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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아끼는 마음에, 아까운 마음에

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by 차준생


언제쯤부터였을까?

아마도 작년 말 추운 겨울 언젠가부터 일 것이다.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이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찻잎, 딱 한번 정도 더 우려 마실 만한 크기의

찻잎을 고이고이 접어 아끼는 마음에, 아까운 마음에

그렇게 종이로 겹겹이 차곡차곡 쌓아 쟁여 놓았던 것이,


어느새 해를 넘겨 결국 내 수중에서 1년 가까이를 버텨냈다.

한 번만 더 마시면 끝날 것을 아끼는 마음에, 아까운 마음에

그렇게 나는 마시지 않고 꾹꾹 참은 끝에, 결국 이 차는 한해를 버텨냈다.

본연의 이름 '월광(月光)'처럼 둥글고 예쁜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어느새 이리저리 뜯기고 찢어져 이제 고작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파편만이 남았지만, 그럼에도 한해를 버텨내주었다.


그간 어떤 차를 마실까?, 고민하던 내게 언제나 하나의 선택지로써

1년간 그 자리를 지켜주던, '월광고수 백차'

그렇게 작년 이맘때쯤 만났던 백차는 꼬박 한 바퀴를

돌아 다시 맞은 봄에 드디어 그 이 백차를 모두 비워냈다.

사실 일찌감치 다 마신 것과 다름없었지만, 남은 손가락 두 마디 정도의

작은 백차의 파편을 아끼는 마음에 아까운 마음에 그렇게 기다렸던 것이다.


봄을 시작으로, 한 해를 보내고 다시 돌아오는 봄에 마지막으로 마시고 싶었다.

그렇게 기다리던 그 봄이 돌아왔고, 나는 아끼는 마음도, 아까운 마음도

겹겹이 고이고이 접어 쌓아 뒀던 종이들과 함께 펼쳐 내어,

그렇게 마지막 차를 우려내어, 천천히 한 모금, 두 모금

그렇게 나는 이 백차를 비워냈다.


아마도 지금 당장 다시 이 차를 다시 구하지는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더라도 언제가 됐든 꼭 다시 구하고 싶다.

언젠가 그날이 온다면 다시 나는 아끼는 마음을 또 아까운 마음을

겹겹이 고이고이 접어 천천히 한해를, 한 바퀴를 그 차와 함께 할 것이다.

무척 즐거운 마음으로, 그때가 언제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그때를 기다리며, 홀로 조용히 기대해 볼까 한다.


마침 작년에 이 백차 를 처음 마셨을 때의 글이 남아 있었다.

참 알지도 못하면서 잘도 주절주절 글을 끄적였다고 생각하며,

다시 읽고 있는데, 글을 등록했던 날짜가 'Jul 02. 2024' 이였다.



'어? 아직 1년 안 됐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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