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후에야 시작된 나라는 브랜드

10년간의 브랜드 매니저 일을 그만두고서야 나를 브랜딩 하다

by 지나킴 마케터

<나라는 브랜드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한 이야기>


대학 졸업 후 10년 동안 마케팅 업계에서 쭉 일했다. 마케팅 부서에서 브랜드 매니저(Brand Manager)라는 역할을 담당하였는데, 말 그대로 하나의 브랜드를 A부터 Z까지 책임지는 역할이었다. 매출부터 캠페인, 광고 메시지까지… 내가 고민 끝에 만들어낸 브랜드 메시지, 광고 이미지 한 장으로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이 바뀌는 걸 볼 때면 마케팅이란 일이 매력적이라고 느꼈다. 나에게는 마치 마법처럼 느껴지기까지 했다.


코카콜라, 존슨 앤 존슨, 아모레퍼시픽 같은 브랜드를 맡으며 일했지만, 정작 나는 ‘나’라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무심했다. 브랜드의 메시지를 찾고, 브랜드의 정체성을 단단히 세우는 데에는 열정적이었지만, 정작 나를 브랜딩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다.


돌이켜보면, 퍼스널 브랜딩이라는 말도 그냥 유행어쯤으로 흘려들었던 것 같다. ‘내가 맡은 브랜드를 잘 키우는 게 곧 내 일이고, 그게 나’라고 생각했으니까. 냉철히 뒤돌아보면 그 브랜드들은 나 말고도 다른 누군가가 잘 이끌 수 있었을 테고, ‘나’라는 브랜드는 오직 내가 아니면 안 되는 거였는데 말이다.


그 깨달음은 퇴사 후에야 찾아왔다. 브랜드 매니저라는 타이틀을 내려놓고 나니, 나는 도대체 누구인가 혼란스러움이 찾아왔다. 지난 10년 동안 스스로를 ‘마케터’라고 정의하며 살아왔는데, 그 타이틀을 벗으니 나라는 사람에게 무엇이 남아있는지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나 = 열정적인 브랜드 매니저, 마케터"

지난 10년간 이 정의 외에는 다른 무언가를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사실 퇴사를 결심하게 된 데에는 개인적인 이유가 있었다. 결혼 후 오랫동안 아이를 기다려왔던 나는, 이제는 일을 잠시 내려놓고 병원을 다니며 아이를 갖는 일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브랜드 매니저라는 자리는 늘 모든 문제의 최종 책임을 짊어져야 했고, 하루에도 수십 통의 전화와 수백 개의 메일을 받아내다 보니 어느 순간 체력적으로도 지쳐 있었다.

결국 퇴사를 선택했지만, 회사를 떠나는 날에는 펑펑 울고 말았다. 10년 연애 끝에 이별하는 듯한 기분이랄까. 브랜드 마케팅은 내게 단순한 직업 이상인, 첫사랑 같은 존재였다.


그렇게 열정을 쏟아부었던 십 년의 타이틀이 사라지고 나니, 마음 한편이 텅 비어버린 듯했다. 그 공백을 채워줄 새로운 자극이 필요했는지 퇴사 후 나는 자연스럽게 책을 집어 들기 시작했다. 마침 시어머님 댁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면서, 시어머님과 보내는 시간이 많아지게 됐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 시간 속 대화의 대부분은 ‘옷’이라는 주제로 흘러갔다.

어머님께서 옷에 대해 말씀하실 때마다, 나에게는 작은 충격 같은 놀라움이 찾아왔다. 매일 아침 아무렇지 않게 반복하던 ‘옷 입기’라는 행위 안에, 한 사람의 삶과 철학이 담겨 있다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것이다. 어머님의 이야기는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마치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는 수업 같았다. 그렇게 나는 자연스레 어머님으로부터 1:1 ‘옷장 수업’을 받는 제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내가 옷을 제대로 입지 못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되면서, 수업이 끝난 후 복습이라도 하듯 옷과 관련된 책을 찾아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서는 하나같이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옷을 잘 입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먼저 알아야 한다.” 체형, 성격, 취향, 가치관 — 결국 옷을 입는다는 건 나를 이해하는 일이라는 메시지였다.

옷 입는 법을 배우는 과정은, 지난 십 년간 쌓아온 직업적 타이틀을 내려놓고 온전히 ‘나 자신’을 바라보는 시간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시간은 다시 '나만의 브랜드'를 만들어가는, 퍼스널 브랜딩으로 확장되어 갔다.


<나를 옷으로 브랜딩 하는 것에 대하여>


내가 누구인지, 어떤 메시지를 담고 싶은지를 ‘옷’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사실이 새삼 낯설게, 또 신선하게 다가왔다. 마치 예전에 내가 만들던 브랜드 캠페인을 다시 보는 기분이랄까. 그렇게 나는 브랜드 매니저가 아닌, ‘나’라는 브랜드를 조용히 만들어가기 시작했다.


하나의 제품을 브랜딩 할 때, 가장 먼저 던지는 질문이 있다.

“이 제품만의 매력은 뭘까?”


경쟁 제품과는 차별화되는, 이 브랜드만이 가진 고유한 특징. 그 매력이 명확하고 분명할수록 소비자의 기억 속에 선명하게 남는다.


우리들은 하루에도 수천 개의 메시지에 노출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브랜드가 사람들 머릿속에 단 하나의 강력한 메시지로 자리매김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것을 마케팅에서는 ‘포지셔닝(positioning)’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곧 브랜드의 생존 전략이다.


뜨거운 한 여름, 땀이 송골송골 맺힐 때 떠오르는 얼음 가득한, 톡 쏘는 짜릿한 코카콜라처럼 말이다.

브랜드 메시지가 우리 안에 깊숙이 들어오는 순간, 그 브랜드는 우리의 습관이 되고, 일상이 된다. 그것을 바로 브랜드 러브, Brand Love — 브랜드와 소비자 사이에 생긴 작은 연결고리 같은 것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나만의 매력은 무엇일까?"


나는 직설적인 편이다. 빈말이 어색해서 처음엔 차갑게 보일 수 있다. 그래서 이런 말을 들은 적도 있다.
“너의 진짜 매력을 알려면 최소 3년은 옆에 있어야 돼.”


그 말이 농담 같으면서도 맞는 말이었다. 가까이서 지내다 보면 내 직설 뒤에 있는 진심을 알아봐 준다. 겉은 날카로워 보여도 속은 단순하고 투명하다고. 요즘엔 내 이런 면을 조금 더 부드럽게 다듬어야겠다는 생각도 한다. 그래도 결국은 ‘있는 그대로의 나’를 인정하고, 그걸 장점으로 만드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고민하다가 나를 이 문장 하나로 담아보았다.

솔직하고 담백한, 이지적인 그녀.


조금 낯간지럽지만, 내 성격과 분위기를 가장 잘 설명해 주는 말 같았다.


나를 하나의 명확한 메시지로 정의하고 나니, 과거에 입었던 프릴과 레이스, 빈티지풍의 옷들이 내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았음을 알게 되었다. 그것은 다른 누군가에게는 잘 맞는 스타일일지 몰라도, 내 체형과 분위기에는 맞지 않았다.


이 여정은 단순히 옷을 입는 것을 넘어, 나를 브랜딩 하는 과정으로 느껴졌다. 그리고 이건, 한 번 입고 끝나는 캠페인이 아니라 평생 이어져야 하는 긴 작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코카콜라 같은 글로벌 브랜드도 늘 그 메시지를 점검하고, 다듬고, 또 새롭게 전달하듯이. 나 역시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나 자신을 이해하고, 표현하고, 다듬어야 하니까 말이다.


예전에 코카콜라 브랜드를 맡았을 때가 떠오른다. 처음 업무에 투입되기 전, 브랜드 가이드북 수백 페이지를 통째로 읽어야 했다. 브랜드의 역사부터 색상, 서체, 비율, 여백까지. 이 브랜드가 세상에 어떤 브랜드로 보이길 원하는지에 대한 모든 디테일이 거기에 담겨 있었다. 콜라의 캐러멜 컬러는 어떤 색채로 표현이 되어야 맛깔난 액체로 보이는지, 기포는 어떻게 보여야 청량함이 극대화되는지까지, 브랜드의 정체성에 관련된 내용들이 일관성 있게 보여야 했다.


그렇다고 매일 똑같은 광고를 하는 건 아니다. 오히려 정체성은 흔들리지 않고 확고할수록, 표현 방식은 열려있고 창의적으로 변주할 수 있다.


결국, 퍼스널 브랜딩도 이와 비슷하다. 나는 ‘솔직하고 담백한, 이지적인 사람’이라는 정체성을 기반으로 그날그날 조금씩 다른 옷을 입는다. 고유한 톤은 유지하면서도, 다양한 스타일로 변주되는 '나'라는 브랜드.


그렇게 나라는 브랜드와 주변 사람들이 Brand love, 즉 작은 연결고리를 만들어 간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다.


예전엔 제품을 브랜딩 했지만, 지금은 나 자신을 옷으로 브랜딩 한다.


조금 낯설고, 조금 설레는 새로운 캠페인.

무엇보다도 이번 캠페인의 주인공은 브랜드가 아닌 바로 나라는 점에서,

이 일은 더 흥미롭고,

어쩌면 코카콜라만큼이나 짜릿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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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나킴 마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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