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세바스찬 2세에 대해 이야기해볼까 한다. 세바스찬은 지금 내 눈앞에 앉아있다. 나를 바라보면서. 세바스찬을 키우며 느낀 정말 신기했던 점은 매일 보고 듣고 함께 할 수 있는 무언가에게 매 순간 좋은 감정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단순히 좋아하는 감정이 아닌 너무 귀엽고 예쁘고 사랑스러워 어쩔 줄 모르겠는 그런 감정 말이다. 아무리 내 마음에 쏙 드는 사람이라도 매 순간 함께 있다 보면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순간이 온다. 그 익숙함이 편안함이 되고 편안함이 사랑이 아닌 또 다른 감정들을 불러오기도 하지만, 처음 사랑이 불타올랐을 때의 그 짜릿함과 두근거림을 매 순간 느끼기란 쉽지 않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내 경우에는 그랬다.) 그런데 내 무릎 속에 폭 들어올 만큼의 저 작은 생명체가 그것들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지금 세바스찬이 글을 쓰고 있는 내 무릎 위에 올라와 누웠다.) 세바스찬을 만나기 전까지는 구수한 냄새와 따뜻한 체온 그 자체와 사랑에 빠질 수 있다는 것을 몰랐다. 아니 믿지 않았다. 이 세상에 얼마라 좋은 향과 냄새가 많은데 꼬순내가 얼마나 대단하다고 그렇게 그리워하는지, 내가 느낄 귀여움과 사랑스러움보다는 내가 가져야 할 책임감이 더 무겁게 느껴졌다. (아직도 그 책임감이 무겁게 느껴지긴 한다. 귀여움과 사랑스러움이 이것들을 이겨버린 지 오래지만.) 지금은 세바스찬의 겨드랑이에 코를 박고 있을 때 나는 행복을 느낀다. 그 어떤 걱정들도 꼬순내 앞에서는 무력해진다. 모든 사람들이 이 꼬순내에 중독이 된다면 세계의 평화를 지킬 수 있을 것 같다. 무튼 세바스찬은 나에게 그런 존재가 되었다.
반대로 세바스찬은 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까? 세바스찬의 겨드랑이 냄새를 맡을 때면 그런 생각을 한다. 이 작은 뇌로 무슨 생각을 할까. 인간은 왜 내 겨드랑이 냄새를 맡으면서 행복하는 거지?라고 생각할까? 나를 변태라고 생각하진 않을까? 그래도 멈출 수가 없다. 세바스찬은 나를 항상 반가워한다. 내가 잠시 화장실에 다녀와도 꼬리를 흔들고, 자고 일어나 누워있는 세바스찬을 부르면 마치 10년 전에 만났던 첫사랑을 다시 만난 사람처럼 나에게 돌진해 뽀뽀를 날린다. 잠시 밖에 나가 분리수거를 하고 집에 돌아온 나에게 달려오는 세바스찬을 안으면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이 느껴진다. 오 분 전에 만났던 사람을 오 분 후에 다시 만났을 때 심장이 뛸 정도로 반갑게 반겨줄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저 작은 뇌에서 어떤 생각들을 하고 있을지 항상 궁금하다.
세바스찬은 산책 준비 하는 것을 싫어하지만 밖에 나가 걷는 것을 좋아한다. 이름을 부르면 잘 오는 편이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필요로 하고 혼자 있을 싶을 때에는 불러도 잘 오지 않는다. 양배추와 오이를 좋아하고 밥을 항상 잘 먹는다. 두루마리 휴지를 다 쓰면 빈 휴지심이 돌아가는 소리를 듣고 언제나 어디서나 화장실 앞으로 달려온다. 휴지심을 던져주면 그걸 물고 어디론가 간다. (그리고 그 휴지심은 대청소날 한꺼번에 어딘가에서 발견된다.) 오후 11시가 되면 세바스찬은 잠을 자러 방으로 들어간다. 내가 침대에 누우면 침대 위로 올라가 내 어깨를 베고 눕는다. 뽀뽀를 좋아하고 새로운 사람을 좋아한다. 세바스찬은 까만 코는 항상 촉촉하고 나와 눈을 잘 맞춰준다. 장을 보고 돌아오면 내가 무엇을 사 왔는지 코로 항상 확인을 한다. 언젠가는 이 작은 강아지와 헤어질 날이 오겠지만 (상상하기도 싫다) 작은 강아지의 빈자리가 정말 크게 느껴지겠지만 세바스찬도 나와 함께 있는 시간들이 행복했으면 좋겠다. 비록 나는 꼬리의 움직임과 호흡의 빠르기, 미묘한 표정의 변화만으로 저 강아지의 기분을 파악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느끼는 감정들을 세바스찬도 최대한 느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하면 매일 아침 세바스찬의 귀에 대고 속삭인다.
“건강하게 행복하게 오래오래 살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