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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계약에는 마늘과 쑥이 필수

by 호박씨 May 23. 2022

 독일 집주인 Geppert 씨는 food catering 업체의 대표라 적힌 명함을 내게 건넸다. 그는  우리 집인 속한 저층 아파트 8가구 중에서 우리 집과 윗집, 2가구를 소유하고 있었다. 전형적인 독일 중년인 그는 단정하고 뻔한 청바지 패션에 거대한 운동화를 신은 장신이었다. 대머리에 안경을 쓰고 있었는데, 사업가 다운 영민함이 안경 너머 그의 눈빛에서 묻어났다.  

남편의 회사가 지불하는 월세 계약을 맺은 사람이니, 편하고 친하게만 대했음 어땠을까 싶다. 극심한 정보의 불균형 상태에서 하는 거래라니, 상대방이 사기 치는 것은 아닐까 마뜩지 않았다. 굳이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데 말이다 주재원에겐 적응 시기의 고민이야 끝이 없고, 적응완료에 필요한 시간도 끝이 없다. 거처 문제가 고민들의 시작이자 끝이다. 그리고 집은 관계의  시작이자 끝이다. 





독일의 월세 계약은 첫 3개월어치 집세라는 보증금 형태로 시작하길 대부분이다.  

지인 S는 주재 임기를 마무리하고 한국으로 들어오고 보증금은 S의 귀임 후 집주인이 반환 송금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집주인은 추가 수리비라는 이름을 붙여 정확히 보증금과 일치하는 청구서를 첨부한 이메일을 보내왔다. 엑셀 표로 작성되어 있는 원상복구 청구서의 숫자를 말로 풀자면, 

"네가 이미 내 통장에 넣어준 보증금을 나는 너에게 보내주고 싶지 않고 내가 다 먹고 싶어."였다. 

동방예의지국인답게 귀임 전 원상 복구비 명목으로 이미 1000유로, 130만 원을 지불했고, 주인도 이에 동의한 바였다. 페인트 칠과 미세한 흠집에 대한 수리비를 제공한 지인으로써는 주인의 오리발이 기가 막히다. 

모범 시민 문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독일의 이미지를 S의 집주인은 박살 내는 중이다. 3개월치의  집세는 사실 지인의 돈이 아니다. S 또한 주재원이기에 집주인에게 받아 회사에 도로 전달해줄 예정이다. 회사로부터 제공받은 월세이니 회사가 최종 수령자이다.  

S가 펄펄 뛸 이유는 딱히 없어 뵈지만, 그녀는 배신감에 치를 떤다. 4년이라는 시간 동안 계약이라는 관계를 맺어온 집주인은 피날레에서 부도덕함을 드러내니, 정의감이 넘치는 우리로썬 열은 받지만 집주인 멱살을 잡기 위해 독일로 날아가지 못하는 상황을 잘 아는 집주인은 보증금을 뱉지 않을 예정이다. 

S가 억울해서 잠도 안온 다기에 Geppert 씨가 생각났다. 

" 언니, 게파트 아저씨는 진짜 양반인 거예요." 

그런 것일까? 


 게퍼트 씨는 평균적인 독일인 정도의 영어를 구사한다. 영어로 일상적 의사소통은 가능한 수준이다. 독일 도착해서 두 번째로 의사소통을 한 것이 게퍼트 씨였다. ( 첫 번째는 아파트 옆 동의 영어 잘하는 할머니와 나눈 쓰레기 배출법에 관한 주제로 나눈 대화였다.) 

만나자마자 악수를 청한다. 호박씨가 게퍼트 씨의 절반밖에 안되지만, 졸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더랬다. 어쨌거나 내가 월세 내는 사람이지 않는가?  

게퍼트 씨는 신발을 신지 않은 실내 생활을 하는 호박씨의 발을 보더니 낑낑 끈을 풀어 신발을 벗고 들어온다. 그가 현관으로부터 욕실까지에 이르는 복도를 두들겨 본다. 게퍼트 씨 소유의 또 다른 집, 즉 바로 위층 집에서 침수가 발생하여 아래층 우리 집 복도 바닥과 작은 벽장 벽으로 물이 스며들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복도를 걸을 때마다 삐식삐식 소리가 나긴 했다.   

 바닥 교체 기간 동안 길 건너 레지던스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말을 그가 건네었을 땐  몇 번을 되물었다. 알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심난했다. 컨테이너가 도착하지 않아 짐도 없이 겨우 살았던 일주일이지만 더 낯선 레지던스로 가는 것은 싫었다.  

싫은 마음에 대한 표현을 그와 나누는 대신에 컨테이너 도착이 열흘 뒤이니 그 안에 공사를 마칠 수 있냐고만 물었다. 독일인답게 그는 기한에 대해 답을 주지 않는다. 컨테이너 도착 시 공사 완료가 되지 않는다면, 짐을 창고에 보관해 아하는 비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그에게 알려주었다. 이미 그가 부담해야 할 레지던스 비용에 창고 보관료까지 내야 한다면 돈에 밝아 뵈는 이 독일인은 기한을 맞출 것이다. 

호박씨가 이상한 여자였다. 얼굴을 익힌 유일한 이웃인 3층 집 B는 레지던스는 청소 안 해도 되니 얼마냐 좋냐고 했다. 밥 해 먹기엔 부엌이 굉장히 좁으니 이 참에 외식만 해도 되겠다며 부럽단다.  월세 계약 시 벽만 새로 칠해주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바닥까지 새 바닥으로 사용하게 되었으니 그 또한 부럽단다. 




바닥 공사를 시작하는 날은 게퍼트 씨의 아파트 전담 보수 관리인인 터키인 오마르 씨와도 처음 만나는 날이었다. 사는 5년 동안 게퍼트 씨보단 오마르 씨를 더 자주 만나게 되리라는 것을 그날은 몰랐다. 

오마르 씨는 바닥작업을 할 동유럽 인부들 서너 명을 더 데리고 왔다. 간밤에 내린 함박눈에 발목까지 눈에  파묻혔다. 세 개의 커리어, 전기밥솥, 주방 기구들, 5킬로짜리 쌀포대를  100미터 전방의 레지던스까지 천천히 나르면 되는데, 한 번에 가야 한다 싶으니 막막하다. 오마르 씨가 캐리어 두 개를 맡아준다. 작은 아이 손을 잡고 부엌 집기들을 넣은 쇼핑백을 들고 레지던스로 향했다.

" Schone."

나와 눈을 맞추며 오마르는 자신의 얼굴을 한번 가리켰다가, 아이들의 얼굴도 한번 가리킨다.

아이들이 이쁘다는 소리구나. 

쉔.  예쁘다는 독일어 형용사를 잊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럴 줄 알았으면 17세의 호박씨에게 주어졌던 제2 외국어 시간에 독일어 공부 좀 하고, 독일어 선생님도 적당히 싫어할 것을 싶었다. 

츄리닝 위에 걸쳐 입은 외투 사이로 시린 독일 겨울이 파고들었지만, 얘들을 보고 예쁘다고 하는 오마르에게 미소로 답해주었다. Danke라고 그에게 웃으며 답해주고 나자, 내 손에 쥐어진 보석 두 개가 생각이 나서 외투를 여미고 허리를 폈다. 눈밭을 재미있어하며 나를 따르는 아이들이 있다.  

당시엔 레지던스 일주일이야 별일 있겠는가 했다. 쉬이 넘어갈 호박씨가 아녔다고 예고편으로 미리 기록해두겠다.


컨테이너는 열흘만에 도착했고, 게퍼트 씨는 계획한 대로 일주일 만에 바닥 공사를 마쳤다. 집으로 다시 돌아온 날, 게퍼트 씨는 첫날의 만남과는 다른 미소 가득한 얼굴이었다.

" 독일에 대해 당신이 갖게 될 첫인상을 좋게 남기려고, 괜찮은 것으로 골라 깔았어요." 

그가 기대하는 것은 감사 인사였다. 돈 들여 깐 바닥이 그에겐 자뭇 뿌듯한가 보다. 이런....

내가 내는 집세는 아니지만, 한국이면 상상도 못 할 가격의 집세를 그에게 전달하는 입장에 서서 바닥 퀄리티를 보니 찬사는 쥐어짜야 하는 상황이었다. 원목마루는 당연히 아니고, 강화 마루는 더군다나 아니고, 적당한 갈색의 합판 마루에 두번 만난 독일인이 부여하는 국가적 차원의 의미에  맞장구쳐 줘야 한다.

" 좋네요. 감사해요."

영어가 서툴며 말수가 적은 동양인 여자인척 해본다. 



인간이 대규모의 공동체를 이루고 살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이다.  소통과 정보가 범람하다 보니 무엇은 신뢰하고 무엇은 믿지 말아야 하는지 헷갈린다. 일단은 어떤 뉴스든 가짜고 사기라 여기고 본다.  

그런데, 믿지 않고 사는 것이 믿고 사는 것보다 힘들다. 인간이라는 DNA 속에는  믿어야 생존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각인되어있기 때문인 것 같다. 독일서는 자꾸 믿고만 싶어지는 마음에게 혼을 내주곤 했었다. 상대가 건네는 한마디에 뾰족하니 안테나를 세우고 지냈다. 내 생존과 내게 주어진 두 개의 보석의 생존은  뾰족함에서 가능하다 여기고 지내다 보니, 외롭고 피곤한 날들이었다. 

나만 그랬을까 싶다. 주재원, 이민자, 재독 교포 모두 정보 불균형의 상황을 공기처럼 살며 맞닥뜨렸고, 서로를 향해 고슴도치처럼 날을 세우고 살았다.  인간으로 독일 살이를 하기보단 광야의 어미 사자처럼 독일에서 살라고 말하는 듯했다. 





남편의 귀임 발령이 나고, 게퍼트 씨는 남편 회사가 제공하는 원상복구 비용과 동일한 금액이 적힌 청구서를 내밀었다.  우린 한국으로 떠나고, 후임분이 우리 집으로 들어오시기로 했기에 어떤 수리가 이루어지는지 확인할 길이 없다.  떠남과 동시에 복구 작업이 시작될 예정이기 때문이다. 

한국행 비행기를 타는 날, 게퍼트 씨는 태국으로 겨울 휴가를 간다고 했다. 복구 작업은 이 집에서의 첫날 우리가 맞았던 바와  같은 페인트 벽칠하기가 전부라 했다. 집안 벽 칠 하기에 1000유로, 130만 원이 적절한 가격인지 아닌지 가늠할 수 없다. 오마르 씨가 벽 칠을 할지 안 할지 또한 알 수 없다.  사실 우리 집 벽은 오프 화이트로 굳이 벽 칠을 새로 해야만 하는 상태도 아니었다.   

청구서에는 벽칠, 문칠, 그 외의 청소 등도 포함되어 있었다. 5년 전 이 집에 도착했던 날 발견한 쩌든 오븐과 음식물이 묻어 있는 냉장고, 부엌 서랍 속에 소복하던 살림의 때로 추측해보건대, 회사에서 지불할 예정인 원상 복구 비용은 그의 태국행 비행기  삯에 보태질 것이다.

5년 동안 집안 수리와 보수 관련해서 게퍼트 씨와 연락하고 대화하던 것은 늘 호박씨였다. 작별인사를 하러 온 게퍼 씨에게 악수도 눈 맞춤도 건네기가 싫었다. 내 돈도 아닌데 뭔 상관인가 싶고, 그에게 한국인의 마지막 인상을 곱게 남겨야 하기에 악수와 작별 인사는 해야 한다는 마음의 소리도 들렸다. 

몰라. 배 째. 못 믿겠어. 

게퍼트 씨는 남편과 한번 포옹하고 사람 좋은 미소를 건네며 떠났다. 반층 위 계단 위로 자리를 피해 게퍼트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한국 여성에 대한 좋은 마지막은 보이지 못한 셈이다. 그가 좋은 바닥을 깔며 이루려 했던 독일의 첫인상에 비한다면 형편없는 셈이다. 광야의 어미 사자로 5년을 살았으니 순간 인간으로 돌아오긴 어려울 것이라 추측했다. 계단에 서서 한국으로 돌아가면 웅녀 마냥 마늘과 쑥만 먹으리라 마음먹어 보았다. 게퍼트 씨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신뢰로 생존하는 인간으로 되돌아가고 싶었다.  


대문 그림

클로드 모네, 까치 , 1868~18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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