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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막의 연금술사 Jan 28. 2022

그 도시의 민낯은 나를 슬프게 했다

비행을 하며 좋은 점은 세계 여러 나라를 다니고, 그들의 생활양식이나 문화를 조금이나마 엿볼 수 있다는 점 일 것이다. 유명한 도시들을 다니며 여행을 하는 즐거움도 있지만, 사람들이 관광으로 잘 가지 않는 나라들의 숨겨진 모습을 보게 되는 것도 이 직업이 주는 하나의 특혜이다.


도착한 후 비행기에서 내려 마주치는 공항의 정돈된 모습 뒤로, 호텔을 향해 가는 버스 안, 창문으로 비치는 경관들에 집중하다 보면, 어느새 도시는 그 민낯을 스스럼없이 보여주고는 한다.




다국적의 크루들이 모두 똑같은 유니폼을 입은 것이 신기했는지, 엄마 뒤에 숨어서 고개만 빼꼼히 내밀고 우리를 한참이나 구경하던 방글라데시 소녀. 히잡*을 쓴 얼굴 사이로 휘둥그레진 두 눈이 참 귀여웠었다.

 히잡(hijab) : 무슬림 여성들이 머리카락을 가릴 때 쓰는 천, 덮개류. 

더운 날에 길거리 구석에서 먼지를 폴폴 날리며 축구를 하던 인도의 소년들. 신발도 없이 허름한 공으로 공놀이를 하는 모습이 순박하게 느껴지기도, 한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했다.

외국인이 신기했는지, 우리를 보며 사진 찍자고 따라다니던 네팔의 소년들. 

자신은 꼭 승무원이 될 거라며, 나중에 같이 비행하자고 나에게 약속과 다짐이 담긴 말을 건네주고 간 필리핀 소녀. 


모두가 마음에 남는 소중한 기억들이지만, 최근 라고스 비행은 나에게 많은 생각을 들게 했다.

만석에 피곤했던 비행이라, 공항에 도착한 후 생각 없이 버스에 올라타 창문 밖으로 시선을 던진 채 호텔을 향해 가고 있는데, 도시에 가까워지니 도로에 사람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처음에는 무단횡단을 하려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다시 보니 모두가 머리에 무언가를 짊어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각기 과자, 과일, 생수 같은 것들을 팔고 있었는데, 그중에 어떤 소년이 내 시선을 잡아끌었다. 10대 초반으로 보이는 자그마한 그 소년은 머리에 올린 커다란 쟁반 위로 한가득 물병을 짊어지고 있었는데, 성인 남자가 들기에도 버거워 보이는 양을 머리에 잔뜩 올리고는 차 사이를 빠르게 뛰어다니며 물을 팔고 있었다. 가만히 있어도 습하고 더운 날씨인데, 한병의 물이라도 더 팔아보려 땀을 뻘뻘 흘리며, 움직이는 자동차들 사이를 위험하게 달리는 소년을 보며 나는 순간 참 많이 생각이 들었다.


‘아가야. 너는 왜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야?’


입 밖으로 내지 못한 나의 이 물음은, 그 아이를 계속 쫓는 나의 시선을 감지한 가나 출신 크루의 설명으로 이어졌다. 


“그거 알아? 나이지리아는 아프리카에서 제일 부유한 나라 중에 하나였어. 석유도 많고 교육도 높은 수준이었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다는 나의 표정을 본, 이어진 크루의 설명은 훨씬 더 참혹했다. 실패한 정부, 부패한 권력, 무너진 경제, 극심한 빈부격차, 직장과 갈 곳을 잃은 사람들...


크루의 설명을 듣는 동안, 물을 팔던 그 소년이 자꾸 생각났다. 땀을 뻘뻘 흘리며 뛰던 모습, 물을 팔고 난 뒤, 도로 한구석에서 받은 잔돈을 세던 모습, 돈을 세면서도 물을 내려놓지 않고 기울인 고개로 버티고 있던 모습...


저 아이가 짊어진 삶의 무게는 얼마일까... 도대체 이 나라에는 어떤 일이 벌어진 걸까.


호텔에 도착한 나는, 나이지리아에 대해서 찾아보기 시작했다. 버스에서 오던 길에 크루가 들려준 말들은 모두 사실이었고, 그 외에도 내전과 종교전쟁을 비롯한 많은 이슈들이 있었다. 또한 질 높은 교육을 받았으나, 좋지 않은 경제사정으로 인해 국내에서 일자리를 구하기 쉽지 않아, 전 세계를 상대로 한 금융 사기나 무역사기 등이 성행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나이지리아에 대한 국제적 평판이 매우 좋지 않았다.


그 글들을 다 읽은 나의 마음에 돌덩이가 들어왔다.

주먹만 한 돌로 시작한 내 마음의 무게는 인터넷에서 찾은 설명을 읽으면 읽을수록 더 커졌고, 후에 그 소년의 모습을 떠올린 순간, 끝내 고인돌만 한 크기가 되어버렸다.


슬프고 아팠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아이들이 고통을 받아야 끝나는 것일까. 전 세계에 이런 나라들이 얼마나 많고, 그로 인해 고통받는 아이들이 얼마나 많은 것일까...


이들에게 관심을 가져야겠다. 

한국에서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이, 내가 현재 누리는 것들이 얼마나 감사하고 소중한지,

꼭 이렇게 두 눈으로 보고 나서야 깨닫는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하며...

내가 아이들을 위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이번 비행은 몸도 마음도 많이... 무겁다.



*이전 이야기* https://brunch.co.kr/@a7lchemist/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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