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에서 글감 찾기>
하루 중 있었던 일에서 굵직한 에피소드가 있다면 그걸 중심으로 쓰면 된다. 이럴 땐 글쓰기가 수월하다. 에피소드 뒤에 느낀 점을 덧붙였는데 생각을 많이 했다. 조금 유식한 말로 ‘사유’하는 것이다. 사유는 명사로 ‘대상을 두루 생각하는 일’을 뜻한다.
글을 쓰다 보면 인터넷 사전을 자주 찾아보게 되는데 모르던 단어를 알게 된다. 책과 거리가 멀었고, 인생 경험도 풍부하지 못했고,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일도 적었다. 그래서 모르는 단어도 많고 어휘력도 내 또래보다 현저히 부족했다. 모르던 단어는 처음엔 생소해도 하나씩 알아갈 때면 뇌가 조금씩 고급스러워지는 느낌이든다. 책을 읽고 글을 쓰기 시작한 삼 년 전보다 어휘력이 말도 못 하게 늘었다. 초등학생 수준에서는 벗어났다고 생각한다.
글의 마지막엔 느낀 점을 발전시켜 사유한 것을 보탰다. 아무리 생각해도 쓸 만한 에피소드가 없을 땐 메모장에 적어 놓은 것을 보며 단어를 찾아내었다. 자주 커피를 마셔서 어느 날에는 ‘커피’라는 키워드를 잡았다. “그래, 내가 좋아하는 커피로 글을 한번 써 보자!” 하는 마음이었다. 먼저 커피에 관한 에피소드를 떠올렸다. 글로 적으며 정보가 필요한 곳을 표시해 놓았다가 책이나 인터넷 검색을 통해 정보를 뒷받침했다. 어느 정도 분량이 나왔다 싶으면 사유한 것을 덧붙이고 글을 마무리지었다. 여기서 글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바-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담아낼 수 있다면 좋지만, 역부족이라면 머리를 쥐어짜지 않아도 된다.
<일상을 에세이로 확장시키기>
- 글감 : 커피
- 글 구조 : 에피소드(경험)+사유+정보 뒷받침+전하고자 하는 메시지
- 의도한 것 : 수미상관
▶ 수미상관은 명사로 수미상응이라고도 한다. ‘머리와 꼬리, 처음과 끝이 서로 이어 통함’이라는 뜻이다. 한 편의 글을 크게 ‘도입-전개-결말’ 세 부분으로 나누었을 때 도입에 들어간 글의 중심이 되는 문장을 결말에서 한 번 더 언급해 줌으로써 수미상관을 맞춘다면 잘 쓴 글로 보일 수 있는 장점이 있다.
▶ 밑줄 그은 부분은 수미상관을 맞춘 문장, 초록색은 코나 커피에 대한 정보를 뒷받침한 문장, 빨간색은 커피에 관련된 에피소드와 다른 이야기가 나오는 문단을 이어주는 문장, 보라색은 사유한 문장, 파란색은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담긴 문장이다.
제목 : 마음의 여유와 웃음의 상관관계
남편은 우리가 했던 최고의 여행으로 신혼여행을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우리는 2012년 1월 14일 흰 눈이 흩날리던 날, 하와이로 신혼여행을 다녀왔다. 웨딩홀에서 진행하는 패키지여행이었다. 거의 비행기 비용만 드는 거라는 웨딩홀 매니저의 말은 무척이나 유혹적이어서 망설임은 없었다.
임신 5개월이었던 나는 하와이에 도착해 짐을 풀고 일정표를 보며 임산부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 무엇인지 찾아보았다. 산소 헬멧을 쓰고 물속을 걷는 씨 워커, 제트스키, 서핑 강습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하와이안 코나 커피 시음회와 선상 디너파티였다. 이중 가장 기대한 건 커피 시음회였다.
코나 커피는 화산지대로 커피 재배에 최적인 하와이에서 생산되어 품질이 좋다고 한다. 소량으로 생산되는 특별한 커피이자 예멘의 모카와 자메이카의 블루마운틴과 더불어 세계 3대로 인정받고 있다. 커피를 좋아해서 바리스타 자격증까지 딸 정도였던 터라 설레는 마음으로 시음회를 기다렸다.
여행 첫날은 저녁 식사 이외 다른 일정은 없었다. 본격적인 여행은 둘째 날부터였다. 다음 날 아침, 운전기사님께서 가이드 역할까지 한다는 걸 알았다. 가이드 없는 패키지여행은 들어 본 적이 없어서 괜찮은 건지 불안했다. 그러나 걱정과는 달리 기사님은 능숙한 운전실력과 현란한 말솜씨를 가진 분이었다. 긴 드라이브 코스도 그의 입담 덕분에 지루하지 않았다.
속상한 마음이 된 건 셋째 날부터였다. 5박 6일 하와이 여행 비용이 저렴한 이유를 알게 되었다. 기사님께서는 곧 코나 커피 시음회가 있을 거라고 하더니 세븐일레븐 앞에 차를 세웠다. 왜 편의점에 차를 세웠는지 의아했지만, 기사님께서 화장실을 가시려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몇 분 후 돌아온 그의 손에는 흰색 봉지가 들려 있었다. 그는 봉지에서 캔 음료 하나를 꺼내고 말했다. “이게 바로 코나 커피예요.” 캔 커피에는 ‘KONA COFFEE’라고 크게 적혀 있었다. 기사님이 캔 커피를 따서 맨 앞줄에 앉은 사람에게 건넸다. 커피 시연을 참관하고 맛보는 걸 상상했는데…. 괜찮냐는 남편의 말에 바로 대답할 수 없었다.
코나 커피. 아니, 코나 캔 커피의 맛은 익숙했다. 언젠가 한국에서 마셔보았던 레쓰비의 맛과 닮아있었다. 아마 캔 커피의 맛은 어느 나라나 비슷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보가 터진 나는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뿜어버렸다. 남편이 가방에서 티슈를 꺼내 옷을 닦아주며 “괜찮아?”하고 다시 물었고 나는 그제야 무언갈 말할 수 있었다. “재미있지 않아? 나 이런 경험 처음이야.”
신혼여행 마지막 날 있었던 선상 디너파티도 두 번 다신 못할 특별한 경험이었다. 가져간 것 중 가장 예쁜 옷을 골라 입고 드라이어기로 머리까지 야무지게 돌돌 말아 한껏 꾸몄는데 우리는 멋진 요트 위에서 하얀색 플라스틱 일회용 접시에 카레를 담아 먹었다.
그럼에도 신혼여행이 남편에게 좋은 추억으로 남은 이유는, 나에게 있었다. 11년을 사는 동안 내가 가장 많이 웃었던 게 하와이에서라고 한다. 그때는 실망감과 당황스러움도 웃어넘길 수 있는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는 아이를 낳고 키우면서 점점 사라졌고 웃음도 줄어들었다. 두 아이가 초등학생이 되면서 어느 정도 웃음을 되찾았지만 가끔 마음의 여유를 잃곤 한다.
바로 인간관계가 힘들어질 때이다. 어긋난 관계는 마음의 여유를 앗아간다. 그럴 때면 아무리 재밌는 일에도 좀처럼 웃을 수가 없다. 한 사람에게 정성껏 새겨 넣은 나의 시간과 마음을 회수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안타깝게도 그 방법을 알지 못한다.
진심을 건넨 만큼 마음을 앓아야지만 아픔도 끝이 난다. 마음 앓이를 할 때는 나를 위해 애를 쓸 필요가 있다. 부정적인 감정에 휩싸이지 않기 위해 무엇인가에 집중하는 것, 곁에 있는 사람을 떠올리며 관계의 계산기를 두드리지 않는 것, 아픔을 회피하지 않고 그저 받아들이는 것이다. 괜찮아질 때까지.
득과 실을 재단하며 관계를 유지하고 상처받지 않으려 하는 건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러나 관계는 어떠한 공식으로 만들어질 수 있는 게 아니다. 깊은 사이로 나아가고 싶다면 나의 것을 먼저 내어주어야 한다고 믿는다. 욕심이나 못된 생각 같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순수한 마음’을 건네는 것 말이다. 그 속에 진심이 있다고 여긴다.
오래전부터 각박한 세상이라는 말이 들려왔다. 덜 각박한 세상이 되려면 관계 앞에 놓아둔 저울, 줄자, 계산기를 거두어야 한다. 다만 호구-어수룩하여 이용하기 좋은 사람-은 되지 말아야 하니, 무언갈 주고도 마음이 좋지 않다면 베푸는 걸 멈추어야 한다. 시간과 물질을 내어주는 것에도 무리하지 않는 편이 이롭다.
언제든 마음이 동하면 관계를 재단하지 않고 나의 것을 먼저 내어 주려 한다. 나를 헤치지 않는 선에서. 그간 상처를 수없이 주고받아오면서도 지켜온 나의 ‘태도’이다. 이건 이해관계를 따지는 사람이 많은 세상이라고 해도 진심이 통하는 사람은 꼭 있을 거라는 신념에서 비롯되었다.
진심을 건네고 얻은 상처가 언제 즈음이면 아물지 알 수 없다. 내상을 입으면 아픔을 넘어 고통스럽다. 이렇듯 진심을 준 대가를 호되게 치러야 할 때도 있다. 그래도 관계가 절망적이지 않은 건 희망이 있어서이다. 아픈 시간을 충분히 보내고 나면 다시 마음의 여유가 생길 테니까. 커피 시음회를 기대하며 마주한 코나 캔 커피에 실망감과 당황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웃어넘길 수 있었던 한 시절처럼, 마음의 여유는 다시 나에게로 돌아와 웃음을 선물할 것이다. 약속이나 한 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