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아마도 나와 같이 이것저것 수집을 하는 사람들은 어느 정도
공감을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는 물건을 충동적으로 구매하지는 않으나,
구매하고는 곧 잘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다.
여기서 앚어버린다는 것은 분실이 아니라 망각을 뜻한다.
특히 해외직구 혹은 예약제품의 경우 배송 기간이 길다 보니 더욱 심하다.
최악의 경우 이전에 예약결제를 했다는 걸 잊고
중복으로 또 구매하는 경우가 가끔 생기기도 한다.
"ㅇㅇ아 너 ㅇㅇ예약했어?, 12월 발매 예정이던데..."
"응? 그거? 언제 예약받았어?, 나도 예약 안 한 것 같은데..."
"나도 예약 놓쳐서, 발품 팔아야 될 것 같은데, 같이 갈래?"
"응, 그래 같이 다니자. 어디로 가게?"
이 일은 아직 해가 바뀌기 바로 직전이었던,
여러 일로 정신없었던 몇 주 전 12월의 일이다.
나와 같은 취미를 함께하는 친구에게 연락이 왔고,
그 친구와 나는 어떤 물건의 구매에 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내 핸드폰으로 문자 한 통이 도착했다.
해외 아마존, EMS에서 00시 00분 배달 완료.
바로 방금 전까지 친구와 얘기를 나누던 그 물건이다.
"나 샀어, 그거"
"언제?, 지금?, 어디서?"
"아니 과거의 내가 샀나 봐, 방금 집에 배송 왔다는데..."
"애효... 정신 나간 놈, 어디라도 좀 적어놔라"
"으응 진짜 그래야 되나 봐... 너 살 때 같이 가줄게 갈 때 말해"
"그래, 주말에 너네 집으로 갈게, 사기 전에 일단 만져나 보자."
정말 까맣게 잊고 있었다.
심지어 이 물건은 내 기준으로 제법 고가의 물건이었기에,
이 물건의 구매를 두고 한 달 이상을 숙고하고 고민했던 물건이다.
그렇게나 고민하고 생각했으면서, 이렇게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내가 생각해도 정말 한심한 노릇이다.
하지만 이렇게 까맣게 잊고 있다가 받게 되는 뜻밖에 택배는
나름 선물 같아 기분 좋을 때도 있다.
조금 더 어렸을 적에는 수집품의 발매일을 꼼꼼하게 체크해 가며,
날짜에 맞춰 대행업체나 판매업체를 닦달한 적도 있었는데,
이제 그럴 열정이 없어진 것인지, 아니면 단순하게 기억력이 나빠진 것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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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실도 물론 화나고 아쉽지만,
분실은 적어도 잃어버린 존재를 인지하고 기억하고는 있다.
하지만, 망각은 다르다. 존재 자체를 인지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내가 무엇을 잊어버렸는지 조차도 모르고 있는 상태.
나는 그래서 가끔 무서울 때가 있다.
'혹시 나는 지금 무엇을 잊어버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