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글보글 물 끓기 3분 전
최근 내 주변에는 변화가 많다.
주로 안 좋은 쪽으로 변한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지만 말이다.
삼십 대의 막바지, 마흔을 목전에 앞둔 나이.
누가 마흔을 불혹이라고 했던가?
적어도 내 주변 친구들에게는 참으로 많은 유혹들이 있었던 것 같다.
그것은 둘도 없을 인생의 전환점이자 기회인 양 찾아와서는
많은 것들을 앗아갔다는 그런 레퍼토리의 이야기들.
이제는 좀 식상하게 까지 느껴질 정도로 허다하게 많이 듣고 있다.
그래서 누군가는 빚더미에 앉아 있기도 하고, 또 누군가는 버티지 못하고
파산신청을 했다는 내용의 하소연이 심심찮게 들린다.
불과 몇 년 전에는 이런 이야기가 친구의 친구처럼
거쳐 거쳐 직접적으로 알지 못하는 누군가의 얘기였다면,
어느새 둘도 없는 나의 친구들의 이야기가 되었다.
벌써 내 주변만 해도 네다섯의 친구가 이렇게 엎어졌다.
불행이 서서히 엄습해 오고 있는 느낌이랄까?
누군가는 악착같이 일어나 아등바등 살고 있기도 하고,
누군가는 그저 하루하루 일용직을 전전하며 연명하기도 하고,
누군가는 중고거래 사이트에 좋았던 시절의 사치품들을 내다 팔며 버티기도 하고,
누군가는 엎어진 채, 바짝 엎드려 움크리고는 아직 상처를 추스르지 못하기도 한다.
누가 가장 올바른 삶의 태도이며, 삶의 방식인가?
나는 답 따위는 존재하지 않으며, 옳고 그름 또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저 각자 마음의 내구성과 회복속도가 다를 뿐,
상처에 대응하는 각기 다른 자신만의 방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마음의 상처에 대응하는 서로 다른 자신만의 생존 노하우 랄까?
적어도 내 친구 중에는 계속 엎드려 퍼져있을 멍청이는 없을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는 이런 모습을 보며 다그치기도 잔소리를 하기도 하겠지만,
내 짧은 경험상, 그 어떤 말도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이럴 때는 그저 산이나, 들이나, 바다나, 그 어디라도
같이 가자고, 이 지긋지긋한 서울을, 도시를 잠시라도
떠나보자고 말해주는 것이 무엇보다 위안이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내가 뱉어내려다 삼켰던, 잔소리와 다그침은 그 친구들에게는 이미 귀 따갑게
들어봤을 이야기들일 것이며, 그 친구들이 부러 나까지 찾아와
하소연하는 이유는 내게 그깟 싸구려 잔소리나 듣자고 온 것도 아닐 테니 말이다.
또한 그 누구보다 본인들이 제일 많이 고민하고 생각하고 있을 텐데,
그 고민들에 굳이 내 싸구려 잔소리까지 얹을 필요는 없겠지.
사람들은 쓴소리를 하는 친구가 좋은 친구라고들 말 하기도 한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때 어쩌면 나는 좋은 친구는 아닐지도 모르겠다.
"그럼 한동안 할 일도 없을 테니, 산에나 가자"
그저 너의 하소연이 끝나거든, 이 우중충한 날씨가 조금 지나가거든,
볕 좋은 날 산에나 같이 가자, 내 이 눅눅한 마음들을 챙겨서 산에나 같이 가자.
볕 좋은 날 양지바른 산 중턱에 눅눅했던 마음 한켠을 같이 널어두고 오자.
뽀송뽀송 하게 잘 마르도록 그렇게 저렇게 탁탁 털어 같이 널어두고 오자.
그러니까 우리 같이, 볕 좋은 날 등산이나 가자.
너 만큼은 아니겠지만, 내 마음도 그간 많이 눅눅해지고 우중충 해졌으니,
우리 같이 등산이나 가자. 마음에 시커먼 곰팡이가 피기 전에,
하루빨리 볕 좋은 날로 잘 잡아서 산에나 같이 가보자.
.
.
.
"근데 너 왜 이렇게 살이 쪘냐?"
"이렇게 둔해가지고는 산에도 같이 못 가겠는데..."
(물론, 나라고 잔소리를 아주 안 하지는 않는다.)