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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Apr 29. 2022

승무원은 레이오버 때 뭐 하나요?

“비행 끝나고 레이오버 때에는 뭐해요?”


주변 사람들에게 자주 받는 질문 중에 하나이다. 사람마다 각자의 레이오버를 보내는 방법은 각양각색이고 나는 레이오버 시 외출을 하더라도 혼자 나가는 것을 선호하기 때문에 다른 크루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겠지만, 일단 내 기준으로 몇 가지 나열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 산책하기 : 비행을 간 곳에 아침 일찍 도착해서 다음날 이른 새벽에 다시 일어나야 하는 레이오버 일정이라면, 나는 웬만하면 낮잠을 자지 않는다. 대신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샤워를 하고 간편한 옷차림에 운동화를 신고 가방을 둘러매고는 호텔을 떠난다.


피곤하다고 눕는 순간 나도 모르게  들어 떠보면 늦은 오후가 될 확률이 높다. 낮잠을 잤으니 저녁에는 잠을 설것이 불 보듯 뻔하고, 결국 최악의 몸 상태로 비행을 가게 된다. 나는 비행 전에는 정신적, 육체적으로 최상의 상태를 만들고 가려고 노력한다. 잠을 못 자서 피곤하거나 정신이 다른데 팔려있으면 비행 내내 사고 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렇게 호텔을 훌쩍 떠나 주변 산책 혹은 관광지를 돌아다닌다. 책이나 티비에서만 보던 명소들을 직접 보기도 하고 때로는 현지 사람들이 사는 작은 동네를 돌아다니기도 한다. 그러다가 마음에 드는 카페에 들어가서 차나 커피를 마시기도 하고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하릴없이 공원에 앉아 망중한을 즐기기도 한다.


특히나 나는 출근시간에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출근하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걸 좋아하는데, 남들은 출근하는데 혼자 회사 땡땡이치는 기분이 드는 것이 아주 좋다.  그렇다. 나는 내가 밤새 힘들게 비행하고 여기로 왔다는 사실은 완전히 잊어버린 채 단지 남들이 일할 때 쉬고 있다는 그 사실 하나로 매우 행복해한다. 나란 인간은 참 단순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일반적인 생활패턴에서 벗어나 밤낮과 시차가 뒤섞여 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지만, 가끔은 이렇게 그것이 주는 달콤함을 맛보기도 한다.

계획 없이 방문했던 식물원 같은 곳. (아마... 코펜하겐?) 사람도 별로 없고 공원 같은 곳도 조성되어 있어서 벤치에 앉아 여유롭게 한껏 광합성을 하다가 왔었다.


* 박물관&미술관 방문 : 이것 또한 승무원 라이프의 이점 중 하나인데, 그것은 바로 전 세계에 있는 박물관 혹은 미술관에 갈 수 있다는 점이다. 특히 레이오버 시간만 잘 맞는다면, 사람이 없는 한적한 시간이나 오픈 시간에 맞춰 박물관 혹은 미술관을 갈 수 있다.


나는 그림 그릴 줄도 모르고, 그림을 보는 안목도 없지만, 예술작품에 관련된 비하인드 스토리나 예술가에 대한 이야기들에 관심이 많다. 평소에 관심 있게 봐 두었던 작품이나 좋아하는 작품이 있는 곳으로 비행을 가면 실제 작품을 만나러 미술관을 가기도 하고, 때로는 아무 목적 없이 방문했다가 마음을 울리는 작품들을 만나는 행운을 누리기도 한다.


레이오버 시간이 여유롭고 딱히 다른 일정이 없다면, 오디오 가이드를 빌리거나 브로슈어를 들고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천천히 살펴보는 편인데, 그때만큼은 온전히 여행자가 된 기분이다. 나의 메마른 예술 감각에 가끔씩 물을 주는 시간이라고나 할까.




* 로컬 마켓 구경하기 : 나는 어릴 때 티비에서 외국 이야기가 나오면 ‘진짜로 지구 반대편에도 사람이 살까? 무엇을 먹고살까? 어떻게 살까?' 항상 진심으로 궁금했었다. 그래서일까. 나는 로컬 마켓에 가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백화점이나 마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특유의 생동감이 있고, 그 지역 사람들이 무엇을 먹고, 어떤 옷을 입고, 어떻게 생활하는지 더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전 일상생활이 자유롭던 때에는 주말시장, 야시장, 상설 시장할 것 없이 시장 가는 것을 즐겼고, 자그레브 레이오버 때는 아침 시장에 가겠다고 기어코 새벽에 일어나 7시 시장 오픈 시간에 맞춰 시장에 가기도 했다.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야시장을 비롯한 전 세계의 많은 시장들이 많이 축소되었지만, 조만간 다시 일상생활을 회복하게 되면 다시 한번 활기찬 시장 구경을 가보고 싶다.


아, 참고로 현지에서 맛보는 로컬 음식과 제철과일들은 비행 후 피곤한 나에게 엄청난 힘이 된다. 재미있는 시장 구경을 하며 맛있는 음식을 한 입 베어 물면... 캬아... 감탄과 함께 "이 맛에 비행하지." 소리가 절로 난다.

태국의 야시장(왼쪽), 다양한 색의 천막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스페인의 크리스마스 마켓(오른쪽), 11월, 12월은 유럽의 크리스마스 마켓 방문을 위해 유럽 비행 비딩을 한다.




* 마사지 : 직업 특성상 육체노동을 하는 부분이 많고, 비행 후에는 항상 몸이 붓기 때문에 비행 후 마사지받는 것을 좋아한다. 받고 나면 확실히 몸 상태가 훨씬 나아지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받으러 다니는 편이다. 특히 동남아 지역으로 비행을 가면, 다른 나라에 비해 훨씬 저렴한 가격으로 마사지를 받을 수 있기에, 마사지는 필수 코스이다. 장시간 비행 후 마시지를 받고, 따끈한 물에 샤워까지 하고 나면 시차를 느낄 새도 없이 스르르 잠들 수 있다.(라고 적고 기절한다.라고 읽는다.)




* 독서 : “배고픈 줄 알면 머리 고픈 줄도 알아라”. 이건 내가 어릴 때부터 귀에 딱지가 앉게 들어온 우리 엄마의 레퍼토리 중 하나이다. 뜻을 풀이하자면, ‘배가 고프다고 밥은 잘 먹으면서, 너는 왜 뇌에는 밥을 주지 않니?’ 정도로 해석할 수 있겠다.


생각해 보면 어릴 때부터 엄마가 공부하라고 강요한 적은 별로 없는데, 독서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항상 강조하셨던 것 같다. 매달 읽고 싶어 하는 책을 사주셨고, 책 표지 앞에 짧게 편지도 써서 주셨다. 아무튼 그래서 어릴 때부터 책을 가까이하면서 지냈고, 독서는 자연스럽게 나의 취미 중 하나가 되었다.


그런데 카타르로 직장을 잡고 나니 한국어로 된 책 구하기가 너무 힘들더라. 그래서 항상 책이 많이 고팠었는데, 전자책 서비스를 알게 된 후로부터는 항상 책을 다운로드해서 다니면서 읽기 시작했다. 종이책에 비하면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나에게는 이것도 감지덕지이다. 읽고 싶은 책이 있는데 전자책 서비스 목록에 없으면 한국 비행이 있을 때마다 1-2권씩 들고 온다.




* 영화, 드라마 : 가끔은 영화를 본다. 영어공부에 심취해있는 모드라면 드라마나 영화를 영어로 보고 공부를 하고는 한다. 그냥 영화가 보고프면, 새로 올라온 영화를 보거나, 혹은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고 또 보고 하고는 한다. (참고로 나는 해리포터 시리즈, 이터널 선샤인, 트와일라잇 시리즈 등을 좋아해서 매년 한 번씩은 전부 다 본다.)  


한국 드라마는 너무 재미있지만, 한번 시작하면 끝을 보는 내 성격상 아무것도 안 하고 드라마만 몰아 볼 것이 뻔하기 때문에 일부러 자중하는 편이다. 언젠가 드라마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영어 자막을 켜고 보는데, 어느 순간 몰입에 방해가 돼서 꺼버리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는 정말 보면 안 되겠다 싶더라. 그래서 지금은 6개월째 안 보는 중이다.




위의 있는 목록들은 주로 코로나 전의 이야기가 대다수이고, 현재는 나만의 리스트를 다시 만들어 가는 중이다. 승무원 초기에는 사실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대부분의 시간을 자는데 소비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그 시간이 아까워졌다. 특히 코로나로 인해 비행을 쉬는 기간 동안 자기반성 및 미래에 관한 생각 많이 하게 되어서인지 카타르로 돌아온 후에는 오프나 레이오버 때 좀 더 생산적인 일을 하려고 노력하게 되었다.


작년에는 비행에 복귀 후 적응 시간을 좀 가지고, 미래에 관한 플랜을 생각해 보았고, 올해는 그 첫걸음을 실행 중이다. 일단 올해는 '자기 관리와 자기 계발.' 이 두 가지에 초점을 두고 있는데, 아직 우당탕탕 시행착오가 있지만, 조금씩 조금씩 나아가는 중이다. 휴식만을 주는 시간이 아닌, 나에게 도움이 되는 시간을 만들기 위해 말이다.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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