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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아줌마 Nov 01. 2024

나를 슬프게 한 마루

구옥엔 나투스진 안됍니다 안돼요


최현석 셰프가 요리에 있어 셰프보다 위에 있는 것은 재료라 했다. 사실 재료와 셰프를 빼면 뭐가 있을까. 집 공사의 퀄리티 역시 당연하겠지만 좋은 재료와 좋은 작업자가 90%를 결정한다. 문제는 우리 집이라는 메인 재료에 어떤 추가 재료가 좋은지, 어떤 작업자가 좋은 작업자인지 알기가 어렵다는 것이겠지. 

우리 집 마루 공사는, 요상하게 꼬이고 꼬여 작업자와 재료 대환장 콜라보가 되었다.


작업자 섭외가 꼬이고


처음엔 바닥 공사를 셀프로 할 생각이었다. 이유는 당연히 비용 절감. 예전에 묵었던 숙소가 무광 에폭시였고 그 느낌이 나쁘지 않아 그걸 셀프로 해볼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자꾸 늘어지는 공사에 체력이 점점 떨어지고, 싱가폴에 있던 가족까지 들이닥친 데다, 아이를 생각하면 난방을 해야 하는 한국에서 에폭시를 쓰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괜히 아토피라도 생기면 어떡하나 싶어서, 작업자분께 맡겨 마루를 깔기로 했다.


작업자분들을 찾아보는데 인기통 (인테리어 기술자 커뮤니티)에서 이런 글을 보게 되었다.

"곧 결혼을 해야 하는데, 자금마련을 위해 일을 구합니다. 입도한 지 얼마 안 되어 일 구하기 어렵네요.."

괜히 아줌마 오지랖이 돌아, 도와주고 싶었다. 페인트 사장님이 자기 팀 있다고 잘해줄 테니 맡기라고 했는데도 괜히 이 청년을 도와주고 싶단 마음에 청년에게 일을 맡겼다. 허나 이 청년, 조건이 까다롭다. 작업 전 우리 집 바닥 체크를 위한 방문은 어렵고, 일요일에만 작업이 가능하며, 본드와 마루는 내가 구해다 놓아야 한다나. 뭐, 그래도 결혼하려는 청년인데 도와줘야지 하고 쿠팡에서 좋다는 황토본드를 주문해 놓고 마루를 골라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뿔싸. 목공이 밀렸던 것이다. 그.. 술 먹고 작업 펑크 낸 분 덕택에. 목공이 밀리니 페인트도 밀렸고, 결국 그 주 일요일에 마루 작업이 들어갈 수가 없게 되었다. 이 청년은 일요일밖에 시간이 안된다 하고.

안타깝게도 다른 작업자를 찾아야 됐는데 이 청년의 조건대로 한 게 독이 되었다. 작업자분들이 시공만 하면 수지타산이 맞질 않아 자재구입까지 같이 하기를 원하는 것이다. 나는 다 구입했는데. 그렇다 해서 1주일을 더 미뤄 청년과 일하는 것도 안될 일이었다. 하루하루, 가족들까지 들이닥쳐 호텔비가 나가는 상황이니까. 어찌 저찌 우리 상황에 맞출 수 있는 한 분을 간신히 섭외했다. 급하게 섭외했기에 이 분 역시 우리 집 바닥을 미리 보지 못한 채 시공 당일에 오실 수밖에 없었다. 



바닥재 선택이 꼬이고


바닥상태에 대한 파악이 없이 내 마음대로 재료를 고르기 시작했다. 직전까지 사람이 살았고 누수나 곰팡이 없는 데다, 구옥이니까 바닥이 잘 말라있겠지 라는 생각에 바닥이 문제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다. 장판은 패스했다. 저렴한 재료이기에 실물을 보고 잘 골라야 하는데 제주에는 다양한 장판 샘플을 볼 수 있는 곳을 찾기 어려웠다. 그리고 강마루와 강화마루. 강화마루는 난방효율이 떨어지고 하자가 날 확률이 높다 해서 강마루로 결정했다. 폭이 넓은 게 넓어 보이는 느낌이 있어, 광폭마루로 하고 싶었다.


마침 제주시의 어느 자재상에서 노바마루 광폭 여유분을 저렴하게 판다기에 이거다! 하고 열심히 달려갔다. 갔는데, 왜 안 보이는 걸까요. 직원분이 열심히 창고를 뒤져 찾아보는데도 나오질 않았다. 재고 수량 확인에 오류가 있었나 보다. 제주는 재고가 없으면 주문하고 일주일 넘게 걸려 받기 때문에, 재고를 반드시 확인해 보는 게 필요하다. 어쩌지... 제주 내 그 어디에도 내가 원하는 노바 재고가 없었다. ㅜㅜ 그러다 마음속 깊이 묻어두었던 마루 하나가 생각났다. 이모션 블랑... 

https://youtu.be/W95aKAfp1gc?si=jjPdC5UkmoHnaB8n


알고 있었다. 내 맘속의 인테리어 스승님 폴라베어 전실장님의 유튜브로부터, 나투스진 그란데는 하자의 대명사라는 것. 그렇지만 알아보니 재고가 제주도에 충분히 있었다. 실물을 보니 또 이뻤다. 

가격도 좋고, 이쁘고, 재고도 있어 오늘 당장 사가지고 갈 수도 있고. 그냥 이건 운명이 아닐까? 습기에 약하다는데, 우리 집은 구옥이니까 시멘트가 말라도 바싹 말라있지 않을까? 하자가 나면 그거대로 고치면 되지 뭐. 

이모션 블랑으로 가자아~



마루 시공 당일  


미친 듯 내리는 눈을 뚫고 아주 힙한 작업자분이 오셨다. 탈색한 머리에 삼선 슬리퍼를 끌고. 이 분에게 작업 맡겨도 되나? 싶었지만, 하나하나 공구를 꺼내자 신뢰도가 화악 올라갔다. 칼각에 먼지 한 톨 없이 정돈된 스탠리 세트와 마루 시공 도구. 도구에 투자하고 잘 정리하는 분이라면 잘하실 것이다.


이 분, 우리 집 바닥을 보더니 한숨을 푹 쉰다. 제주 구옥에는 이모션 블랑 같은 건 시공하면 안 된다고. 구옥 바닥이 고르지 않다고. 더군다나 바다에 가까운 우리 동네의 경우, 현재 바닥의 함수율이 낮아도 지역 자체가 습한 데다, 집 뒤에 동산이 있어 더 습하기 때문에 물을 먹을 수밖에 없다 한다. 게다가 내가 사놓은 황토본드는 우리 마루에 시공할 수 없는 본드라 한다. 아 ㅜㅜ 처음부터 이분을 찾아서 바닥을 미리 보여드리고 자재며 본드며 다 한꺼번에 구매를 했었으면 모두가 편했을 것을. 그랬으면 이모션 블랑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어쩔 수 없다. 일단 본드부터 구하자. 작업자분이 바닥 다듬는 동안 제주의 자재상과 당근을 다 뒤져 본드를 확보해 전달했다. 내가 산 황토본드는 반납도 안됐고, 본드 판매자분은 내가 대안이 없다는 걸 알고 비싸게 불렀다. 어쩔 수 없다, 삽질할 상황은 만든 건 나인걸. 어쨌든 몇 시간 뒤, 바닥이 깔렸다. 모로 가든 간에 깔린 바닥을 보니 또 너무 이뻤다. 며칠간 마루가 바닥에 잘 붙도록 많이 밟아주라 하셔서 아이랑 보일러도 안 들어오는 집에서 이리 뛰고 저리 뛰었다. 집을 지나갈 때마다 들러서 바닥을 밟았다. 탑돌이 하는 것처럼, 제발 하자 나지 말아라 맘속으로 기도하며 바닥을 밟았다.


이제 문도 있고, 바닥도 있고, 벽도 있으니 집이 되었다. 타일 붙이고 보일러랑 화장실 도기만 들어오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집이 된다. 




몇 달 뒤 


그렇게 12월 내 공사를 하고, 1월 중순쯤 우리는 싱가폴로 돌아갔다. 그리고 싱가폴의 휴일을 맞아 3월 말, 시댁과 함께 제주에 왔었다. 바닥이 솟아있었다. 

바닥이 솟았다 아하하 ㅜㅜ

우리, 물청소 안 했다. 입주청소랄 것도 없이 그냥 우리가 무릎 꿇고 물기 꽉 짜서 걸레질했었다. 근데 우리는 두어 달 집을 비워놨었고, 그 사이에 제주에는 비가 많이 왔고, 또 겨울에서 봄이 되어 급격한 온도차를 집이 견뎌야 했고. 그러니 하자라고 볼 수도 없고, 그냥 이 자재를 선택한 자(나)의 잘못이다. 무튼 고쳐야지 어쩌겠어. 안타깝게도 우리 집 마루 시공한 힙스터 작업자분은 연락이 안 되어 다른 이를 찾았는데 또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이 사람은 나에게 사기를 치려 했다.


솟은 바닥을 까보더니 이건 보일러 누수 하자이니 바닥을 싹 걷고 보일러부터 다시 깔아야 한다나. 푸릇푸릇 한건 곰팡이라고. 이미 바닥 전부에 곰팡이가 깔렸다고 했다. 여기 설비 공사 한 사람이 누구냐, 본인은 이런 식으로 공사하는 사람 너무 싫어한다며, 나에게 본인을 인테리어 하는 '아는 동생'으로 얘기하라며 설비 측에 하자 보수를 요구해야 한다고 하고, 본인이 누수, 설비, 콘크리트, 마루를 새로 해주겠다고 했다. 


걱정이 몰려왔다. 또 우리는 곧 싱가폴로 돌아가야 하고, 그전에 모든 공사를 끝내야 한다. 그런데 뭔가 싸한 느낌이 든다. 이 사람 말이 맞는 걸까? 일단, 누수가 맞는지를 확인하기 위해 누수업자분들께 우리 집 상황을 알리고 연락해 봤다. 그랬더니 전에 누수문제로 문의했던 분 왈, 이건 생활 습기 때문일 확률이 높다, 우리 집이 비어있었고 제주에 비가 많이 왔으니 그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푸릇푸릇 한 건 곰팡이가 아니라 본드 색깔이다, 누수라면 그렇게 한 두부분만 솟을 리가 없더라 한다. 그리고 기적적으로 다시 연락된 마루 작업자님이 이건 절대 누수 아니라고. 도대체 어떤 놈이 마루 이렇게 뜯었냐며 멀쩡한 것까지 뜯어서 맞물리는 부분 매끈하지 못하게 만들었다고, 제주에 마루 하는 사람들 거기서 거긴데 어떤 놈이냐 화를 낸다. 


아... 왜 이렇게 하이에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 걸까. 어떻게든 공사가 마무리된 것에 감사를 해야 하는 걸까.

결국 우리 집 마루는 두 배를 주고 시공한 셈이 되었다. 오늘의 결론은, 절대로 제주 구옥에는 나투스 진은 시공하지 마시라는 것이다. 나투스진 그랑데 안됩니다 안돼요. 


 

오늘의 팁

구옥엔 무몰딩도 안 하는 게 좋답디다.

깔끔한 거 좋아하시는 분들. 마루에 무몰딩으로 가면 벽과 바닥이 꽉 물려있어야 하는데 습한 제주에서는 수축 팽창이 워낙 심하기 때문에 결국 언젠가는 하자가 난다고 합니다. 처음부터 타일 시공을 하시거나, 웬만하면 몰딩을 하시는 걸 추천드립니다. 저는 몇 년 뒤 또 공사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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