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거나 말을 안 들으면, 가끔 청개구리를 거론하지요.과연 청개구리는 그런 반항의 아이콘일까요? 그렇지 않아요.
그렇다면 그는 억울할 수밖에 없는 일이죠. 우리는 그의 실추된 명예를 되돌려 놔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될까요?
내가 보이누?(그림 윤기경)
청개구리의 진실에 대해 수사해 볼게요.
그는 겨울잠을 자기 전인 가을에 온몸을 탈바꿈합니다. 검은 반점 무늬가 있는 회색으로 피부색이전면적으로 바뀌지요. 다음 해, 봄이 되면 초록색으로 변하는 거예요. 이런 삽시간의 변화 때문에 '이랬다 저랬다' 한다고 청개구리라고 하는 건 아니겠어요?
청개구리는 발가락 끝에 끈적끈적하고 동글한 빨판을 가지고 있어요. 그래서, 어떠한 가파른 벽에도 잘 타고 오를 수 있어요. 가끔가끔 건축물 벽에 붙어 있는 청개구리를 발견하기도 하는 거지요.
이런 탁월한 개구리가 사람들로부터 말 안 듣는 아이나 변덕쟁이로 불리는 건 매우 불합리한 사건입니다. 앞서도 피력했지만, 청개구리의 이런 실추된 명예는 반드시 복원되어야 하는 거죠.
청개구리를 집에서 키운다고도 하더군요.
이 귀여운 생명체는 아이들의 친구가 되기에도 아주 적절한 외모와 성격을 가지고 있는 탓일 테지요.
이토록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생명체에는 그만한 '썰'도 있기 나름이죠.
자장율사가 겨울잠을 자지 않고 옹달샘에서 노니는 청개구리를 발견했어요. 안쓰러운 마음에 자장암 바위를 '쿠욱' 찔러 구멍을 내, 청개구리가 그 안에 살 수 있도록 했어요. 개구리를 집어넣었다고 했어요. 그래서 불가에서는 청개구리를 금와보살이라고 불렀어요.
엄마 말을 듣지 않고 늘 반대로만 사는 불효자가 있었어요, 엄마는 화병에 걸려 쓰러지고 말았어요.
엄마는 죽기 전에 생각했어요. 자기가 죽은 뒤에 양지바른 곳에 묻어달라면 나쁜 곳에 묻어줄 거 같았어요. "엄마가 죽으면 냇가에 묻어주렴."
그런데, 엄마가 죽은 뒤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 엄마의 마지막 소원을 들어 드렸어요. 한심한 녀석 같으니라고. 엄마의 무덤은 큰 비가 와서 그민 둥둥 떠내려 갔어요. 아이는 물속에 들어가 흘러가는 엄마 무덤을 지키려다가 청개구리가 되었어요. 비만 오면 엄마 무덤을 걱정하며 개굴개굴 운다고 하지요. 말을 안 들어서 그런 슬픈 이야기도 있지만 마음 짠한 효자였음은 사실인 거 같아요. 가엾기도 하고 말이에요.
누가누가 잘하나(그림 윤기경)
청개구리는 어렸을 때부터 아이들의 소중한 친구예요. 급속한 물질문명으로 멀쩡한 수많은 친구들을 잃게 되었어요. 청개구리능 아주 귀중한 삶의 지혜까지도 전해 주었어요.
첫째, 청개구리를 알면 아이들은 물론 어른들도 마음이 따뜻해지지요. 도시 속에서 마음이 따뜻해지는 건 좀처럼 누워서 떡 먹는 일이 아니죠. 청개구리를 아는 건 아이들을 통해서예요. 작금의 현실에서 아이들처럼 청개구리를 닮은 이들은 없죠. 더욱 순수하다는 원리를 말하는 거죠. 성공하려면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이기도 해요.
또 하나 중요한 건 급진적 발전으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영혼은 피폐해지고 있어요. 그런 사람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청개구리뿐이 없지요.
청개구리를 기억해 보세요.
시골 가로등 밑에만 가봐도 불빛에 모인 곤충을 잡아먹으려고 나온 청개구리를 쉽게 볼 수 있어요. 다행히 개체수도 적지 않아요. 여름철에는 집 안을 방문하기도 해요.
개구리 인간(그림 윤기경)
아이들이 말을 안 듣고 청개구리 짓을 하는 건 왜 그럴까요? 그 이유는 이렇다고 봐요.
- 아이들이 태어날 때부터 말썽 부리지 않으니까.
- 어른들을 따라 하는 건 아이들 특기니까..
- 아이들은 본래부터 어른을 좋아하니까..
- 살아남기 위해서 어른을 닮아야 하니까요.
- 배냇짓이 있으니까. 어른들을 닮아가려는 아이들의 모든 행동은 어른들한테서 나온다는 거죠.
따라서 어른들이 청개구리란 뜻이기도 해요.
청개구리를 따라 숲으로 들어가요. 아이들이 어른을 닮는 것도 좋지만 숲을 닮아야 하고 강을 닮아야 해요.
깃털처럼 하얀 구름을 따라 하고 바다처럼 넓은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숲을 지나 강을 지나 바다로 가보고 싶어요. 하지만, 당분간은 숲으로 가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