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 - 영화<라이프 오브 파이> 감상문
원작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는 보통 실망감을 안겨주는 경우가 많다.
더군다나 원작을 각색하거나 생략/편집한 경우, 더더욱 실망감을 안겨주기 마련이다.
물론 영화라는 매체의 특징상 한정된 러닝타임 내에 보여줘야 되니,
편집이 불가피하다는 건 알지만, 그것이 바로 감독의 역량이 아닐까 생각한다.
하지만 오늘 얘기할 이 작품은 원작소설에서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을
과감하게 생략/축소했음에도 나에게 있어 너무나도 흥미롭고 재밌는 영화였다.
어쩌면 원작의 그 부분을 생략 축소함으로써
원작과는 또 다른 매력의 모험 이야기로 재탄생된 것이라고도 생각한다.
오늘 얘기해 볼 작품은 <파이 이야기>의 원작영화 '이안'감독의 <라이프 오브 파이>이다.
인도소년 주인공 '피신(파이)'의 가족은 작은 동물원을 운영 중이었다.
하지만 경기가 좋지 않아, 동물원 사업을 접고는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온 가족과 동물원의 몇몇 동물들을 여객선에 실은 채 캐나다로 출발하지만,
배는 풍랑을 만나 침몰하게 되고, 가까스로 '피신'만이 구명보트에 의지해 목숨을
부지하지만, 그 구명보트에 '피신'과 함께 몸을 실은 것들은 사람이 아닌,
오랑우탄, 얼룩말, 하이에나, 그리고 <라이프 오브 파이>의 또 다른 주인공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뱅갈 호랑이었다. 결국 여러 모종의 사건들을 거치며,
구명보트에는 '피신(파이)'와 '리차드 파커' 둘만이 남게 되는데...
구명보트에 몸을 의지한 채 망망대해에서 벌어지는 '피신(파이)'과 '리차드 파커'의
살얼음판 같은 생존 이야기를 담은 모험담이다. (영화는...)
물론 영화에서도 이 모험담에 이면의 이야기를 비춰주지만,
원작 소설에서의 비중에 비해 훨씬 간략하게, 그리고 비교적 많이 순화/생략하여
보여주며, 내 생각에는 분량이나 영화 외적인 요소로 인해 생략/축소 됐다기보다는
다분히 감독이 의도한 생략/축소라고 생각한다.
*스포일러 포함 문단*
이면의 이야기는 실제 구명보트에는 그 어떠한 동물도 없었으며,
생존을 위해 카니발리즘(동족포식) 행위, 즉 식인 행위가 이뤄졌다는 이야기이다.
그리고 '피신(파이)'가 말하던 동물들과 맹수들은 모두 사람들에 빗대어 한 이야기이며,
'피신(파이)'의 이야기에서 끝까지 생존했던 유일한 동물, 뱅갈 호랑이
'리차드 파커'는 다름 아닌 '피신(파이)' 본인을 빗대어 이야기한 것이다.
이렇듯 <라이프 오브 파이>의 '이안'감독은 이러한 이면의 다소 잔혹한 이야기들을
축소/생략하는 조금의 변화만으로 원작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원작소설과는 또 다른 분위기와 매력의 영화로 재탄생시킨 것이다.
너무나도 탁월하고 영리한 편집/각색이 아닐 수 없다고 생각한다.
'이안' 감독은 <브로큰 백 마운틴>과 본 영화 <라이프 오브 파이>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수상한, 우리에게 잘 알려진 명작 영화를 많이 제작한 거장이다.
그의 작품 중 주옥같은 작품들이 참 많지만, 그중 나는 단연 <와호장룡>을 꼽을 것이다.
나에게 있어 <와호장룡>은 90년대 황금기였던 중국 무협영화의 끝을 알리는 영화였고,
여전히 <와호장룡> 이후 그 어떠한 중국의 무협 영화도 <와호장룡>을 능가하지 못했다고
나는 생각한다.
(물론 <와호장룡> 이후 영상미만 따지자면, 장이모 감독의 <연인>을 얘기할 수도 있겠지만,
영상미를 빼면 딱히 볼 게 없는 영화라고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애석하게도 '이안'감독은 2012년 <라이프 오브 파이> 이후 10년 가까이를
뚜렷한 명작이나 히트작을 내지 못하는 상황이다.
그의 나이를 고려하면 이제 그가 제작할 수 있는 작품의 수는 많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개인적으로는 <와호장룡> 같은 무협영화의 메가폰을 잡는 모습을 다시 보고 싶다.
현제 '이안'감독은 '이소룡'의 자전 영화를 기획 중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