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오늘은 좀 우울한 이야기가 될 것 같다.
올해 25년은 여러모로 내게 참으로 가혹한 한 해이다.
아직 절반도 보내지 못했는데, 이렇게 까지 혹독하면,
앞으로 남은 한 해 어떻게 보내야 할지, 무섭고 두렵기까지 하다.
그렇게 두려운 25년을 예고라도 하듯,
25년 해가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어머니는 암선고를 받으셨다.
처음에는 여러 병원을 다니며, 새로이 진단을 받아봤으나,
특별히 바뀌는 것은 없었고, 어머니께서 통원 치료를 원하셔서
한동안은 집에서 병원을 다니셨으나, 결국 지난달 입원을 하게 되셨다.
그와 동시에 나의 간병인으로써의 새로운 삶도 시작되었다.
나를 제외하고도 아버지나 형 같이, 다른 가족들도 있고,
또 전문 간병인을 두는 것도 생각해 봤지만,
어머니께서는 부디 내가 곁에 있어줬으면 하시는 바람이 있으셔서,
결국 내가 어머니의 간병을 도맡아 하기로 하였고,
그렇게 나는 요즘 병원에서 출근을 하고 병원으로 퇴근을 하는 삶을 살고 있다.
뭐, 간병인이라고 해봤자, 어머니가 거동이 불편하신 것은 아니신지라,
딱히 내가 할 일이 많지는 않다. 그저 어머니와 하루 일과로 이런저런 수다를 떠는 것이 내 일이다.
평소에도 가족 중에는 그나마 무던하고, 재잘재잘 수다스러운 성향인 나를
어머니는 편해하셨고, 아마도 그런 연유로 내가 곁에 있기를 원하신 게 아닌가 생각한다.
뭐 그 덕분에 책도 많이 보고, 핸드폰도 많이 보고, 글도 많이 쓰고 그러고 있다.
(병원에서의 생활은 참으로 무료하기 짝이 없다.)
가끔 약속이 있는 주말에는 형이, 내가 출근한 시간에는 아버지가 교대해 주시기는 하지만,
그 외 시간에는 보통 내가 어머니 곁을 지키고 있으며,
다행히도 현제 다니는 회사에서 나의 여러 편의를 많이 봐주신 덕분에
제법 자유롭게 출퇴근을 하고 있다. 참으로 감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몰래 이직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한 동안 더 이 회사에 머물러야 될 것 같다.)
하지만 이렇게 갑자기 생활 패턴이 바뀐 탓 인지,
10년 가까이해 온 일들에 실수들이 자주 생기기도 하고,
나도 모르게, 나도 몰랐던 히스테릭한 모습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이럴 때면 내가 마치 내가 아니게 되어 버린 것 같아 자괴감이 들 때도 있고,
내가 이 상태로 계속 회사에 다니는 것이 옳은가? 에 대한 의구심이 들 때도 있다.
잘 모르겠다. 속 편히 그만두고 싶다가도, 이런 상황에도 나를 믿고
나를 최대한 배려해 주는 것이 고맙고 미안해서 그러지도 못하겠다.
이럴 때는 나는 그저 출근길에 붕어빵을 사서 사무실로 향한다.
동대문에는 1년 사계절 내내 붕어빵을 파는 가게가 있다.
7마리에 만원 붕어빵 치고 제법 비싼 가격이지만,
이 계절에 붕어빵을 맛볼 수 있는 것 만으로 만족해야 한다.
과거 특히 외근이 많던 나는 종종 사무실로 복귀할 때,
이렇게 붕어빵을 사들고 복귀할 때가 많았다.
그때는 그저 내가 먹고 싶어, 사는 김에 겸사겸사
사무실 식구들의 몫도 같이 챙겼었지만, 지금은 다르다.
최대한 감사한 마음을 그리고 미안한 마음을 담아
팥 7개, 커스터드 7개의 붕어빵을 사들고 남들보다 조금 늦은 시각에 출근을 한다.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 또다시 그저 내가 먹고 싶어 붕어빵을 사는,
그저 사는 김에 겸사겸사 붕어빵을 사는,
그날이 다시 오길 바란다.
그리고 드디어 기다리던 어머니의 수술 날짜가 잡혔다.
막상 수술 날짜를 받고 나니 영 잠이 잘 오지 않는다.
병실의 간이침대도 이제 제법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
아마 수술날까지는 계속 이 상태로 선잠이나 겨우 잘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글로 남아 답답한 마음을 조금은 덜어 내 보려 한다.
때로는 이렇게 답답한 마음을 절친한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것보다도,
이곳처럼 안면부지의 누군가에게 토로하는 편이 훨씬 편할 때도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