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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안으로

느려도 제자리여도 괜찮아

by 행북

러닝하는 날이다.

우리는 슬로우 러닝으로 뛴다.


요즘 러닝이 유행이라지만

우리는 천천히 뛰기로 한다.


오히려 좋아.


운동하는 날엔

회사에서 아침 인사가 달라진다.


“오늘 퇴근 후에 러닝할 거야?”


오늘은 유난히

“나 못 갈 것 같아” 하는 목소리가 많다.


뛰는 사람이 몇 없네.

사실 나도

꿀 같은 집으로 곧장 가고 싶었다.


가지 않을 핑계를 찾던 그때

선배가 말을 건넨다.


“우리 그냥 산책 겸 천천히 한 바퀴 돌까?”


러닝이 아닌 산책이라는 말에

갑자기 마음이 스르르 열린다.


“대단한 일이 아니어도 된다. 그냥 시작해라.”

-오스틴 클레온


그렇게 18시 10분에

러닝이 시작됐다.


열 명쯤 모여

아주 천천히, 슬로우 러닝을 시작한다.


나는 걷고 싶은 마음이 컸다.

그래서 조용히 뒤에서 경보처럼 걷기 시작했다.


조금 멀어졌다 싶으면 달리고,

힘들면 다시 걷고,

혼자 인터벌을 했다.


30분쯤 지났을까.

어느새 거리가 꽤 벌어졌다.


열 명의 무리는

걷는 것과 비슷한 속도로 뛰었지만

멈추지 않고 달려서 그런지

저 멀리 가있었다.


나는 걷고 싶다는 이유로

달렸다가, 멈췄다가, 또 걸었다.


그래서 멀리 가지 못했다.


“조금 느려도 괜찮다. 멈추지 않는다면.”

-공자


처음엔 금방 따라잡을 줄 알았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가는 것의 힘을,

함께 가는 것의 속도를

눈으로 확인했다.


“강을 이루는 것은

한순간의 폭우가 아니라,

멈추지 않는 작은 물줄기다.”

-오비디우스


그러니

우리 느리더라도 멈추지 말고

천천히 가자.


제자리 같고 느려 보여도,

어느 순간

원하는 곳에 도달해 있을 것이다.


생각보다 빠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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