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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수공주 Oct 08. 2024

공주의 잡생각

 요새 잠이 안 온다.


 예상했던 일이다. 3일 전 아침 겸 점심으로 새송이 버섯 덮밥을 해 먹고 (버섯은 최고의 가성비 재료다. 맛도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버섯 덮밥 레시피도 기회가 된다면 나중에 적어보겠다.) 잠깐 쉰다는 게 내리 2시간을 자버렸다. 그 이후로 밤에 잠이 안 온다. 애초에 늦게 잠이 드는 편이긴 하다. 그래도 새벽 2시 정도 되면 껌뻑껌뻑 눈이 감겼는데 지금은 3시가 넘었는데도 더 재미있는 영상을 찾기 위해 손가락만 바삐 움직일 뿐 몸이 잠을 잘 생각을 안 한다.

 잠을 자기 전에는 항상 영상을 본다. 자기 전에 스마트폰을 보는 게 눈 건강에도 좋지 않고 수면의 질을 떨어뜨린다고 해서 스마트폰 없이 잠에 들려고 시도해보기도 했다. 하지만 나에게는 스마트폰의 자극적인 빛과 소음보다는 내 머릿속을 맴도는 잡생각이 잠을 더 방해했다. 쓸데없이 하는 이 여러 가지 생각들을 없애는 방법은 둘 중 하나다. 아무 생각이 들지 않을 정도로 몸을 피곤하게 만들거나 잡생각보다 더 자극적인 것으로 주의를 돌리거나. 나는 후자의 방법을 선택한 것뿐이다. (그래서 눈에 좋다는 영양제를 먹고 있는데 효과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은 이 영상들도 잡생각을 이기지 못했다. 결국 스마트폰의 화면을 끄고 눈을 감고 누웠다. 이제 잡생각의 시간이다.


 잡생각의 시작은 단순하다. 내일 아침에 뭐 먹지. 내일 뭐 하지로 시작된 생각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어느샌가 이 세상의 모든 걱정을 짊어지고 우울해하고 있는 내 모습으로 바뀌어 있다. 순식간이다. 잡생각도 내 심리 상태나 그날 있었던 사건, 보았던 소식, 뉴스에 따라 장르가 달라진다. 호감 가는 사람이 생겼을 때는 그 사람과 결혼을 해서 추석 때 누구의 본가에 먼저 갈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아이를 낳고 아이가 사춘기가 되어 반항을 할 때 어떻게 지도해야 하는지 고민하는 내가 되기도 하고 전쟁과 관련된 뉴스를 본 날에는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서 세바스찬을 데리고 대피소에 갔는데 반려동물을 데려갈 수 없어 세바스찬과 둘이 길을 헤매다가 나와 같은 사람들을 만나 반려동물과 함께 할 수 있는 대피소를 만들어 지내다가 식량이 떨어지거나 적에게 발견되는 위기가 닥쳤을 때 반려동물들의 도움으로 위기를 극복하는 영화를 찍기도 한다. (이렇게 글로 쓰다 보니 잡생각들이 꽤 재미있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렇게 영화를 3편 정도 찍고 나니 이제야 조금씩 잠이 온다. 다리 사이에 누워 있던 세바스찬을 불러 내 어깨를 손으로 톡톡 두드리자 졸린 눈으로 올라와 어깨 위에 머리를 대고 눕는다. 세바스찬의 정수리에 코를 박자 고소한 냄새가 올라온다. 세바스찬의 말랑한 배를 손가락으로 쓰다듬는다. 내일은 절대 낮잠을 자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낮잠을 안 자고 대신 뭘 하면 좋을까. 밤에 잠을 잘 자려면 운동을 하라는데 헬스장을 등록해 볼까? 아 그런데 이제 날씨가 추워져서 잘 안 나가고 돈만 버릴 것 같다. 집에서 홈트를 해볼까? 나중에 하려고 저장해 놓은 홈트 영상이 몇 개 있는데 내일 한 번 봐야겠다. 그래도 다치면 안 되니까 스트레칭도 하고 나는 발목이 약해서 조심해야 한다. 지난번에 발목을 다쳐서 깁스를 했을 때 정말 불편했다. 걸을 수 있다는 것은 정말 축복받은 일이다. 그래도 집에 계속 있을 수 있어서 좋았다. 원래도 매일 집에 있긴 하지만 뭔가 집에 있을 이유가 생겨서랄까. 더 편하게 집에 있을 수 있었다. 나는 왜 어쩌다가 집순이가 된 걸까. 그렇다고 집에서 아무것도 안 하는 것은 아니다. 내 나름대로 루틴이 있고 엄청 바쁘다. 그렇다고 내가 바쁜걸 사람들이 알 수는 없다. 왜냐면 집에만 있으니까. 그러면 밖으로 나가볼,


 아, 또 잡생각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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