다 떠는 데에 썼다. 하지만 내성적이고 말 없는 성격이 단번에 변하는 것도 아니어서, 기껏 모임에 나가놓고 꿔다 놓은 보릿자루처럼 앉아있다 어색하게 헤어져 돌아오기 일쑤였다.
같은 미대 출신의 치하루, 세이코, 에이지는 동창생의 자살을 계기로 장례식에서 우연히 다시 만나 친해진다. 사람과의 만남을 피해 오던 치하루는 충동적으로 세이코와 에이지를 자기 집으로 초대한다.
치하루는 동경하던 회사에 들어가 일했지만, 상사에게 심한 괴롭힘과 가스라이팅을 당해 마음에 병을 얻어 일을 그만두게 되었다. 그녀는 혼자 있을 때 영양가 있는 잘 차린 식사를 하면 죄책감을 느껴서 제대로 된 식사를 할 수 없는 일종의 거식증을 앓고 있다.
세이코는 같은 직장에 다니는 약혼자가 결혼식 직전에 다른 여자를 임신시켜 파혼한 뒤, 일에 집중하며 겨우 상처를 묻고 살았다. 하지만 2년 뒤 지점으로 나갔던 전 약혼자가 본사로 돌아오고, 오히려 세이코가 좌천되어 부서 이동을 당한 뒤로 풀 곳 없는 분노를 억누르고 있다.
동성애자인 에이지는 제멋대로인 남자친구와의 애정이 다했음을 알고 있으면서도 헤어지지 못하고 있다. 남자친구가 말없이 동거하는 집을 나가버린 후로 텅 빈 집에 들어가는 것을 괴로워하지만 미련 때문에 집을 정리하지도 못한다. 마음속에 슬픔이 있지만 '게이라서' 삶이 비참한 것처럼 보일까 봐 겉으로 밝은 척하고 사는 것에도 서서히 지쳐가고 있다.
식사하며 진솔한 대화와 따뜻한 위로를 나누고 편안함을 느낀 세 사람은 저녁을 같이 먹는 것을 매일의 루틴으로 삼는다. 나아가 얼마 후엔 셋이 함께 동거하게 된다.
처음 A언니를 알게 됐을 때, 우리가 각별하게 친해질 거라곤 기대하지 않았다. 언니가 다른 지역에 살았기 때문이다. 나는 고립감을 떨치려면 주말엔 당장 누구든 만나야 한다고 강박적으로 집착했기 때문에, 자주 만날 수 없는 A언니는 은근히 마음속 후 순위로 밀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오랜 기간 메신저로 나눴던 이야기들이 쌓이자, 오히려 너무 일찍부터 만나 사이가 어색해진 다른 사람들보다 A언니에게 훨씬 친근감을 느끼게 됐다. A언니와는 첫 대면에도 제법 편하게 수다를 떨 수 있었다. 우리는 우리의 친목이 흐지부지되지 않게끔 매주 금요일 저녁에 화상으로 만난다는 규칙을 세웠다.
만화에서 내가 가장 공감했던 부분은 세이코의 에피소드였다.
사람들은 부당한 일을 당한 세이코에게 나름의 조언을 자꾸 건넨다. 남자에게 소송을 걸라거나, 차라리 회사를 그만두라고. 세이코는 친구들과 저녁밥을 먹으며 숨겨둔 분개심을 솔직히 터놓는다. 몰라서 안 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어서 안 하는 것이라고. 지금 이미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 조언을 한다는 것은 나의 최선을 부정당하고 꾸지람 듣는 기분이라서 견딜 수 없다고. 비슷한 입장에 놓인 두 사람은 세이코의 말을 완전히 이해하진 못해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세 사람의 대화는 '문제해결'을 위함이 아니고, 그것을 원하지도 않는다. 문제가 해결된다고 모든 것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니까. 원하는 것은 그저 행복한 시간을 보내는 것뿐.
'독서토론'은 명분일 뿐이기에 우리의 화상 모임은 대체로 1주간의 근황 이야기 한 시간 반, 책 이야기 삼십 분 정도로 진행됐다. 특정 시기에는 거의 나 혼자 한탄과 고해성사를 줄줄이 쏟아내고 언니는 들어주기만 할 때도 많았다. 언니에게 말하는 것은 왜 그토록 편하고 좋았을까, 싶었는데 [소란스럽게 밥]을 읽다가 문득 알게 됐다.
A언니는 함부로 나를 평가하거나 조언하지 않았다.
나는 세이코와 딱 같은 감상이어서 타인에게 고민 얘기를 하지 않는다. 보통 타인은 고민을 듣자마자 조언을 툭툭 내뱉곤 하는데, 남의 이야기를 방금 막 듣고 바로 떠올린 조언쯤은 당사자로서 한참 고민해 온 내가 생각해보지 않았을 리가 없기 때문에 조언에 반응하기 어려워진다. 상대의 의도가 날 위함이라는 것을 알기에 조언을 따를 수 없는 이유를 구구절절 읊어 설명하기가 왠지 영 죄송스럽다. 결국 거짓으로 조언을 따르겠다고 약속하고 허겁지겁 이야기를 끝내게 되는데, 이것이 생각보다 감정 소모가 크고 허탈했다.
A의 언니와의 대화는 달랐다. 지난 시간 무슨 일들이 있었고 그 일로 무슨 감정을 느꼈는지만 서로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는 공감하고 위로했다. 그리고 기분을 상쇄할만한 즐거운 이야기를 했다. 즐거운 이야기로 슬픈 이야기를 덮어버렸다. '슬픈 일을 어떻게 해결해 봐라'보다는 '슬픈 일도 있지만 즐거운 일도 있잖아' 쪽이 더 힘이 된다고 생각한다.
"보통 나를 지지해 주는 친구를 말해보라고 하면 한 사람도 말하지 못하는 사람이 많아요. 그런데 두 사람이나 그리셨으니 잘 살고 계신 게 아닐까요?"
그러게요, 그걸 꼭 잊지 않도록 해야겠어요.
핸드폰 메모장에 내가 그린 소중한 9가지를 옮겨적고 상담센터를 나왔다. 힘들 때 A언니와도 얘기할 수 없는 상황이 생긴다면, 그때는 이곳으로 오겠다는 약속도 했다. 나름의 긴급상황 대비까지 마친 것이다. 와, 나 잘살고 있잖아? 어쩐지 으쓱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핸드폰 달력엔 다음 주 주말의 스케줄이 적혀있다. A언니와 예약제 독립 서점에서 만나기로 되어있다. 나는 다음 주 주말까지 행복한 여우가 되어 살 것이다. 그리고 언니와 만나면 다시 다음 달의 약속을 잡겠지. 즐거운 기다림이 끊이지 않는 행복한 여우는 돌아가는 발걸음이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